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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덕이 Jan 12. 2024

“군무원이요?" 군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같은 거에요.

군무원.


국방부 홈페이지에 군무원은 

군부대에서 군인과 함께 근무하는 공무원으로 신분은 국가공무원법상 특정직 공무원으로 분류된다.

즉, 제목은 오류가 있는 셈이다. 

군무원은 공무원 같은 거가 아니라 공무원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전에 군무원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무지함을 가지고 있었고

놀랍게도 내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주로 여자다)도 군무원을 잘 몰랐다.

그래서 보통 대화의 흐름은 이렇게 흘러간다.


"강사시면 어떤 과목 가르치시는 거예요?"

"군무원 학원에서 심리학을 가르쳐요."

------정적. 가끔 갸우뚱-----

(보통 이 대답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의문을 더 증폭시키는 듯하다. 그리고 군무원과 심리학 도대체 먼저 물어봐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듯하다.)

"아... 군무원은 뭐예요?"

"군무원이요? 군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같은 거)이에요."


초창기에는 나도 군무원이 뭔지 잘 몰라서 같은 거를 붙였고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에는 공무원이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귀찮아서 그냥 공무원 학원이라고 이야기했다)



새로운 일에 대한 열망은 갈수록 커져갔지만 도저히 풀타임은 할 수 없는 몸상태였다.

이전에도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마음만 앞서서 몇 번 일을 진행하려 했다가 역효과가 난 적이 있어 더 조심스러웠다. 

일주일에 몇 번은 채용 사이트를 들락날락 거리며 살펴보았다.

보통은 '심리학'으로 키워드를 넣고 찾아보는 편인데 

('심리'라고만 치면 온갖 이상한 채용 공고가 뜨지만 '심리학'이라고 하면 그나마 학문적인 영역의 심리학 관련 업무가 뜬다)

하루는 처음 보는 형태의 공고가 있었다.

한 학원에서 심리학입문 수준의 강의를 할 수 있는 강사를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근무시간이 솔깃했는데 일주일에 하루, 딱 3시간만 강의하면 되었다.

파트타임도 버거운 상태였기에 이 정도로 시작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회로 보였다.

지금까지 3시간 수업은 해 본 적 없었지만(과외는 2시간으로만 진행해 봤다)

그래도 이런 기회는 놓치기 너무 아까웠다. 

만약 수업을 한다면 집-학원 왕복 2시간, 수업 3시간, 총 5시간을 밖에 나가있는 셈. 

아직 공황과 디스크가 있는 상태여서 사실 가능한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면접을 보러 갔다. 다행히 무난하게 합격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이름과 얼굴이 걸린 수업이 몇 주뒤면 열리게 될 것이다.


이미 6년 전의 일이지만 첫 수업 때의 떨림과 이불 킥하고 싶은 마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 마음속 흐린 눈은 다행히 구체적인 부끄러운 장면의 회상은 막아주었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며 그때를 생각하니 절로 몸서리치게 된다.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를 최대로 했지만

항상 초심자 시절은 약간은 우습고 많이 어설프다. 그나마 봐주는 이유는 열정 때문일 것이다.

첫 수업은 5명 정도로 소박하게 시작했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전혀 소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인생 최대 규모의 수업이기 때문이다. 


1:1 과외만 하다가 갑자기 그룹 수업을 하는 것, 

입시를 위한 완벽한 강의식 수업을 하는 것, 

성인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는 것, 

칠판에 판서를 하는 것,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심한 핸디캡까지.

아, 참고로 나는 발표 공포증도 있다.


발표 공포증이 너무 심해서 살면서 발표를 한 적은 두 손에 꼽을 정도이다.

발표를 안 할 수만 있다면 어떤 것이든지 했다. 자료 조사를 더 하고 피피티를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대학교 때 발표 수업은 아예 듣질 않았었다.

그런데도 이런 수업을 덜컥, 그것도 교재가 없어서 처음부터 교재를 구해서 만들어가며 하겠다고 한 그때의 무모함과 용기는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난 도전이었고 정말 대단했던 것 같다.


첫 해의 수강생들한테는 정말 큰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낀다.

분명 학원 이론 강의인데 초반에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하지 않나, 

판서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아 글씨가 날아가질 않나(애초에 필체도 깔끔하지 않은데),

뭔가 강의는 진행되는데 스무스하지 않은 면이 있다던지,

분명히 어설픈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따라줘서 1년을 끝까지 함께 해준 덕분에 강사로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인격적으로도, 업무적으로도 많이 성장할 수 있었고 

놀랍게도 평생을 함께 한 발표 공포증도 많이 나아졌다.

부족한 강사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노력과 열정이 더해져 다들 합격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다음 해에도 수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며 

그렇게 내리 5년을 했다. 

과외에서 강의로 넘어가는 첫 단계였으며 

이 학원에 있는 5년 동안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일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재기의 계기를 준 학원 강사 경험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처음으로 학원에서 한 강의는 만족스러웠고 보람찼지만

아마 다른 학원을 가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수요가 있는 학원이 또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말이다.


평균적인 학원 강사 생활은 아니었기에 

위 글에서 학원 강사가 되기 위한 꿀팁을 찾아보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몇 년간 귀동냥하고 경험에 의해 축적된 꿀팁 몇 가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1. 보통 학원강사 공고는 훈장마을(https://www.hunjang.com/)에 올라온다. 나 같은 특수한 과목은 사람인과 같은 채용사이트에도 올라오지만 대부분의 과목들은 위 사이트에 많이 올라온다. 네이버 카페 중 가장 큰 카페는 학강마(학원강사마을 https://cafe.naver.com/tazza4)이다. 여느 카페가 그렇듯이 카페에는 유용한 정보도, 유용하지 않은 정보도 있으니 적당히 걸러서 보면 시간도 잘 가고 재밌다.


2. 몰랐는데 학원 강사도 학원에 따라 티어가 있었다. 나처럼 주요 과목도 아니고 내신이나 수능과 관계없는 과목은 (물론 여기는 또 여기만의 티어가 있고 리그가 있지만) 그런 게 있는지 한참 뒤에 알았지만 학원 강사로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은 대기업/중소기업으로 나눠지듯이 브랜드 학원/동네 학원 등으로 나눠서 어디서 첫 시작을 할지 고민한다. 학원계의 대기업은 비율을 높게 쳐줄 수 없다. 초심자면 우선 강의 경험을 쌓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덜컥 대형 브랜드의 낮은 비율의 종속 계약을 맺기 전에 본인이 정말 이 업계에 남고 싶은지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원래 경험해 봐야 나한테 뭐가 맞는지 알게 된다.


3. 언젠가는 결국 자신만의 교재가 있어야 한다. 으면 학원에서 만들라고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자료 정리를 잘해놓자. 그리고 교재 편집할 때 더럽게 보기 싫고 귀찮아도 그래도 제대로 보자. 안 그러면 강의 중 오타나 오답을 발견하게 되고 이걸 수정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오답 정정 파일을 다시 올려야 되는데 이게 더 귀찮다. 그리고 강사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라 부끄럽다. 물론 다 경험담이다.


4. 수강생들과의 관계는 결국 본인의 성향 따라간다. 나는 사무적인 편이라 한동안 거리를 좁혀야 하나 고민했다. 사무적이라는 것은 딱딱하다는 뜻은 아니고 공과 사가 확실하고 수강생의 질문이나 요청은 친절하게 받아주지만 그 외의 친목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도 다 사바사다. 어떤 선생님들은 종강 후 수강생들과 함께 회식을 한다고 하기도 하고 개인 번호를 오픈하는 분도 계신다. 뭔가 나도 좀 더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내 성격 상 그게 잘 되지도 않을 뿐더러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편하다. 그러니까 혹시 나처럼 수강생들과 좀 더 친해져야 하는지, 그게 좋은 강사의 덕목인지 고민되는 분들한테는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학원 강사의 본질은 강의력과 약간의 서비스 정신이다. 강의 실력이 별로인데 친목으로 커버되는 경우보다 강의 실력이 좋고 친목하지 않는 강사를 수강생들은 더 선호한다. 그러려고 돈 내고 학원을 다니는 것이다. 불친절하지 않은 선에서 자신의 실력을 키운다면 옆집 오빠/형/누나/언니 스타일이 아니어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


5. 지금까지 꿀팁인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은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연봉협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강사가 별말이 없다면 원장은 연봉을 올려주지 않는다. 그건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게 당연해서이다. 먼저 말하는 원장들도 있겠지만 그걸 기대하지 않는 게 관계에는 편하다. 그러니 저 사람은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알아도 주지 않네라고 오해할 에너지로 어떻게 연봉협상을 할 것인지 고민하자. 구체적인 데이터를 가져가서 이야기하는 게 좋다. 작년 대비 얼마나 수강생이 늘었는지, 드랍률이 얼마나 줄었는지, 합격률이 얼마인지, 수강생 증가로 업무강도나 업무시간이 늘었는지 등을 언급하며 그래서 얼마를 인상하길 원하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대략적인 학원 관리비, 월세, 인건비 등 학원이 매 달 지불하고 있는 비용 등을 알면 인상액 산정을 하는 것이 편하겠지만 그런 정보가 없다면 자신이 생각하기에 터무니없지 않은 선에서 인상을 '당당하게' 요구하자. 나는 3년 차부터 그동안 쌓인 데이터로 연봉 인상을 언급했는데(2년 차 때는 이런 걸 요구해야 되는지 몰랐다) 원하는 기준만큼 될 때도, 아닐 때도, 새로운 조정안으로 될 때도 있었다. 항상 연봉협상을 요청하는 강사는 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열심히 일하려면 내가 받는 금액이 납득이 되어야 하는 성격인지라 그런 원장님의 말은 약간은 흘려듣고 연봉협상을 진행했다. 본인이 열심히 일했다면 그런 본인을 위해서라도 수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자. 

+ 매 달 받는 급여명세서를 꼼꼼하게 확인하여 누락된 금액이나 계산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자. 이 또한 얼마간 있다 보면 원장이 의도적으로 누락하는 건지 아닌지가 보인다. 단순한 오류일 수도 있으므로 항상 내가 더블체크하는 습관을 기르자. 의도가 아니라 개인의 덜렁증 때문이라면 쓸데없는 오해를 하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고 소중한 나의 월급도 잘 챙길 수 있다. 의도적이라면 그때부터는 학원 체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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