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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덕이 Jan 26. 2024

번외) 개복치 프리랜서의
가장 쫄리는 순간들

프리랜서의 시작부터 훑다 보니 자꾸 몇 년 전의 이야기를 하게 되어

요즘의 내 상태와는 간극이 있는 느낌이다.

이번엔 번외 편으로 상태가 안 좋은 현재의 상태를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려 한다.

프리랜서는 주기적으로 (많은) 불안정과 (아주 조금의) 안정의 주기를 반복하는데 

불안정할 때는 불안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세상사 비슷하구나라는 보편성을 깨닫게 된다.

제목은 '개복치 프리랜서로 살며 쫄리는 순간'이라지만 

나는 프리랜서이기 이전에 개복치였다.

선천적으로 기질이 민감하고 쫄보여서 프리랜서로 살면 좀 더 나으려나 싶었는데,

웬걸, 전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요즘의 내 상태. 보통 일이 충분히 없을 때 이런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쉬어놔야 일이 몰려와도 버틸 수 있는데 불안한 개복치는 불안해하는 게 일이다.




1. 개복치 프리랜서는 새로운 문의/연락이 오면 긴장도가 높아지고 쫄린다.

새로운 수업 문의나 유학원 연락이 오면 

개복치 멘탈을 가진 프리랜서는 연락을 받는 순간부터 

조율과 협상을 할 생각에 이미 마음이 힘들어진다. 

특히 유학원에서 수업 중인 학생에 대해 연락이 오는 경우나 

새로운 수업 스케줄을 짜기 위해 연락이 오는 경우는 

시간 조정을 해야 한다. 나는 이 시간 조정하는 파트가 굉장히 스트레스다.

픽스되어 있는 스케줄은 피하면 되니까 편한데

픽스되어 있지 않은 스케줄 중, 여기서 얼마나 일하는 시간으로 안배할 것인지,

혹시 픽스된 스케줄 중 불가피하게 변경해야 한다면 그게 가능한지 아닌지

(대부분 먼저 잡힌 스케줄을 우선시하지만 사정상 변경해야 할 경우) 등등을 고민해야 한다.


10년 정도 프리랜서를 하며 나름 세운 몇 가지의 원칙은 있지만

(최대한 평일 저녁과 주말은 피한다. 가족과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 정한 규칙)

또 무조건적인 건 아니기에 그때 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 하면 시간을 빼놓아야 하나 고민한다.

대부분은 그 기간만 그냥 해주지 뭐...라고 생각하고 하긴 하지만 

그래도 회색 영역에 있는 스케줄을 하기로 마음먹는 것은 내게는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다.

실제로 평일 저녁과 주말에도 일한 적이 많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그래도 어쨌건 원칙은 나름대로의 경험과 기준에 의해 정해진 것이기에

이 원칙을 타협해야 하는 스케줄 조정을 할 때 딜레마에 빠진다.


이상적인 시간대에만 일하면 일이 줄어들고 

이상적이지 않은 시간대에 일하려니 내가 1순위로 생각하는 가족과의 시간이 줄어든다. 


무엇보다 끙끙거리면서 겨우 결심을 굳히고 원칙을 깨면서 최대한 원하는 시간을 몇 달치 비워놨더니 

수업 인원이 모집 안 됐다고 개강이 취소된다던지 

(그리고 그걸 나한테 끝까지 얘기 안 해줘서 

내가 몇 번이나 확인을 해서 개강일 2일 전쯤 겨우 취소 확정 소식을 듣는다던지)

그럴 때는 참 허탈하다.

본인이 급할 때는 얼른 가능한 스케줄을 내놓으라며 닦달하지만

그로 인해 저당 잡힌 내 스케줄을 관리할 때는 오히려 나한테 왜 이렇게 여유가 없냐는 듯이 대답한다.

나의 시간이 존중된다고 느끼지 않을 때, 그러면서 이걸 어디까지 용인할지를 돈과 저울질할 때, 

그 순간은 참 쫄리고 허탈하고 고민되는 지점이다.

(그렇다, 이것은 그동안 쌓인 나의 투덜거림이고 피로감을 유발한다면 살포시 뒤로 가기를 눌러도 괜찮다)


마음이 급해서 일단 내게 되는 시간은 다 알려달라고, 보충을 더 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해서

고민 끝에 비어있는 스케줄을 보내면 학생한테 물어본다고 한다.

그리고 한동안 소식이 없다.

일주일 뒤에 학생이 바빠서 이번엔 하겠다고, 다른 보충 스케줄을 잡자고 하는 유학원도 있다.

저번 글에서 마음만 급해서 학생과 합의 안 된 채로 선생 확보만을 위해서 

연락한 학부모의 경우를 이야기했는데

유학원도 마찬가지다.

 

나한테 물어보는 게 더 쉬운 걸까? 

내가 만만한 걸까?


에이, 거기까지는 안 가려고 한다. 

그쪽에서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일들이 몇 년에 걸쳐 쌓이면 그 업체는 내 몇 없는 블랙리스트에 추가가 된다.

그리고 그 업체와는 앞으로 안 거래하면 그만이다.

물론 이렇게 쿨하게 한 경우는 별로 없고 지금까지 딱 한 번 있었다.


오랫동안 프리랜서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타인을 수용하는 능력이 점점 더 넓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인정이 아니라(마음에 들진 않으므로) 수용한다는 것이 포인트다(넌 그런 단점이 있는 걸 알겠다. 그렇지만 아직은 너와 함께 일할 수 있겠다).


내가 어디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지,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나의 마지노선은 무엇인지,

이걸 느슨하게 가져가면서도 나의 권리와 마지막 선을 넘지 않는 것,

그래야 프리랜서로 생존할 수 있다.


말은 이렇지만 항상 쿨하지 못 한 느낌이다...


2. 난 의외로 일하는 순간에는 별로 안 쫀다(?).

그런데 매 번 쪼는 순간이 있는데 그게 언제냐면 시작하기 바로 직전이다.

수업이건, 상담이건, 컨설팅이건, 무엇이건 시작 바로 직전에 쫀다.

지하철에서 쫄기 시작할 때부터도 있고 교실 문을 여는 그 순간에 쫄릴 때도 있다.

상담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순간에 쫄릴 때도 있다.

그때의 쫄리는 느낌은 롯데월드 자이로드롭 가장 꼭대기에서 하강 직전 잠깐 멈춰있을 때의 느낌이다.

 

롯데월드 자이로드롭은 아니고 내 발도 아니다. 대구 이월드 스카이드롭 정상이라고 한다.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잠깐 멍해지고 심장이 엄청 뛴다.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초기 1~3년 차만 돼도 티가 났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외관으로는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참관하러 오신 관계자 분이 긴장하는 것처럼 전혀 안 보였다고 하셨으니

모르는 사람에게 밖으로는 티가 안 나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속으로는 엄청 쫄고 있다.


유치원 때부터 발표공포증이 있었으니 거의 20년 동안 발표공포증이 있었던 건데 

그게 고작 10년 만에(고작이라고 하려니 새삼 긴 시간이긴 하지만) 없어질 리 없다.

생각해 보니 10년이 지났기에 이제 남들한테는 티가 안 나는 수준까지 온 것 같다. 

하지만 나 자신은 알고 있다.


내가 얼마나 수업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지,

혹시나 내 전문성이 떨어져 보일까 봐 걱정하는지,

떠는 모습을 보이면 창피를 당하지는 않을지,


그런데 왜 프리랜서 강사, 상담사를 하냐고 묻는다면

그 순간이 찰나인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그 순간은 떨리지만 얼마 안 가 적응하게 되고

그때부터 일은 내게 엄청난 몰입감을 준다.

긴장으로 인한 아드레날린은 금방 각성과 몰입과 희열을 가져다준다.

준비해 온 수업을 잘 진행하거나 내담자와 호흡이 잘 맞는 상담을 했을 때 희열은 

힘들게 등산한 꼭대기에서 시원한 물을 모금 마시는 느낌이다.

성취감은 고통이 없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신인 때부터 무대에 올라가도 떨지 않는다는 JYP도 있지만

방송 경력 30년이 넘어도 생방송 때는 아직도 긴장된다는 유재석도 있다.

하지만 둘은 모두 본 무대에서는 프로다. 


강의나 상담을 할 때 이렇게 떠는데 

과연 이 일을 하는 것이 맞나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딜레마를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심리학 이론을 찾았다.

솔로몬(1980)에서 인용. 학습심리학(Winfred F. Hill 저, 1998년 출간)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의 동기를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인 대립과정이론은 특히 중독 현상을 잘 설명하는 이론이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마약, 술, 각종 매체에 중독이 되고 

무서워 죽겠는데도 공포영화를 보고 귀신의 집을 들어가는지 궁금하다면 이 이론을 참고하면 된다.

A란은 처음 자극을 받았을 때(자극 사상) 

느껴지는 쾌감(a)과 불쾌감(b, 대립 과정)의 양이 각각 다름을 시사한다. 

처음에는 쾌감이 불쾌감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자극 경험 후 최종 반응(표출된 쾌 반응)은 +의 영역이 더 크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가 된다.

즉, 자극 경험 후 엄청난 쾌감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기분이 좀 불쾌해지는 것이다.

B란은 해당 자극을 여러 번 경험하여 익숙해지면

느껴지는 쾌감(a)과 불쾌감(b)은 그 양이 비슷하여

최종적으로 쾌 반응은 거의 없고 이후에 불쾌감이 오래도록 지속된다.

그래서 중독자들은 중독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을 겪고 

더 이상 신체적으로 쾌락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 없지만 

불쾌한 반응이 강해서 이를 그나마 덜고자 물질 사용 의존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행히 수업이나 상담은 물질 사용 장애의 '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몰입, 성취, 흥미와 관련 있는 활동은 처음에는 활동 후 허탈감을 경험하고 몇 분 동안 유쾌함을 느끼지만

여러 번 경험이 쌓이면 활동 전에는 약간의 민감함이 있는 각성 상태에서 활동 후 2~3시간 동안 굉장한 유쾌함을 느낀다고 한다(Epstein, 1967의 스카이다이버 연구 인용).

해당 연구는 스카이다이버들의 스카이다이빙 전후를 본 결과에서 가져왔는데 

수업과 상담이 스카이다이빙만큼의 짜릿함을 불러오진 않지만 

정말 괜찮은 수업/상담을 했을 때는 꽤 오랫동안 뿌듯하고 짜릿하다. 

그리고 나름 마음에 드는 정도로 일을 했다면 안도감이 몰려온다.

그리고 그 느낌은 꽤나 매력적이다.

그래서 지금도 일을 하기 시작할 때는 약간의 간질거리는 긴장과 각성이 있지만

끝나고 나면 기분 좋을 걸 알기에 수업을 잡고 상담을 한다.

일상에서 일로 성취, 몰입감, 뿌듯함을 느낄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래도 이 짤에는 십분 공감한다. 학생일 때는 몰랐지... 선생님이 나보다 더 수업을 싫어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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