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 별들의 지옥 편
"뭐 하는 거야!"
제니가 소리 지르며 부들부들 떤다. 그녀의 손에는 휴대전화기가 들려있고 그 영상 속에는 제니의 신음소리로 가득 차 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제니 앞에는 남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며 깐죽대는 표정으로 피식거린다. 제니는 자신의 남자 친구를 쳐다본다. 남자 친구는 모르는 척 담배 연기로 도넛을 만들고 있다.
"너 이거 범죄인 거 몰라?"
"왜? 우리가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건데. 너 스타 되고 싶어 했잖아. 그 비디오덕에 너 완전 떴어."
제니의 말에 남자 친구는 옆에 남학생들을 보면서 대답한다. 남학생들은 키득거리며 제니를 훑어본다.
'우리'라니...' 역겹다.
"야, 대충 눈대중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몸매가 좋은지 몰랐네. 다음에는 나하고도 한번 해주라."
"조신한 애가 저러니까 더 꼴리네."
옆에 남학생들은 제니가 역겨워할 말을 번갈아가며 말한다. 제니가 들고 있는 휴대폰에는 제니의 매력적인 얼굴과 다 드러난 나체가 영상으로 확연히 보인다. 제니는 육체적으로 완벽하다고 소문이 난 학생이다. 얼굴도 이쁘고 몸도 타고났지만 운동도 좋아해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아이였다. 조신하기로도 유명했기에 많은 학생들이 좋아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남자 친구와 잘 지내기도 해서 많은 학생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모든 걸 다 갖춘 아이였다. 이미 연예 기획사들에게도 수많은 러브콜을 받은 상태였다. 대학을 들어가도 좋다는 조건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동시에 대형 연예 기획사와 함께 하기로도 했다. 아이돌보다는 연기를 하자는 기획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실로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이루고 싶은 모든 걸 다 이루려는 참이었다.
그녀의 남자 친구 역시 근방에서 잘생기기로 유명한 아이돌 활동을 하는 동갑내기였다. 많이 뜬 아이돌은 아니기에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천천히 알리는 중이었다.
졸업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남자 친구는 졸업 전에 제니와의 관계를 첫 관계로 만들고 싶다 하며 자신들이 사귄 지 3년 되는 날 함께 관계를 가지자고 하였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제니는 솔직히 성에 관심이 있어도 그다지 지금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계속 거절했지만 남자 친구는 간절했다. 남자 친구는 많이는 아니어도 얼굴도 제법 알려지기 시작하는 아이돌이었고 함께 연예 활동을 잘하다가 결혼하자고 약속했기에 그녀는 남자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관계를 가지면서 제니는 이상한 점을 감지했다. 처음 하는 관계라고 말하는 남자 친구의 말과 달리 너무나 능숙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니는 남자 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믿었고 남자 친구 역시 자신을 배려해 주는 게 보였기에 남자 친구가 해달라는 데로 다 해주었다.
얼마 후 그 동영상은 인터넷 전체를 크게 달굴정도로 퍼져버렸다.
휴대 전화기에서 보이는 동영상에는 남자 친구의 얼굴은 잘려있었다. 제니의 수줍어하는 매력적인 얼굴과 치명적인 몸매만이 나올 뿐이었다. 도대체 몰래카메라를 몇 대나 설치했는지 모른다. 휴대폰을 손에 쥔 제니는 분한 듯 입술을 부르르 떨며 자신의 남자 친구를 쳐다보지만 3년이나 사귄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남자 친구는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다.
"신고해 봤자 너만 손해야. 알지?"
옆에 있던 남학생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제니는 지금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지금 눈앞에 서서 자신을 능멸하는 남자 친구와 남학생들이 증오스럽다는 생각뿐이다. 하지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 째 망하는 것이 눈앞에 펼쳐졌다. 소속사에서는 자신을 끊어낼 생각에 앞으로의 미래가 암담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부모님이 알게 돼서 속상해할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 영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남아 자신을 따라다니며 괴롭힐 것이 뻔하다.
제니는 지금 왜 10년이나 지난 과거의 일이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처럼 떠오르는지 궁금했다. 아마도 조만간 마주치게 될 그때 그전 남자 친구와의 조회가 곧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미 온 세상이 두 사람의 만남으로 떠들썩하고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매니저의 말에 제니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협찬받은 선글라스로 바꾼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매니저가 만류한다.
"아, 저기, 목걸이도 착용하셔야 해요."
"아, 맞다."
매니저의 말에 자신의 앞에 놓인 목걸이 박스를 연다. 수많은 다이아몬드가 걸린 목걸이다.
"이걸 정말 나 준다는 거야? 이건 좀 부담스러운데?"
"그만큼 제니 씨가 한번 착용해 주면 목걸이 회사가 얻는 수익이 더 많아서일 겁니다. 그 목걸이 회사가 이미 벌어들인 수익이 상당하다네요. 원래 이런 거 안 주는데 제니 씨여서 처음으로 주는 거래요.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
제니는 입술을 오므리며 눈을 한번 찡긋거리더니 목걸이를 착용한다. 딱 맞는다. 제니가 차에서 내린다.
"와!!!"
팬들의 함성이 들린다. 제니는 스타의 미소를 짓는다. 10년 동안 익숙해진 자신의 스테이지 (Stage) 미소이다. 팬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사인해 달라는 팬들에게는 싸인을, 사진을 찍어달라는 팬들에게는 사진도 찍어준다. 몇 번 봐서 익숙한 팬들에게는 반갑게 손도 흔들어준다. 제니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특급 탑 스타이다.
10년 전 제니 동영상으로 인해 암담해질 거라 생각했던 제니의 예상과는 달리 전화위복의 기회가 돼버렸다.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제니는 지금까지도 발 빠른 대형 기획사의 대처가 크게 한 몫했다고 믿고 있다. 계약을 취소할 거라 생각했던 대형 기획사에서는 오히려 좋아했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감독들, 그리고 제작사들이 동영상에 나온 제니가 자신들이 구상해 오던 이야기의 여주인공으로 너무나도 잘 맞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형 기획사 역시 신인일 수밖에 없던 제니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고민 중에 동영상의 주인공인 제니를 만나자고 하였다. 제니는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대표가 위로를 하며 해준 말이 아직도 머리에 박혀있다.
"잃을게 뭐가 있어. 당당해. 파격적으로 시작하자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진 모든 걸 다 보여주라고. 넌 천부적인 아티스트야."
그 당시 망연자실해서 잃을 게 없다 생각했던 제니는 그저 대표가 하자는 데로 하기로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바로 연예게로 입문했다. 3개월의 짧은 연기 연습 이후에 첫 영화에 주인공으로 발탁되었고 노출장면을 과감하게 찍어 버렸다. 마약을 한 것도 아닌데 제니는 마치 환각상태인 듯 맡은 역할에 무아지경으로 빠져 연기를 했다. 그 결과, 이전에 찍힌 동영상이 다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더불어 찍은 영화 역시 화제성으로 떠올랐다. 제니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그 해 최고로 많은 관객을 끌어모았다.
예술영화라 칭송받는 동시에 제니가 나오는 장면마다 난리가 났었다. 이제 몰래 찍힌 제니 동영상은 전설처럼 남게 되었고 첫 영화는 흥행과 예술성을 동시에 잡고 전 세계적으로 파급력을 가져왔다. 수많은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고 제니 역시 이례 없는 동영상 사건의 첫 스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이미 각인된 사람들의 머릿속에 '동영상의 걔"에서 '배우 제니'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기존과 다른 스타의 길을 가게 되었다.
제니는 자신의 괴로움을 연기로 승화시켰고 평단에서는 제니를 가리켜 스타성과 연기력을 모두 갖춘 천부적인 배우라는 수식어까지 붙여주었다. 그 이후 출연한 영화 모두 흥행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가지며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망해가던 영화판이 제니로 인해 다시 살아났다는 평가까지 있었다.
대형 기획사에서 제니 동영상을 이용해 제니가 피해자인 동시에 그 상황을 잘 대처하는 지혜로운 배우로 마케팅을 하며 제니를 살렸다. 신인 배우상을 휩쓸며 힘들 줄 알았던 그 이후의 삶은 의외로 승승장구였다. 제니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영화계 전체가 되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고 몰카 동영상이 스타로서의 관행처럼 변해갔다. 나비효과인지 이전에 동영상에 몰래 찍힌 여자들까지도 다시 소환되며 그녀들 역시 하나같이 스타가 되어 수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몰카를 찍은 사람들은 도리어 돈을 잃게 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어찌 된 일인지 몰카를 찍은 사람들을 솎아내 사회적 왕따로 만들어 도리어 그들의 얼굴이 팔려 어디서도 발을 못 붙이게 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 이후로 '몰카'라는 용어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누구도 감히 몰카를 찍을 생각조차 안 하게 되었다. 제니는 경찰로부터 표창까지 받았다.
10년이 지나 이번 시상식에서 제니는 여우 주연상을 받게 되었고 이 시상식에서 이전 아이돌 출신이었던 전 남자 친구를 마주하게 되었다. 전 남자 친구는 남우 조연상 후보로 올라있었다. 그의 상은 불발되었지만 전 남자 친구는 제니를 보며 아는 체하려 했다. 제니는 그전 남자 친구를 보며 살포시 웃어주었다. 승리자의 웃음이었다.
10년 전 제니를 받아주었던 대형 기획사는 제니 동영상을 찍은 남자가 아이돌 출신이라는 점과 남자 친구이었다는 점을 고의로 퍼트렸다. 대형 기획사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후 전 남자 친구의 커리어가 처참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최고의 변호인단을 꾸려 항소하려 했던 전 남자 친구는 법정에서도 졌고 미디어 기자들 역시 전 남자 친구를 도와주지 않았다. 전 남자 친구의 기획사에서 열심히 되돌리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결국 전 남자 친구를 버리기로 결정하면서 전 남자 친구의 인생 역시 송두리째 망가져갔다. 마치 온 세상이 전 남자 친구에게 등을 돌리는 듯하였다.
여러 기자들이 제니 동영상 사건을 기점으로 발 빠르게 몰카 동영상에 관련된 기사들을 쓰면서 점점 몰카를 찍는 행위가 사라졌던 것이었다. 어차피 찍으면 찍힌 여자가 잘되고 찍은 사람은 망하기 때문에 몰카를 찍을 이유가 없었다. 제니로 인해 온 국민이 하나가 되는 현상이 벌어졌고 나아가 전 세계에서 이 사건을 집중 취재하며 선한 영향력이 펼쳐진 것이었다.
이 모든 현상은 팬들에 의해서도 가능했다. 미디어가 전 남자 친구에게 돌아서면서 수많은 팬들 역시 그 아이돌 그룹에 등을 돌렸다. 팬이 떨어져 나간 전 남자 친구는 아이돌 그룹에서 탈퇴했을 뿐만 아니라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한동안 소식이 없던 전 남자 친구는 조용히 컴백을 준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계속되는 실패로 다시 사라졌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어떤 작품에 조연으로 캐스팅되어 열심히 연기를 한 결과 후보까지 오른 것이었다. 전 남자 친구가 한 작품에 조연으로 캐스팅되었는 데는 제니의 기획사에서 손을 쓴 이유였다는 것을 나중에 제니는 알게 되었다.
많지는 않지만 여전히 전 남자 친구를 따르는 팬들도 있었다. 하지만 수상에 실패한 전 남자 친구의 실망 가득한 표정을 보면서 제니는 그저 수많은 팬 중 한 명을 쳐다보듯 그에게 스테이지 미소를 보여주었다. 전 남자 친구는 제니의 미소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고등학교 때 팬들을 보며 같은 미소를 지어줬기 때문이다. 그 미소를 제니에게 가르챠준 것도 자신이었다. 제니는 그에게서 너무나 굴욕적이고 경멸을 받는 표정을 보았다. 하지만 전 남자 친구는 이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제니와 전 남자 친구의 등장으로 인해 그 해 시상식은 역대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미디아와 유투버들은 앞다투어 승리의 제니와 패배자 전 남친이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올렸다.
"그냥 넘어갈 수는 없잖아."
사상식이 끝나고 회사에서 뒤풀이할 때 대표가 방으로 불러 제니에게 말했다.
"네. 그렇죠-"
"-세월이 지나도 지옥을 죽을 때까지 경험하게 해 줘야지. 지옥에서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게 해야 돼. 10년은 길고도 짧은 세월이야. 대중들도 언제 돌아설지 몰라. 원래 무슨 일을 할 때는 확실하게 해야지 뒤탈이 없어. 거기다 이제 너무나 많은 스타들이 탄생하고 있어. 확실하게 제니 자리를 지켜야지."
제니는 대표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미 부귀영화를 누리고 이전 동영상이 장점으로 인식된 지금 트라우마까지 사라져 제니는 굳이 다시 그때 일을 반복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대표 말대로 확실하게 끝낼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다. 팬은 언제 뒤돌아설지 모르기 때문이다.
전 남자 친구는 모를 것이다. 지금 잠깐 당한 수치심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아무리 제니 동영상을 시작으로 제니가 부귀영화를 얻었어도 그때의 치욕감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제니는 전 남자 친구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때까지 패배를 느끼게 해주는 지옥 같은 세상으로 만들 거라는 것을.
게다가 연예인이 아니었던 전 남자 친구 주위에 남학생들은 지금도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중에는 돈 많은 집안의 자제들이 꽤 있기에 해외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결혼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들은 10년 동안 아무 탈 없이 그냥 넘어갔다. 거기에 여전히 전 남자 친구를 따르는 팬들이 남아있다.
제니의 기획사는 대표를 포함해 모두가 한 마음으로 움직인다. 이 역시 제니효과가 크다.
제니의 기획사와 제니는 계획을 세세히 살피며 전 남자 친구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인생을 진짜 지옥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기획사 대표는 어떤 USB를 꺼낸다. 제니를 살려준 USB이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지만 기획사 대표가 이용한 이 USB로 제니 동영상을 본 사람들은 모두 제니에게 빠져들게 되었다.
돈이 벌리고 인기가 있으면 지옥에서도 영웅이 될 수 있는 거야. 대중을 조정하는 건 생각보다 간단해. 어차피 지옥이었던 연예계에 더 큰 지옥을 펼친 다음에 우리가 지옥의 주인이 되는 거야.
기획사 대표의 말과 함께 그는 천천히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 제니는 불안했다. 지금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있는데 이걸 지키기 위해서 USB를 사용해야 하는 건 맞지만 다른 기획사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전 남자 친구는 아무것도 아니어도 그 주위에 사람들은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지옥의 전쟁이 시작될 것이 뻔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