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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덕이 Dec 29. 2023

나는 어떻게
(자발적으로) 프리랜서가 되었나 1

            프리랜서가 되기 전에는 한 번도 프리랜서의 삶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아무래도 심리학과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전공이니까. 

            보통 우리 학교 심리학과 학부 졸업 후 테크는, 

            1) 대학원 진학

                1-1)  대학원 졸업 후 유학

                1-2)  대학원 졸업 후 무난하게 (대) 기업에 합격하여 승승장구하기

            2) 무난하게 (대) 기업에 합격하여 승승장구하기

            둘 중 하나였다. 

            당시 학부생인 나의 최종 목표는 유학이었다. 1번 테크까지는 무난하게 왔는데 대학원 2년 만에 공부는 쳐다보기도 싫은 지경이 되었다. 인자하신 지도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대학원도 관뒀을 것이다. 그래서 원래 진로라고 생각한 1-1번을 버리고 마지막 학기에 급하게 1-2번을 택했다.


            문제는 내 취업 역량이 형편없다는 것이었다. 학부 시절 내내 취업을 준비한 친구들과는 달리 한 번도 취업 준비를 해본 적 없어 그 흔한 인턴, 기업에서 진행하는 대학생 타깃 프로그램, 공모전 등에 참여하지 않았다. 쭉 공부만 할 거라 생각했다가 급하게 진로를 변경한 거라 지원 자체를 무지성으로 했다. 잘 모르는 기업에 서류 작성도, 면접 준비도 많이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잘 보여주면 되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임했다. 문제는 '있는 그대로의 나'는 개인적 자아라는 점이다. 사회적 상황에서는 사회적 자아가 요구되는데 이때의 나는 참 순수하게도 사회적 자아는 거짓 자아라고 생각했다. 순수를 넘어 순진한 지경이었다. 

            어느 정도로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를 동일시했냐면 회사 면접에서 자꾸 심리학 이야기만 해서 면접관이 왜 대학원에 계속 안 있고 취업하려고 하냐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그때는 심리학에 대한 (짝) 사랑을 남들도 알아주는군!이라고 뿌듯해했는데 면접관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포장하는 법도 모르고 솔직함이 베스트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내가 몇 년 뒤,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면접 강사로도 일한 걸 생각하면 세상 일 참 모를 일이구나 싶다.


            취업할 준비가 안 된 내가 1-2번이 되었다면 그건 뭔가 잘못된 것이다. 다행히 세상은 그렇게 잘못되진 않았는지 1-2번이 되는 운은 따르지 않았다. 대신 전혀 생각하지 못 한 1-3번 선택지가 생겼다.


                     1-3) 대학원 졸업 후 굉장히 작은 가족회사에 합격하기


            1-1번이나 1-2번을 택해 승승장구하는 동기들에 비하면 페이도, 복지도, 명성도 없지만 순전히 업무가 재밌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진로였던 출판 업계 일은 실제로도 정말 즐거웠고 몰입감이 있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밤 사이 쌓인 이메일을 읽을 생각을 하면(해외 출판사와 에이전시와 연락해야 했기에 시차가 있다) 설레어서 잠이 안 왔을 정도다. 어쩌다 새벽에 깨면 회사 메일 계정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읽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 해 읽었다가는 회사에서 읽을 메일이 하나 줄어들 테니까.


           위 내용이 팔불출 같아 보인다면 정답이다. 어떻게 저런 들뜬상태로 1년을 다녔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한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건강 문제가 제일 컸다. 저런 상태로 1년이나 다닌 게 문제였다.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일은 중독적으로 하는지라 회사에 가면 점심시간 외에는 거의 일어나질 않았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물을 많이 먹어 억지로 화장실 가는 횟수를 늘려봤지만 그래도 회사에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오로지 일만 했다. 핸드폰을 잠깐도 볼 시간이 없어서 업무 시간에는 거의 핸드폰을 보지 않았다. 일이 그렇게 바빴나?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그래도 짬짬이 쉬려면 요령껏 쉴 수 있을 것이다. 1년 차는 요령 없이 그냥 일 하라니 일만 하는 영락없는 신입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집중해서 일하고 퇴근하면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 내내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땅이 출렁이는 것 같아 나도 따라 출렁였고 어지러워서 울렁거렸다. 컴퓨터를 많이 봐서 그런 건 알겠지만 일하려면 컴퓨터를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현대인의 직업병은 일하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며 몇 달 동안 어지럼증을 버텼다. 하지만 결국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몇 년 만에 찾아온 이석증이었다. 이석증이 생기면 얼마간 쉬어주면 금방 잦아들던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꽤 오래갔다. 쉬지 못하고 일하는 시간 내내 집중해서 어지러울 때까지 컴퓨터를 보니 이석증이 나을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말썽이었지만 버텨줬던 허리도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퇴사를 마음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20대 중반에 첫 회사를 그만 둘 배짱이 어디서 나왔나 싶다. 준비되지 않은 입사만큼 준비되지 않은 퇴사를 감행할 수 있었던 데는 주변 친한 사람들이 우후죽순으로 퇴사한 것도 한몫했다. 그래도 모두가 퇴사하는 것은 아닐 텐데 환경에 잘 영향받는 팔랑거리는 마음을 가진지라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퇴사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물론 퇴사 이후 계획은 없었지만. 여행 좀 갔다 오고 좀 쉬고. 그리고 천천히 생각해 봐야지 하는 안일하고 느긋한 마음이었다. 


            무작정 잡아놓은 여행 전날까지 요령 없이 일하는 스케줄을 짰고 다음 날 바로 스페인으로 3주 간 떠났다. 감기에 걸려 고생했고(4월의 스페인은 생각보다 춥다. 추울 때 해결책은 버티지 말고 빨리 따뜻한 옷을 사야 함을 알게 해 준 여행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 생각만큼 장밋빛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순간들이 있었다. 그래, 여행은 샤랄라 하지 않았지만 여행 이후에 해보고 싶은 걸 잔뜩 해야지. 2016년은 대퇴사 시대도 아니었고 지금처럼 사람들이 퇴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때도 아니었다. 그리고 20대 후반의 시작을 찍은지라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그땐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곧 디스크와 공황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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