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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덕이 Sep 27. 2024

느슨하게 놀기

워커홀릭의 느슨히 노는 법

 '느슨하게'와 '놀기'는 가장 좋아하는 단어들이자 지향점이다. 물론 하고 싶다고 항상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 시간이 주어질 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우선, ‘놀기’ 앞에 ‘느슨하게’가 붙게 된 까닭을 부연설명하고자 한다. 놀면 노는 거지, 느슨하게 노는 것은 무엇인가. 또 느슨하게 놀 필요가 왜 있나. 한국인들은 열정적인 민족이니 놀 때도 ’빡세게‘ 놀아야 하지 않는가. 느슨하게 놀기의 정반대라 할 수 있는 ‘빡세게 놀기’가 진짜 놀기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그 정수는 거의 10년 전에 간 싸이 콘서트였다. 지금도 싸이 콘서트는 핫하지만 <강남스타일> 유행 전은 좀 더 원초적인 느낌이 있었다. 한동안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인 음악에 빠져 콘서트뿐만 아니라 뮤직 페스티벌을 다니며 낮부터 늦은 밤까지 돗자리와 담요로 버티며 풀밭에서 보헤미안스럽고 이국적인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착각인 슬픈 이유는 이 놀기의 종착지가 춥고 지친 몸과 결국은 쳇바퀴스러운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놀기의 역사는 20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 입학을 분수령 삼아 청소년기의 억압된 욕구를  마음껏 분출하며 원 없이 놀기 시작한 때였다. 점심 이후부터는 수업을 째고 캠퍼스 잔디밭에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며 노가리나 까도 지금보다 낭만으로 받아들여지는 시기였다. 우리의 선배들이 그랬으니 우리도 그랬다. 전설적인 선배의 F 학점을 받은 무용담을 들으며, 그런데도 그 선배는 눈 하나 꿈쩍 안 하고 그날도 술집에서 동기들과 술을 먹었다는 치기 어림이 당시에는 멋있어 보였다. 동기들 중 몇몇은 이미 선배들과의 술자리 고정멤버이자 차기 회장 후보였다. 회장단에 낄 정도의 열정은 없었지만 술 마시기는 참 좋아했던지라 나는 학교 근처 자취생이 아닌 학생 중 술자리 최다 참여자였다. 보통 부모님과 함께 살고 여학생인 경우에는 대부분 통금이 있었는데,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도 통금이 없다시피 한 나는 첫 차를 타고 가기 일쑤였다. 조금은 유치하지만 그때는 집에 얼마나 오래 안 들어갔는지를 은근히 자랑하듯이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나도 똑같이 유치했기에 그때는 그런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집단에 속하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열심히 활동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항상 함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약속을 잡았고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셨으며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다. 대학생의 미덕 중 하나는 술 잘 먹기라고 주장하는 선배들 덕분에 아직 독립된 성인으로서의 가치관이 잡히지 않은 새내기 대학생은 그게 곧 ‘멋’이고 제대로 된 ‘놀기’라고 믿었다.

 

대학 입시를 위해 스스로를 많이 억눌러야 했던 10대 시절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원하는 학교에 입학했으니 이제는 놀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지금 보면 이해가 가면서도 애잔하다. 그때의 나는 최대한 많이 모든 걸 다 해보고 싶은, 흡사 소비주의나 자본주의처럼 끝을 모르는 탐욕이 있었다. 덕분에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이렇게 놀면서 수업을 듣는 와중에도 일주일에 3번,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갔고 항상 대외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연합 동아리에도 가입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물론 그들과도 술을 마셨다. 대외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지방을 순회하기도 했으며 강화도에서 일주일 동안 전기 없이 생존하는 경험도 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연애도 하고 있었다.

 

제목은 느슨하게 놀기인데 그 반대인 빡세게 놀기를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까닭은 현대의 놀이 문화는 노는 것마저 과해질 수 있음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바쁨이 최고 미덕이고 바쁠수록 타인에게 부러움과 선망을 받는 사회에서 바쁜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래야 쓸모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대학생 때 친구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또?’와 ‘부럽다’였다. ‘또’에는 지나치다는 뉘앙스가 내포되어 있었지만 ‘부럽다’라는 한 마디를 들으면 모든 것이 상쇄되었다. 그래서 에피소드도 많았고 그래서 탈도 많았다. 너무 빽빽한 노는 스케줄로 아픈 적도 많았고 못 가서 아쉬운 적도 많았으며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킨 적도 많았다. 그리고 폭주기관차 같은 이런 모습이 결국에는 강제로 급정지하게 만들었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성인 이후 스스로 만드는 노는 삶은 대부분이 일하는 삶만큼이나 빡세게 노는 삶이었다. 이제는 천천히, 느긋하게 놀 수밖에 없고 그래야 생존할 수 있는 몸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몇 년이 걸렸다. 천성이 급하고 오랫동안 워커홀릭으로 살아왔기에 지금도 여유를 가지라는 말에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든다. 그래서 제목이자 지향점인 느긋하게 놀기에는 바람과 소원이 담겨 있다. 멍 때리기나 명상은 낯간지러운 속도주의자가 그나마 타협한, 느슨하게 노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주말에는 논다. 이틀 중 하루만. 하루 중 반나절만.

: 그럼 남는 시간에는 도대체 뭘 하냐는 워커홀릭들에게- 집에 있으면 심심해서라도 창의적이 된다. 이때 유의점은 밖에서 노는 대신 집에서 인스타그램, 유튜브, 넷플릭스 등을 주야장천 보면 말짱 도루묵이 되니 조심하자.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예 스케줄로 넣고 나머지 시간에는 핸드폰과 텔레비전을 최대한 멀리 한다. 그러다 보면 생각보다 밀린 집안일, 피곤해서 못 한 운동, 하려고 사뒀지만 미뤄놨던 키링 만들기 키트 등이 눈에 띌 것이다. 한 가지 팁은 주말 스케줄은 최대한 오전에 잡는 것이다. 사람이 많기 전, 한가로운 주말을 즐길 수 있고 스케줄 후, 피곤하면 낮잠을 잘 수도 있다. 일어나도 아직 저녁일 것이다.


-여행지에서는 오전에 한 곳, 오후에 한 곳을 방문하는 스케줄을 짠다.

: 자유여행인데도 패키지 뺨치는 계획을 세우다

최근 몇 년은 오전과 오후 한 군데씩, 하루에 총 두 곳 정도 가는 여행을 하고 있다. 시간 압박에 대한 부담이 적으며 마음에 들면 한 곳에서 원하는 만큼 충분히 오래 있을 수 있다. 관광이 아닌, 진정으로 여행자가 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체력이 안 좋아서 저녁 이후에는 자체 일정 종료를 하지만 만약 나이트라이프를 즐기고 싶다면 오후와 밤, 각각 한 군데씩 간다는 마음으로 계획을 짜면 된다.


-걷기도 놀기이고 요리도 놀기이다. 바쁜 일상에서 5분간 좋아하는 핸드폰 게임을 몰입해서 한다면 그것도 놀기이다. 각자의 느슨한 행동이 조금의 위안과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그것이 ‘느슨하게 놀기’인 것이다.

: 일이 유달리 바쁠 때, 도저히 짬이 안 날 때, 뭔가를 하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질 때, 스스로를

위한 작은 위안적 행동들은 노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도 놀기이다. 노는 것이 꼭 쾌락적이어야만 하고 도파민을 내뿜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자극도 필요하지만 안정도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노는 것도 스스로를 위한 행동으로 느슨히 정의할 때, 많은 것이 유희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느슨하게 놀기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자. 시간이 많을 때의 느슨하게 놀기와 적을 때의 느슨하게 놀기는 다른 양상을 띤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때에 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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