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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덕이 Mar 01. 2024

10년 차 프리랜서의
인생 최악의 면접

약 한 달 남짓의 시간 동안 두 번의 면접을 보았다.

실로 오래간만에 보는 면접이었다.

마지막으로 면접다운 면접을 본 게 2022년 6월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수업은 의뢰로 들어오거나 공고를 보고 지원해서 한다.

의뢰된 경우는 따로 면접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고

수업 조건과 내용을 확인 후, 바로 일에 착수한다.

공고 중에서도 유학원 같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 짬바(?)가 있는지라 신입 느낌의 면접이라기보다는

보통 조건을 확인하는 자리인 경우가 많았다.

즉, 자기소개, 지원동기, 어떤 식으로 수업을 이끌어나갈지, 수업 시연 등등

면접다운 면접에서 나올만한 내용은 스킵하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간다.


중학교 3학년 때 특목고 입시를 위한 면접을 시작으로

다양한 외부활동, 아르바이트, 입시, 직장 등

나름대로 다양한 환경에서 여러 면접을 봐왔지만

오래간만에 면접을 보니

잊고 있었던 최악의 면접썰이 생각났다.


아마 몇 년 전의 여름이었을 것이다.

한 유학원에서 미국 대학을 다니고 있는 학생들을 가르쳐줄 튜터를 모집했다.

그냥 튜터였으면 관심이 없었을 텐데 심리학 전공 수업 관련 튜터를 모집한다기에 솔깃했다.

평소 받는 페이만큼은 아니었지만

심리학 관련 일은 많지 않고 그래서 항상 새로운 영역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좋아했기에,

그리고 신박하게 수업을 준비하는 준비시간도 페이를 준다고 해서,

'되면 좋지 뭐'라는 생각에 지원했고 면접 날짜가 잡혔다.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조금 이르게 도착했고

카운터에 앉아있던 직원이 음료수를 하나 주면서 대표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그리고 본인도 같이 따라와 대표실에 앉았다.


지금까지 열 군데 이상의 유학원에서 면접을 보고 근무해 봤지만

직원이 함께 들어와서, 그것도 면접관이 아닌,

면접자 뒤에 공책을 들고 앉는 걸 본 적은 없기에 약간 당황했다.

그래도 그냥 면접 보는 거지,라는 생각에 착석했다.

여기서부터 이상함을 느껴야 했다.


대표라는 사람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뒤적거리며

첫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석사 두 번이나 하고 박사 유학 안 갔어요?"

지금까지 어떤 유학원에서(아니, 어떤 곳에서도...) 저런 질문을 받은 적은 없었고

우리 부모님이나 친척들도 안 하는 질문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받은 적은 없었기에

두 번째로 당황했다.

어느 정도 진지하게 답변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웃었더니(싸울게 아니라면 불편한 질문엔 이게 최선이다)

다시 재차 물어보길래 어쩌다 보니 타이밍을 놓쳤다는 절반은 솔직한 대답을 했다(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가기 싫었....).

"이력도 좋은데 아까워서 그렇지."

네, 저도 좀 아깝긴 한데 처음 본 님이 그게 왜 아까우신지....

다행히 입 밖으로 꺼낼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을 구별할 나이가 되었기에

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쉽게도 그 대표는 그렇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촉은 들어맞아 당연하다는 듯이 결혼 여부나 자녀 여부를 물어봤으며

곧이어 원래 다른 지원자들도 많았는데 특. 별. 히. 동문이라 정이 가서 한 번 보자고 불렀다고 했다.


면접을 보기 전 홈페이지를 필수적으로 체크한다.

대표의 약력을 봤었지만 출신 학교는 애매하게 적혀 있었다.

분명 내 모교랑 같은 학교이긴 한데 같은 캠퍼스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90년대에 졸업했다지만 학부만 적혀있고 전공은 없고....

그래서 이렇게 모교 드립이 나올 줄 몰랐다.


우리 학교는 모래알로 유명하기 때문에

선후배라고 해도 나도, 상대방도 큰 감흥이 없는 느낌이다.

5년간 근무했던 학원에서 같은 강사 선생님이 우리 학교 선배셨지만

아무도 그 얘기를 하지 않았고 그냥 인사 정도만 하고 지나가는 사이로 몇 년을 지냈다.

솔직히는 대학보다는 심리학과인 게 나한테는 더 반갑다. 같은 대학은 1 정도 반갑다면

심리학과는 대학 상관없이 더 공통점이 많은 느낌이라 더 챙겨주고 싶다.

그런데 선배라서 후배를 챙긴다는 이 대표의 말에,

그것도 후배니까 특별하게 면접에 불렀다는 말에,

속으로는 (이미 첫인상부터 별로였기에) 어쩌라는 건지 싶었지만

겉으로는 사회화된 성인이니 웃으며 감사하다고 했다.

그렇게 얼추 마무리하고 일 이야기로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면접 약속을 잡기 위해 대표가 직접 전화 왔을 때

이미 30분 정도 업무에 대한 소개를 들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페이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봤었다.

대표는 내 평소 페이보다 적은 값을 불렀지만

준비 비용을 챙겨줄 것이고

업무가 어렵지 않을 거라 괜찮을 거라 했다.

그래서 만나서는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하자고 이야기했기에

나는 이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대표는 다른 생각이었나 보다.


대표는 본인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는지 자랑하기 시작했다.

정계의 유명한 사람들을 알고 있으며

그중 본인이 좋아하는 듯한 박정희와 그의 오른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박정희의 오른팔은 박정희가 원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눈치채고 필요한 것을 대령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 사람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그렇게 좋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 업무 면접은 30분 이내로 끝났기에

이 면접 후에 다음 미팅을 어느 정도 맞춰 잡아놓은 나는

30분 가까이 됐지만 본론엔 가지도 못 해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이제 전화로 이야기한 일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전화로 이야기한 것 외의 추가적인 업무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지,라는 마음으로 내가 수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업무 강도나 페이는 그럭저럭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윤리적인 차원에서 내가 수용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나왔고

이미 그게 마지노선이었던 나는 이야기를 다 들은 후

공고에 적혀있던 일과 성격이 조금 달라서 제가 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고

조율 과정에서 못 하게 되었을 경우, 어느 쪽이건 빨리 알려주는 게 가장 깔끔하고 좋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에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이야기해 줬다.

이 배려를 그 대표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 한 걸 알 수 있었던 이유는

대표가 무지막지하게 화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한테는 비윤리적이어서 못 하는 일이었지만

누군가는 그걸 할 수 있는 걸 알았기에(이미 여기서는 하고 있는 것 같고)

분명 못 하는 이유로 워딩을 충분히 고심하고 심사숙고하며 이야기했다.

도덕적인 판단을 내비치지도 않았으며

그냥 내가 생각했던 일이 아니라 일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대표는 아까 박정희의 오른팔 이야기를 다시 언급하며

눈치 좋게 알아듣지 않았냐고, 그러면 왜 여기까지 와서 자기의 시간을 낭비하냐며 화를 냈다.

아! 그 이야기가 사실 복선이었던 것이다!

본인만 알고 있어서 문제였지만 나름 그 사람은 스토리의 흐름을 짜놓았고

그것을 방해한 내게 화를 낼뿐만 아니라 인신공격적인 말까지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딜레마에 빠졌다.


1. 한 성깔 하는 이 성질머리를 있는 그대로 표출하며 함께 싸운다.

2. 굳는다.


보통은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는 삶을 오랫동안 살아왔다.

다혈질이지만 화를 내면 급격하게 피곤해지고

내가 원하는 만큼 쿨하게 화를 내지도 못해

성질머리를 내도 후회할 때가 많았다.

또는 충격과 분노로 굳어버릴 때도 많았다. 그리고 집에 와서 '그때 그렇게 말할걸...'이라며 후회했다.

두 선택지 중 하나도 끌리지 않아 고민하는 내게

상담자 자아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했다.


3. 이 상황을 상담 장면처럼 생각하기. I-메시지를 활용해 보자.


지금 생각해도 분노로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 때 어떻게 이 생각을 해냈는지 모르겠다.

그 주에 학생들한테 I-메시지를 이야기한 게 갑자기 생각났거나 점화되어 있었나 보다.

학생들한테는 상담 기법 써보라고 이야기하면서

정작 나는 마음수양을 게을리하면 볼 면목이 안 살지 않겠는가.

차라리 상담장면이라고 생각하면,

금쪽이 내담자가 왔다고 생각하면(좀 나이가 많긴 하지만)

약간의 심적 거리가 생겨 이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공격하는 말투가 아닌,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내가 느끼는 바를 표현했다.


"전화에서 말씀하신 업무의 세부사항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로 알고 있었는데

논의하다 보니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달라 저는 일하기 어렵단 말씀을 드리고 있었는데

대표님께서 여기에 화가 나신 듯해서 저도 갑작스럽게 느껴지고 좀 당황스럽기도 하네요."


'내가 당황스럽다'는 내가 화났다나 짜증 났다만큼의 공격성을 담고 있지 않으면서

나도 지금 이 일이 잘 이해되지 않고 그로 인해 당혹스럽다는 의도를 전달한다.

그래서 상대방 또는 상황적인 요소로 인해 생긴 부정적인 감정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싶을 때

자주 사용한다.

신기하게도 '내가 당황스럽다'라고 말을 하면 상대방은 대부분 잠깐 주춤하는 기세를 보인다.

그리고 다행히 이 대표도 여기에서 주춤하면서 공격을 멈추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말을 하다가

"아까 그렇게 말한 건 미안하고"까지 얻어낼 수 있었다.


이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면접은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인신공격적인 질문을 받는다는 자격 없는 면접관들에 대한 이야기는

주변인의 경험으로, 또는 기사에서나 접했던 나에게

불행 중 다행으로 처음 경험한 개떡 같은 면접이었다.

그 자리에선 침착하게 대응하고 나름 하고 싶은 말은 얼추 했으며 가해자의 사과도 받았지만

똥을 밟은 느낌처럼 이후에도 찜찜한 불쾌감이 가시지 않았다.

똥을 닦았지만 냄새는 지워지지 않았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 순간이 떠올라

순간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의 내 대처에 대해 아쉬운 마음은 없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내가 성숙했고 할 수 있구나라는 뿌듯함과 대견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마음과 별개로 기분 나쁨은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뭐 이런 거지 같은 일을 겪나 싶었는데

상담자로서 뿌듯한 모먼트라고 생각하면,

(그리고 이렇게 언젠가 브런치에 쓸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그래도 그걸로 의미를 다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진짜 희미하게 남은 악취마저 날려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지금도 좀 긴장이 남은 느낌이다…)




다행히 2월에 본 면접은 모두 합격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이제 3월에는 겨울의 휴식을 뒤로하고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려 한다.

낯선 곳에서 마주칠 기대 못 한 순간이 기대되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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