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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덕이 Feb 23. 2024

심리학 대학원 가는 법

대학원도 컨설팅합니다

나는 학부 졸업 후 바로 일반대학원으로 진학해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내 세부전공은 산업조직심리학으로 

이 전공으로 밥벌이를 한 것은 거의 없으나

일반대학원 입시를 경험하고 랩 생활을 한 것은 큰 자산이 되었다.

심리학과는 이공계처럼 대학원은 연구실(랩)로 이루어져 있고

각 연구실에서 대학원생을 뽑는, 철저히 랩 위주의 생활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연구실 생활을 한다는 것이 보통의 문과대학/사회과학대학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은 다양한 연령대의 다른 전공을 경험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고등교육을 고려하는 전공이다.

하지만 그 인기와 특수성으로 인해 심리학 대학원은 다른 문과/사과대 대학원 전공보다

더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고 있다.

처음부터 성공률을 높여 최대한 빠르게 진학하기 위해,

또는 나름 몇 번의 입시를 경험하고 난 이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경우, 

어떤 케이스건 관심을 가진 분들의 문의를 받아 대학원 입시 컨설팅을 하고 있다.


보통 의뢰되는 경우는 

비전공자,

자대가 아닌 타대(보통은 졸업 학교보다 비슷한 티어 또는 그 이상) 진학을 원하는 경우,

상담/임상 쪽 전공을 희망하는 경우이다.

이 세 가지가 합쳐진 경우가 제일 많다.

다른 세부전공이면 상관없지만 상담/임상은 자대 심리학과생들도 가기 어려울 만큼 

경쟁이 빡세며 보통 석사 경쟁률은 10:1~20:1까지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린다.

이때 상대방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린다.


1. 어느 정도 찾아보고 이미 마음의 준비를 끝냈으며 상담/임상이라는 거친 길을 가기로 마음먹은 경우

: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눈에서 의지를 엿볼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겠다는 열정을 볼 수 있다. 물론, 몇 달 뒤에는 다크서클이 내려오고 힘들어하지만 대부분 좋은 결과가 나온다.


2. 대학원을 가고 싶어서 대학원을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선책 중 대학원을 고려하는 경우

: 당황한다. 심리학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임상과 상담이 크게 관심 있다기보다는 심리학에서 가장 유명한 전공이라 골랐다. 그런데 이렇게 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듣고 낙담한다. 특히 도피책으로 대학원을 고민하는 경우, 굉장히 수동적이며 연구계획서를 거의 작성해오지 않는다.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AP 심리학을 억지로 공부하고 있는 학생 같은 느낌이다. 중간 드랍률이 높다.


심리학이 좋아서 다른 전공은 고민하지도 않았던 나에게는

취업을 유예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고려한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충격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죄송한 이야기지만 그런 분들이 대학원에 가면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으로 심리학 대학원에 가고 싶은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앗아가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몇 년이 지나니 그것 또한 그들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피책으로 간 곳에서 생각보다 괜찮은 인생의 경로를 만날 수도 있고 

운명이라고 여겼던 곳에서 실망하고 갈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내 이야기다.

일반대학원에서만 제대로 된 심리학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는

일반대학원에서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부에도 그렇게 집중할 수 없었다.

이후 특수대학원인 교육대학원에서 상담을 배우면서 

일반대학원 때보다 더 보람 있고 더 깊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훨씬 더 몰입하고 많은 것을 공부하는 대학원 생활을 했다.

그러고 나니 그때 얼마나 어렸고 오만했는지 알게 됐다.

사람들은 다 제각기 자기의 사정이 있고 타인은 이를 절대 알 수 없다.

결국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내 전문성이 필요해서 문의가 온 경우에는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우리라 생각했다.


입시 컨설팅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는지 찾아보니 입시 컨설팅이라고 하길래

우선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

입시에는 

AP 심리학으로 심리학 기초 지식 다지기+영어 심리학 개념 정리하기, 

문제풀이, 

영어 논문 함께 읽고 해석하고 연구 가설 도출하기, 

컨택 메일 작성하기, 

연구계획서/학업계획서/자기소개서 작성하기, 

면접 준비하기 등 입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필요한 만큼 필요한 때에 진행한다.

비전공자인 경우, 보통 위에 나와있는 것들을 전부 진행하고

전공자인 경우 심리학 기초지식은 있을 테니 본인이 원하는 만큼만 진행한다.

영어가 어려워서 영어 논문을 함께 읽기 원하는 분도 있고

서류 준비를 원하는 분도 있다.

서류 제출 직전에 계획서를 1~2회 함께 보길 원하는 분도 있었고

처음부터 긴 호흡으로 몇 달간 함께 입시 전형을 준비하길 원하는 분도 있었다.

현재 대학원생이지만 영어가 어려워서 세미나 수업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과는 영어 논문 읽기를 함께 진행했다.


컨설팅을 하며 다양한 상황에 있는 다양한 분들을 만났다.


농사하시다가 상담 쪽으로 틀고 싶다고 하는 경우(이 분은 수확철에는 수업이 어렵다고 하셨다),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으로 진로 방황 중 심리학을 해볼까 고민하는 경우,

해외근무 중인 배우자가 코로나가 한창 심했을 때 한국에 들어와야 해서 그사이 대학원을 다닐까 고민하는 경우,

아르바이트 3개를 하며 대학원 준비를 하는 경우,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족/환경/자아 찾기 등의 이유로 완전히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는 경우,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스스로 나아지기 위해 공부하고 싶다고 하는 경우.


매 년 새로운 분들을 만나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전공이 다르고 학교가 다르고 관련 경험이 없어서 뭘 할지 모르겠다고 할 때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고 한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심리학 전공이 아니어서 관련 내용을 쓸 게 없다고 하는 경우를 많이 만났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삶의 어딘가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소재가 나온다.

그런 순간을 찾고 연결지점을 만들어 내는 순간이 즐겁다.

처음에는 가설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으니

하나의 큰 주제를 가져와서 이걸 연구하고 싶다고 하다가

시간이 지나고 많은 논문과 고민과 연구 끝에 

그럴듯한 가설 두세 가지를 들고 와서 연구 구조를 짜고 실험 설계를 해나가며

연구계획서를 채워나가는 모습을 볼 때,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뿌듯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가끔씩 내게 돈을 줄 테니 자기소개서/연구계획서/학업계획서를 아예 '작성'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돈을 얼마나 주던지 그런 업무는 하지 않음으로 단칼에 거절한다.

컨설팅의 영역은 도움의 영역이지 실행의 영역이 아니다.

결국 옆에서 가이드를 제공할 수 있어도 실제 해내는 것은 본인이어야 한다.

남의 도움으로 들어가 봤자 면접에서 들통나며

운 좋게 합격까지 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대학원 생활을 버텨낼 수 없다.

결국 본인의 실력을 스스로 쌓아야 한다.


그래서 심리학 대학원은 어떻게 가야 하는가?

일단 심리학개론서를 좀 읽으며 내가 정말 이 학문을 하고 싶은지 고민해 보기 바란다.

생각보다 심리학은 MBTI나 심리테스트 그 이상의 학문이고 생각보다 과학적(?)이다.

입시 추천서는 <심리학과의 만남 6판> Richard A. Griggs, Sherri L. Jackson 또는 

심화서 <마이어스의 심리학 제13판> David G. Myers이다.

무조건 둘 중에 한 권은 읽어야 한다.

중요하다. 그래서 다시 말한다. 무조건 둘 중에 한 권은 읽어야 한다. 

시간이 많으면 마이어스를 읽는 거고 시간이 없으면 심리학과의 만남을 읽으면 된다.

읽으면서 어떤 세부전공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다.

가장 관심 있는 챕터가 본인이 하고 싶은 세부전공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면 그 세부전공에서의 전공서를 좀 더 찾아서 읽어본다.

그리고 해당 전공이 개설되어 있는 대학교 또는 해당 주제를 연구하는 교수님을 찾는다.

연구실 홈페이지가 있다면 교수님의 논문이나 프로젝트 등을 찾아보고 

이후 읽은 논문들의 구조와 비슷한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어렵게 느껴진다면 당연하다.

심리학과생들은 4년 내내 수업 때 하고 그럼에도 어려워하는데

처음부터 하려면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천천히, 차분히, 끈기를 가지고 호기심을 잃지 않으면

누구나 해낼 수는 있다. 

한 명의 심리학도가 세상에 늘어나는 일은 언제든지 기쁘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심리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날 때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대학원을 준비하는 시간이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고심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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