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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덕이 Jan 05. 2024

나는 어떻게
(자발적으로) 프리랜서가 되었나 2

            평소 증상을 호소하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증상을 방치하다가 결국 병에 걸리고 호되게 혼쭐이 나는 걸 보면 의아했다. 

            증상이 있는데 왜 모르지? 

            어떻게 모를 수 있지? 

            그런데 그런 일이 내게도 똑같이 일어난 것이다.


           스페인 여행을 갔다 온 지 2달이 지난 이후였다. 자유와 불안의 경계선에 서있는 백수의 삶이 차츰 익숙해지고 있을 때, 이만하면 몸이 점차 나아지고 있는 거구나 싶었을 때, 목, 어깨, 허리가 미친 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점차 심해지는 통증은 참기 힘들었고 여러 군데의 병원과 비싼 초음파, CT, MRI 등을 찍고 나서 목과 허리에 디스크 증상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쯤, 엄마도 디스크 증상이 심해져서 모녀가 나란히 병원에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밤새 파스를 잔뜩 붙이고 끙끙 앓다가 아침이 되자마자 이 통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을까 싶어 병원 오픈 시간에 맞춰 '출근'했다. 3시간 정도 도수 치료와 찜질 치료를 받고 기진맥진한 몸으로 집에 와서 점심을 먹는다. 오후에는 조금 나아진 몸으로 약간의 생활을 영위하다가 재활 운동을 하고 폼롤러를 굴렸다. 반신욕으로 근육을 풀어주고 다시 파스를 잔뜩 붙이고 잠들었다가 다음 날 병원에 가는 쳇바퀴 같은 삶이 반복되었다. 일주일에 3일, 많게는 4일을 병원을 갔다. 갔다 오면 지쳐서 쓰러져 있다가 살기 위해 재활을 하는 삶이 20대 후반인 내게는 정상적인 삶이 끝났다는 선고 같았다. 그때는 500ml 물병 하나 들 힘도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지도 못했다.


           이런 와중에 이석증까지 다시 도졌다. 나는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굉장히 위축되었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기 무서워했고 그러니 당연히 사회적인 활동은 불가능했다. 친구들 모임에는 나가지 않거나 연락을 끊었으며 몸에 무리가 갈만한 어떤 행동도 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했다가 탈 나면 큰일이니까. 먹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일상적인 즐거움도 모두 제한했고 평생 이렇게 사는 건가 너무 걱정되었다.


           어릴 때부터 상담에 오픈되어 있는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상담을 받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학부 때 이상심리학 수업도 수강하여 최소한 다양한 심리 장애를 귀동냥은 했었다. 그래도 당시에는 이렇게 불안해하고 스스로를 제한하는 모습이 심각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몸이 아프니 당연히 조심해야 하고 나약하니 웬만한 신체 활동들은 삼가는 것은 강박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방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정도가 지나친 것을 몰랐다. 아니, 알긴 알았지만 신체 컨디션이 회복되기 전까지의 일시적인 모습이고 몸이 낫기만 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3개월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고 1년 가까이 되니 패배적인 사고와 감정이 나를 잠식했다. 이제 나는 두 번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없을 테고(오래 앉아있거나 서있는 것이 불가능했다. 계단을 내려갈 수 없고 일단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공백기는 길어지고(벌써 퇴사한 지 1년 반이 다 돼 가고 있었다). 인생이 망한 것 같았다. 이런 극단적이자 파국적인 사고의 특징은 타인에게는 비현실적인 논리가 당사자에게만큼은 사실이자 현실이라고 믿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불행했지만 이런 모습들이 우울증이나 공황 장애의 증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심리학과 학부와 석사를 졸업했지만 전공 분야는 임상이 아니었다). 신체적 고통이 너무 커서 정신적 고통을 살펴볼 여유가 없기도 했다. 그래도 어느 날, 이렇게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추천받아 간 유명한 인지행동치료 센터에서 검사를 받아보고 그 결과, 공황 같다는 말을 들었다. 센터에 들어가기 위해 입구에서 30분 정도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어했던 당시를 생각하면 공황 장애라고 보는 게 합리적으로 보였다. 임상심리학과 상담심리학을 어느 정도 공부한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약한 정도의 공황 장애와 광장공포증, 그리고 심한 우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 검사 결과를 듣고 만감이 교차했다. 

            ‘아, 그래서!’

            ‘휴, 어쩌지?’

            타격이 컸던 신체와 정신을 다시 회복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황, 불안, 우울, 두려움은 몸과 마음에 만연해서 학습된 무기력을 느끼며 이후에도 한동안은 시간을 ‘죽이며’ 보내는 삶이 계속되었다. 그래도 그런 순간에도(어쩌면 그런 순간이었기에) 뭔가를 해야 살아갈 힘이 생기는 사람인 걸 알았기에 다양한 걸 시도하려 노력했다. 노력에 그쳤던 이유는 결국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건 바이 건으로, 비정기적으로 일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출판업 경력과 영어 실력을 살려 아동 출판사에서 신작 검토를 했다. 비록 비정기적인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원서를 받아 리뷰를 하는 일은 즐거웠다.


            심리학과 관련된 일이 없는지 찾아보다 온라인 백과사전에 실릴 심리학 분야 개념을 집필할 집필진을 찾는다는 모집글을 보았다. 꽤 유명한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였고 각종 심리학 개념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정리하여 작성하는 업무 내용이어서 매우 흥미로워 보였다. 다행히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이때 작성한 원고들은 지금도 포털 사이트 내 지식백과 란에 등록되어 있다. 심리학 개념들을 찾다 보면 아마 내가 작성한 설명을 봤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출판사는 흥미로운 논문 리뷰 사이트의 시작을 함께 할 에디터를 찾는 모집글도 올렸다. 말 그대로 해당 분야에 전문가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도 읽고 이해할 수 있을만한 각종 논문 리뷰를 한 글들을 모은 학술적 시도였다. 다양한 심리학 논문을 읽고 이를 비전문가와도 함께 공유하고 알리고 리뷰하고 싶은 마음에 지원했고 초창기부터 사이트 운영이 중단될 때까지 논문 리뷰어로 활동했다. 대학생 때는 심리학 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기에 해당 사이트에서 리뷰어로 활동하는 일은 즐거웠다. 아쉽게도 현재는 사이트가 없어져서 그때 올린 글을 볼 수 없지만(있었다면 브런치 작가 프로필에 올려놨을 것이다) 대략적으로 이런 리뷰를 쓰곤 했다.



‘수저론이 정치 성향까지 결정할 수 있을까?’


현대 한국사회를 나타내는 다양한 키워드 중 2015년에 등장하여 급부상한 개념은 수저론일 것이다. 수저론은 본인의 사회경제적 위치가 부모의 직업과 소득 등의 배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정론적 개념으로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로 나뉜다. 그리고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과 실제적인 격차를 논하는 것이 현 20대의 자조적인 자화상이다. 수저론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격차만일까? 계층 간 상대적 경제적 격차 심화는 곧 정치적 성향의 극단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논문을 소개한다.

           Brown-Iannuzzi, Lundberg, Kay, and Payne의 Subjective Status Shapes Political Preferences (Association for Psychological Science, 2015)는 한 사회의 경제적 격차가 클수록 주관적 안녕감 저하, 기대수명 단축, 범죄율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기존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시작한다. 사람들은 경제적 격차가 큰 사회일수록 불안정한 사회로 여기며 경제적으로 평등하고 사회복지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는 북유럽의 나라들을 모델로 삼는다. 물론 우수한 사회복지제도의 이면에는 40%에 육박하는 세금 부가가 있어 진정한 평등은 대가가 따름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큰데 왜냐하면 사람들은 입으로는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를 외치면서도 실질적인 부의 재분배를 다룬 제도나 공약에는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이 이유를 사람들의 절대적인 소득 수준이 아닌 상대적인 소득 수준에서 찾고자 한다.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일수록 부의 재분배와 관련된 정책에 보수적이고 낮은 사람들일수록 진보적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어떤 정책이 본인에게 유리한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본인이 특정 정책의 실질적인 수혜자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잘 모르며 현재 수혜를 받고 있는 사람들도 본인이 수혜를 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람들의 실제 소득액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연구자들은 절대소득액보다 상대소득액과 그로 인한 사회적 위치에 집중하고 있다. (중략)



            이전 컴퓨터의 하드웨어가 날아가 버려 남아있는 원고는 이메일로 보낸 초창기의 원고다. 사이트에 가면 언제든지 글을 볼 수 있으니 굳이 저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다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들어가 보니 사이트가 아예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이래서 자주 백업을 해야 한다)


            당시 아프면서도 했었던 이런저런 활동들은 모두 전공이나 경력을 살린다는 의미가 있었다. 일단 온라인으로 편하게 개인적인 시간에 맞춰 일할 수 있었으니 당시에는 유일한 선택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규칙적이고 일이 정기적이지 않다는 큰 단점이 있었다. 아파서 일을 자주 할 수 없기도 했지만 일하고 싶어도 일이 없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런 시간에는 너무나 무기력하고 쓸모없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정기적으로 있는 것이 중요했다.


            몸이 조금씩 나아지면서도 밖으로 나가는 것은 여전히 무서웠다. 

            그때, 매력적인 공고를 보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프리랜서가 되는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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