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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덕이 Apr 26. 2024

느슨하게 운동하기

난 운동이 싫다.

30대 중반이 되며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하지만 필수의 사전적 정의와 달리 꼭 하고 있단 것은 아니다)

20대 후반에 목과 허리 디스크가 터졌을 때부터 

운동이 필수인필수여야 하는 삶을 살아왔고 

1년 반 정도는 재활운동을 하며 익숙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인간의 기억력은 순간이고

그때그때 살만해지니 또다시 나태해고 방만해졌다.

그래서 운동이 필수여야 하는데 필수가 아닌 삶을 살고 있다.

담으로 고생하는 일이 매 년 두세 차례 정도는 있고

한 번 온 담은 최소 며칠~2주 정도를 나와 함께 머무른다.

올 해는 큰맘 먹고 연초부터 열심히 운동해서 담에 걸리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다가

안 하던 운동을 열심히 해서인지, 남들 하는 운동 하고 싶어서 따라 하다 탈이 났는지

운동 시작 한 달 만에 담이 와서 운동을 타의로 그만두게 되었다.

이래서 내가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없다


운동을 꾸준히 못 하는 데에는 아직 좋아하는 운동이 없단 것도 이유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는 계주도 하고 체육 시간을 좋아했었던 것 같은데

중학생이 되면서 더 중요하다는 입시에 매진하느라 운동이나 체육 시간은 뒷전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니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기껏해야 야자 시작 전에 친구들과 운동장 한 바퀴 정도 아주 천천히 걷는 것이 

움직임의 전부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여학생 치고 많이 움직이는 거였다.

어떤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도 일어나지 않았고 점심도 먹지 않으면서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그 어린 나이에 허리 디스크로 고생해서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수능을 못 보러 간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고생하며 대학생이 됐는데 당연히 운동할 시간은 없었다.

애초에 운동은 재밌지도 않은데 바쁜 대학생활에서 운동을 위해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그래도 그때는 젊음+노느라 사방팔방을 다 다녀서 나름대로 운동을 한 것도 같다.

시간 개념이 없어 항상 약속이나 수업에 늦었고

그래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운동은 잘 안 했지만 타고난 통뼈+나이로 커버되는 체력이 실제 내 체력이라고 믿고 살았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노화 현상이겠거니 싶었다.

운동을 해야지, 해야지라고 말은 했지만 실천하기가 참 어려웠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이게 핑계 같고 나태하고 해이한 정신 같겠지만(그리고 어느 정도는 맞겠지만)

정말이다. 정말 왠지 모르게 운동을 하려면 힘이 든다.


어느 순간 운동 뽐뿌가 와서 운동을 진짜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건강한 어른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또 운동은 모름지기 땀이 어느 정도 나야 운동이란 생각이 들어

한 시간 동안 땀 흘리며 하는 운동이 아니라면 운동이란 생각이 안 들었다.

그리고 그 '1시간'이라는 시간제한은 너무나도 크고 귀찮고 버거운 바위 같은 느낌이었다.


스스로 세워놓은 가장 이상적인 루틴은 

10분 스트레칭-40분 간의 다양한 근력 운동-10분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다.


땀이 나야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땀이 나는 건 싫어하기에

(아까부터 모순이 많이 섞여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실제로 그래서다)


그리고 나는 다이어트가 목적이 아니라 건강이 목적이니 근육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고 생각해서

(진실과 가짜가 섞여있다. 근육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샤워하기 귀찮아서 땀을 흘리기 싫은 것도 크다.)

저런 식의 루틴을 짜고 저렇게 해야 진정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호되게 아프고 난 이후에는 어느 정도 저 루틴을 지킬 수 있지만

누차 이야기한 것처럼 난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저 루틴은 2개월 이상 간 적이 없다.

2개월 정도 되면 지루하거나 운동하다가 다쳤거나 귀찮아서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몇 개월간은 아예 운동에 손을 놔버리는 시기가 온다.

그러다가 또 담에 걸리거나 살이 너무 쪘거나 체력이 너무 빈곤한 느낌이 들 때 

운동을 해야겠단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리고 악순환의 반복이다.


운동은 내게 아직도 큰 산이다.

30대 중반인데 아직도 본인의 운동 루틴이 없다고 하면

스스로를 잘 책임지지 못하는 느낌이다.

특히, 주변에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거나 운동이 미덕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고

이런 사람들이 가족 중에 있다면 더더욱 자기 관리에 실패한 느낌이 든다.

조금이라도 하면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나은데도

나만의 '운동을 했다'라는 기준에 얽매여 조금 할 바에는 아예 안 해버리는

전형적인 완벽주의의 미루는 모습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올 해에는 처음으로 국민체력 100(https://nfa.kspo.or.kr/main.kspo)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국가가 운영하는 체력인증센터에서 약 40분 정도 스트레칭부터 근력 운동까지 진행되고 

트레이너들이 무료로 진행하는 수업이다.

심지어 열심히 참여하면 돈도 준다.

스포츠 마일리지를 쌓아 상품권으로 바꿔서 약국, 병원, 스포츠 용품 구매 등에 쓸 수 있고

센터에서 자체적으로 우수 참여자에게는 기념품도 준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가족들에게까지 홍보하면서 

야심 차게 프로그램을 3개나 등록했는데

한 달 정도 하다가 디스크에 안 좋은 동작들을 너무 많이 해서 담이 왔다.

평소 홈트할 때는 디스크에 조금이라도 안 좋은 동작은 넘기는데

왠지 다 따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리고 나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무리했었다.


디스크로 인해 실제로 할 수 있는 동작에 제약이 있기에

새로운 운동을 시도하는 것을 무서워한다.

이렇게 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하는 운동을 홈트로 하니 지루하고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아 

오랫동안 지속하지 못 한 이유도 있다.


비록 국민체력 100 첫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몸이 조금 나아진 지금, 다음 기수에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무리하지 않고, 굳이 모든 동작을 다 해내려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걸 목표로 삼으려 한다.

비록 내 몸에 맞지 않는 동작을 하다 다친 것도 있지만

이 프로그램은 꽤나 만족스러운 점들이 있었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 한 40분 만에 운동을 끝내도 되는 것을 체험했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프로그램을 따라 하다 보니

하기 싫어도 앞에서 트레이너 선생님이 진행하니 안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하고 나면 오늘도 40분은 운동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이 들었다.

운동을 안 했을 때 '운동해야 되는데, 운동해야 되는데'라고 끊임없이 자책하던 순간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건 마치 스티브 잡스가 오늘 뭐 입을지 고민하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매일 똑같은 옷을 입는다고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운동을 미루는 데서 오는 찜찜함이 생기지 않고 

운동에 대한 부담이 덜어져서 오는 해방감은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보통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운동해야 되는데라고 생각하다가 

오후나 밤에 운동하기 전까지는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허리에 약간의 담이 있지만 심하지 않고 

오랫동안 운동을 너무 안 해서 자꾸 다치는 듯하여

오늘은 가벼운 스트레칭과 허리를 제외한 팔과 다리 운동을 각각 10분 해주었다.

이전이라면 이 정도는 운동으로 치지 않겠지만

오늘의 글쓰기 주제가 마침 '느슨하게 운동하기'라 느슨하게 운동한 셈 치기로 했다.

느슨하게 운동하는 법은 아직도 잘 모르겠고

가장 느슨한 건 고무줄 몸무게처럼 1년 간의 들쑥날쑥하는 내 운동 기록 같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아니니 이걸 느슨하게 운동하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후로도 운동과 나의 관계는 끊어질 듯 느슨하지만 

잊힐 때쯤 돌아가는, 이런 형태를 유지하려 한다.

여기서 시작해서 언젠가는 좀 더 견고한 형태를 띄는 것이 느슨하게 운동하기의 시작점이다.


일단 허리가 아프니 누우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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