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0년 차 심리학 프리랜서 심덕입니다.”
“오, 프리랜서 생활을 오래 하셨네요. 그런데 심리학 프리랜서면 어떤 일을 하시는 거예요?”
“주로 강의하고 있어요.”
“심리학 강의요? 어디서 강의하시는데요?”
“학원에서도 하고 학교에서도 하고…”
“아, 그런 데서도(?) 심리학 강의를 해요?”
*본 대화는 약간의 픽션과 논픽션이 혼재되어 있다. 첫째 줄만 픽션이고(저런 식으로 자기소개를 해본 적은 없다) 나머지는 전부 논픽션이다.
10년 차, 심리학, 프리랜서.
누구나 아는 세 단어는 함께 쓰이는 순간 사람들한테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세상에는 많고 많은 프리랜서들이 있지만 보통 프리랜서라 하면 일러스트레이터/디자이너/IT 업계 등 특정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딱히 기술도 없어 보이는 심리학 프리랜서는 도대체 뭔가 싶다. 사실 스스로 하는 일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심리학 프리랜서는 두 단어 사이에 ‘관련 업무를 하는’이 생략되어 있지만 이 문구를 포함시킨다고 뜻이 명확해지는 것 같지도 않다. 이 일을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같은 프리랜서라면 당장 내년이라도 이 지위가 박탈당할 수 있음을 알 것이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이지 일이 없으면 그저 한 명의 백수다. 언제라도 없어질 수 있는 동트기 전 싸라기눈 같은 작고 소중한 커리어를 위해, 매 년 찾아오는 비수기가 아직도 적응되지 않아 먹고살 걱정을 하다 결국 제대로 쉬지도 못 하고 있는 자신을 위해, 한 해 한 해 잘 견디며 살아온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노라’라고 위안을 삼기 위해 기록을 남겨보고 싶어졌다.
이 글은 심리학을 전공하고 혹시나 직업으로 삼고 싶을 분들에게,
다른 업계에 있지만 또 한 명의 불쌍한 프리랜서와 동지애를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아니면 이런 류의 글을 읽으며 정규직인 스스로가 썩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고 위안 삼고 싶은 분들에게
큰 도움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술술 읽힐 수 있길 희망하는 글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과 세상을 살지만 결국 본질은 그렇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자기소개로 글을 시작했으니 일단 하고 있는 일을, 또는 이전에 했던 일을 이야기하면 ‘심리학 프리랜서’라는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주로 하는 작업은 위 대화의 논픽션 부분에 해당하는 강의이다. 불러주는 곳에서 강의를 한다. 강의를 사양한 적도 있지만 먹고살아야 하는 프리랜서는 웬만해서는 강의를 한다. 강의 조건이 좋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고민이 없지만 세상사가 그렇게 작동하지 않음을 이제는 모두 알 것이다. 강의 조건이 말도 안 되는 경우도 오히려 고민은 없어 편하다. 보통은 조건을 듣고 고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른이면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져야지’와 ‘그래도 나라는 개인의 존엄성을 지켜야 하지 않나’ 사이에서 고민한다. 이 고민은 계약기간에도 계속된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강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즌별, 학기별, 년 단위별로 계약하기 때문에 힘든 수업일수록, 개별 과외일수록 고민은 계속된다.
강의는 1:1에서 학급 단위까지 강의한다. 이때 강의하는 내용은 ‘심리학’이다. 이는 ‘경제학’이나 ‘철학’만큼이나 광범위하지만 보통 심리학 강의를 한다고 하면 왠지 모르게 사람들은 어떤 내용을 강의할지 알 것처럼 행동한다. 전공자들이라면 이제는 진절머리 날 MBTI부터 사람을 사귀는 법, 행복해지는 법, 고민이 없는 법, 일(또는 공부)을 잘 하는 법 등 다양한 '법', '법', '법', 방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런 내용들은 재미도 있고 사람도 끌겠지만 교육 시장에서의 심리학은 해당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보통 강의 주제는 ‘심리학입문’이나 ‘심리학개론’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몇 년 전부터는 풀을 넓혀서 요즘은 학문으로의 심리학만 강의하는 것이 아닌, 좀 더 실용적인 심리학 내용도 다루긴 하지만 오랫동안 내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준 것은 입시 과목으로써의 심리학이다.
강의 장소는 학원, 유학원, 학교, 도서관 등이고 개별 수업도 많이 진행하는 편이다. 코로나 이후 개별 수업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이렇게 오래 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일 때문에 힘들고 고민을 많이 한다. 수업이라고 하더라도 심리학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즐겁다. 하지만, 경쟁과 평가가 전제된 환경에서 점수를 위해 가르치는 곳에서는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항상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느끼고 그게 고민되는 지점이다. 심리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인데 그런 환경에서는 개인을 놓치게 된다. 그래도 새로운 곳에서 강의를 할 때면 약간의 설렘과 긴장이 있다. 강의를 하는 그 순간에는 즐겁고 몰입할 때가 대부분이다. 강의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 누구보다도 가기 싫어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아무도 나의 긴장과 불안은 느끼지 못 할만큼 몰입하게 된다. 그 순간만큼 편안하고 짜릿한 경험은 없다.
필명인 심덕은 ‘심리학 덕후’의 줄임말이다. 기본적으로 덕후는 짝사랑을 하는 존재다. 짝사랑은 애정을 주는 만큼 돌려받지 못하는 필연적인 불운함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덕후의 미덕은 짝사랑을 끝내지 않는 것이다. 아마 심리학도 그런 존재이기에 (조금.. 가끔은 많이..힘든) 덕업일치의 삶을 아직까지도 끝내지 못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