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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덕이 Sep 16. 2024

느슨한 글쓰기

4개월 만에 돌아온 소회

마지막 글을 쓴 날짜는 5월 3일로 무려 4개월도 더 되었다. 

첫 브런치 작품인 <10년 차 심리학 프리랜서의 단면>은 매주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아팠던 한 번을 제외하고는 연재 완료까지 그 다짐을 지켜냈었다. 끈기가 최대 장점이 아닌 사람으로서 이 정도 성과면 엄청나다고 생각했고 이 기세를 몰아가자며 바로 두 번째 작품인 <느슨하게 살기> 연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세 번의 연재 글 이후 빙글빙글 돌아가는 알 수 없는 프리랜서의 삶답게 삶의 각종 변화구가 휘몰아쳐 민망하게도 지금까지 온 것이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이렇게 글이 늦어지게 된 까닭은 작품의 제목 때문이라 하고 싶다.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는 말을 글에 대입해 보면 글은 제목을 따라간다. 작품의 제목이 <느슨하게 살기>이니 왠지 실제로 마음도 느슨해지고 여유를 가져도 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느슨하게’라는 단어에는 약간의 게으름 마저 느껴진다. 

이는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느슨하다’를 검색해 보면 ‘마음이 풀어져 긴장됨이 없다’라는 뜻이 있다. 

이제 보니 제목이 곧 스포일러다. 당연히 빠질 수밖에 없는 덫을 스스로 쳐 둔 셈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끈기가 없는 나로서는 애초에 브런치를 시작할 때 나름 꾸준한 글쓰기를 하기 위해 세워둔 철칙이 있었다. 한창 유행이던 ‘뽀모도로 시간 관리법’(타이머를 사용해 25분간 집중해서 일을 하고 5분간 쉬는 시간 관리 방법론)을 뒤늦게 접한 나는 작년부터 타이머를 사서 이곳저곳 적용해 보는 데 꽂혀 있었다. 

약간은 부담스러울 수 있는 글쓰기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타이머로 1시간을 맞춰놓고 글쓰기 시작부터 끝까지 1시간 내 끝내자고, 그럼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기 위해 일주일에 1시간만 내면 된다고 스스로를 구슬렸다. 그러기 위해 보통은 제목만 있는 목차를 보고 그 제목에 따라, 아니면 이 글처럼 시의성이 적절한 글을 한 꼭지로 잡고 아웃라인 없이 35~40분 정도 쭉 쓰고 20~25분 정도 퇴고하고 바로 글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이메일이나 공식 문서가 아닌 글을 쓴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나에게는(1시간의 1분 정도 할애해서 생각해 보니 약 12년 전 정도일 것 같다. 참고로 싸이월드의 일기였다.) 이 정도로 느슨하게 하자고 하지 않으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게 글이란 독자로서의 영역이었지, 생산자로서의 영역은 아니었다.


뽀모도로 시간관리법에 주로 사용되는 타이머. 시간이 끝나면 알람음이 울린다.


사람마다 글을 쓰는 방법도 다르고 이유도 다를 것이다. 사유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수단적으로는 글보다 말이 훨씬 편하다. 이전에는 말은 한 번 뱉으면 주워 담지 못하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 말보다 글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정제된 언어로 심사숙고하여 표현하는 글을 써내려 가기에는 시간도, 에너지도 없고 무엇보다 성격이 급해졌다. 성인이 된 이후로 프리랜서로 일하며 꾸준하게 글보다 말을 더 많이 하는 환경에 있었고 나만의 속도로 말을 하는데도 익숙해져서 남의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고 내 의도를 최대한 정확한 단어를 골라 표현하는 연습을 더 많이 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글은 내게 습관의 영역도, 로망의 영역도 아니었다.


브런치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도 별 것 없었다. 

프리랜서치고 나만의 무언가를 정리하지도 않고, 어떠한 플랫폼에도 올려 두지 않으니 ‘이래도 되나’라는 막연한 불안에서 시작되었다. 

나름 10년 정도 프리랜서로 살았는데 블로그도, 인스타그램도, 유튜브도, 아무것도 없다. 그러던 중, 꽤 오랫동안 익숙하게 일하던 업계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해야겠다 마음먹었고 그 사이 시간과 에너지가 생겨 이를 풀어낼 새로운 창구가 필요했다. 그렇게 큰 기대 없이 시작한 브런치였다.


매주 글을 쓰면서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있었다. 

우선 1시간이라는 시간제한은 툭하면 핸드폰을 보거나 쉽게 주의가 산만해지던 전형적인 현대인인 내게 컴퓨터를 켜놓고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글을 완성해서 올릴 시간이 한 시간이라는 마감은 의외로 강력하게 작용했다. 온전하고 오롯하게 집중하는 시간은 도파민 중독인 내게 그 자체로 오래간만에 겪는 신선한 시간이었다. 

그것은 어릴 때 숱하게 겪었지만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나 잊어버렸던, 인내하고 노력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뿌듯함과 성취감이었다. 귀찮고 힘들지만 그만큼 도전적이고 자율적으로 선택했다는 사실이 충분한 몰입 감을 주었다.


<10년 차 심리학 프리랜서의 단면>을 작성할 때는 성인이 된 이후의 삶을 정리할 수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10년을 그 당시에 생생하게 기록해 놓지 않아 브런치에 적을 때는 가물가물한 기억에 의존하여 적었다. 적을수록 그때의 생각과 감정을 완전히 기억해 낼 수 없어 아쉬움이 컸다. 동시에 그래도 10년 기념으로 지금이라도 불완전하나마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작품인 <느슨하게 살기>는 좀 더 최근의 삶과 나라는 개인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정리하고 가지고 있는 가치관, 삶의 방향, 지향점, 내가 그려내고 싶은 행복 등을 좀 더 정리하는 느낌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글쓰기에 매력을 느끼는구나 싶었다.


<느슨하게 살기>란 이름에 걸맞게 너무 느슨해져서 결국 서랍 속으로 봉인되어 버릴 까봐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저번 주부터 독립 출판 워크숍에 참가하여 강제적으로 글을 쓰는 환경을 조성했다. 삶은 느슨하지 않았지만 글쓰기에는 느슨했던 지난 4개월을 뒤로하고 프로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느슨해 보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느슨하지 않은, 그런 글쓰기를 해보려 한다. 느슨한 글쓰기를 지향하다 안 쓰는 글쓰기가 되는 것보단 나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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