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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덕이 May 03. 2024

느슨하게 정리하기 (미니멀 남편과 그렇지 못 한 아내)

꼭 정리를 해야 하는가

'오늘의 해야 할 일' 상단에 몇 주 째 차지하고 있는 일이 있다.

바로 겨울 옷 정리다.


그렇다. 벌써 5월이 되었는데도

아직 겨울 옷을 전부 정리하지 않은 사람이 여기 있다.

4월 동안 28도를 몇 번이나 경험하면서도,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1차 옷 정리를 몇 주 전에 조금 한 뒤

또 그럭저럭 살만해져서 지금까지도 계속 버티고 있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옷을 개고, 상자 안에 넣고, 그 옷상자를 들고 집에 비어있는 창고 같은 공간에 넣다가

허리를 삐끗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옷 정리를 해야 하는 봄과 가을에는 유달리 긴장이 된다.

물론 허리 건강이 안 좋다는 신체적인 결함으로 정리를 하기 꺼려지는 것도 있지만(또 다칠 수 있으니까)

그것만으로 정리를 못 했다고 하기에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난 어릴 때부터 제대로 정리를 배워본 적도 없고

정리를 안 한 약간은 너저분한(때로는 지저분한) 환경에서 살아도 괜찮은 멘탈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의 콜라보는 혼자 살 땐 괜찮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 때는 나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이상 문제가 된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나 같지 않은 사람과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문제다.


꼭 정리를 해야 하는가.

항상 궁금했던 질문이다.

궤변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정리를 못 하는 사람으로서(못 하는 것은 능력의 영역이지만 안 하는 것은 의지의 영역이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못 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정리를 못 하는 이유는(자연스레 안을 쓰게 된다. 스스로도 의지가 없는 걸 알고 있으니 속이려야 속일 수가 없다)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이다.

이건 정리를 안 하는 사람들의 기본 논리이다(포기했다).


어차피 다시 쓸 텐데 왜 집어넣어?

두 번 꺼내느니 그냥 밖에 놨다가 필요할 때 쓰면 되잖아.

이렇게 하는 게 더 편리해.

(그리고 옆의 사람을 가장 화나게 하는 것 같은) 나는 어딨는지 알아.



정리를 안 하는 사람의 논리는 왼쪽 방과 같다.

놀던 그대로 놔두고 나갔다가 다음 날 다시 와서 전날의 놀이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다는 것.

심플하고 효율적이다.

꽤 오랫동안 나의 취미 공간(=컴퓨터 책상)은 왼쪽과 같은 모습을 띄고 있었다.

독립 이전에 가족들과 살 때는 이따금씩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불러일으켰지만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진 않은 동생이 있어서 그럭저럭 눈초리를 견디며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하니 1:1 마크를 받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지금도 왼쪽처럼 살고 싶은데 동거인인 남편과 컴퓨터 책상을 공유하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다.

남편은 오른쪽 방에서 평생을 살았고 내가 왼쪽 방의 논리를 숭배하는 것처럼

오른쪽 방의 논리를 숭배한다.

취미용품뿐만 아니라 컴퓨터 바탕화면, 식탁,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 옷장까지

남편의 영역과 나의 영역은 누가 봐도 구별된다.

단순히 성별의 차이에서 기인한 물건의 다름이 아니라

같은 물건이더라도 어느 순간 나는 왼쪽 방처럼, 그리고 남편은 오른쪽 방처럼 배치하며 살고 있다.


남편과 함께 산 지 3년이 넘었다.

함께 살기 시작한 첫 해는 달라진 라이프스타일로 인한 모든 변화를 조율해야 하는 시기였다.

신혼부부들이 으레 그렇듯이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사실이 엄청 좋으면서도

이렇게 좋은 사람이 이제 집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스트레스였다.

그렇게 서로 맞춰가고 남편을 관찰하며 우리 둘 사이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지 고민하다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물건에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미니멀리즘 라이프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미니멀 열풍을 타고 정리에 관련된 도서들이 많이 나왔었다.

분명 결혼 전에 이러한 책들을 자발적으로 엄청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와닿지 않았다.

당연히 물건엔 자리가 있겠지.

예를 들면 옷은 옷장?

이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랑 살아보니 남편은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볼 때마다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난 내 옷이 옷장에 있는 건 알지만 몇 번째 서랍에 어떤 옷이 있는지는 모를 때

남편은 속옷은 몇 번째 서랍, 상의는 몇 번째 서랍, 니트류는 어디에 있다고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었다.

천성이 미니멀리스트인지라 물건을 많이 사지 않고 사면 자리를 정해주고

사용하지 않을 때의 물건은 항상 정해진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언제든지 물어보면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책에서 글로 본 이론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처음으로 본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나온 정리를 안 하는 사람과 정리를 하는 사람의 논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던 일을 끊지 않고 이어서 할 수 있음(연속성)   vs. 물건에는 자리가 있고 다 쓴 물건은 원래 자리로 가야 함(명확성)  


여전히 나는 심적으로는 왼쪽 방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하지만 오른쪽 방의 사람과 함께 살면서 오른쪽 방을 경험하고 그때의 평온함과 고요함도 좋아하게 되었다.

오른쪽 방처럼 살려면 스스로 정리하거나 누군가를 고용해야 한다.

즉, 자신의 노력 또는 돈, 둘 중 하나를 사용해야 하는데

돈을 들일 생각은 없고 노력을 들이자니 들이는 노력 대비 지저분함을 견딜 수 있는 내 항마력이 더 센 걸 알게 되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내 게으름이 생각보다 강력했던 것이다.


3년이 지난 지금 우리 집의 모습은

완벽한 왼쪽 방도, 완벽한 오른쪽 방도 아니다.

집 안 어딘가엔 왼쪽 방 같은 내 영역이 있고

오른쪽 방 같은 남편의 영역이 있다.

그런데 온전히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은 집에 살고 있기에

공동의 공간은 나도 내가 원하는 만큼 "효율적"으로 살고 있지 못하고

남편이 원하는 만큼 "정리된" 모습으로 살고 있지 못하다.

하루종일 혼자 집에 있는 날은 낮 시간 동안 왼쪽 방처럼 살고 있다가

남편이 오기 전 후다다닥 치워서 구색을 맞춘다.

어릴 때 부모님이 오시기 전까지 게임하다가

오셨을 때 마치 게임 안 한 사람처럼 능청 떠는 느낌이다.

30대 중반에 아직도 이러고 있나 싶기도 한데

남편과의 관계를 해치고 싶지는 않기에

함께 사는 동거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오른쪽 방 같진 않더라도 최소한 왼쪽 방 같진 않은 모습을 유지하려 노력 중이다.

가끔씩 시간 계산을 실패해서 아직 치우기 전의 집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구겨지는 미간을 보며 머쓱한 모습으로 얼른 서둘러 집을 치운다.


그래도 이런 타협을 하며 더 이상 싸우지 않을 정도로 정리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인생을 통틀어 가장 깔끔하고 정리된 모습이다.

마음 한편에는 언젠가 돈을 충분히 벌어 각자의 공간을 가질 수 있는 집에 살게 된다면

그때는 나만의 방을 왼쪽 방처럼 해놓고 살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동거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정도로 정리하며 사는 삶.


이게 나의 느슨하게 정리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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