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스타 (2)

p1. 악의 지배 편

by 사이먼 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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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스타 (1) p1. 별들의 지옥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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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사랑해요~ 우리도 스타들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거예요. 그러니 스타 여러분들도 더 열심히 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저희도 팬들을 제일 소중히 여깁니다. 팬 여러분을 위해 더 노력할 거예요!"


지금 무대에는 수십 명의 아이돌이 올라가 있고 관객석에는 5명의 팬이 앉아 돌아가면서 마이크를 대고 아이돌을 향해 얘기 중이다.

현시점의 연예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 스타가 아니라 팬들이다. 누구나 다 스타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에 누구도 팬이 되고 싶어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진정한 팬을 찾기는 어려워진 세상이 되었다. 만일 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연예인을 이용해 자신이 스타가 되고 싶어 팬이라고 말할 뿐일 것이다.




10년 전, 제니 영상으로 인해 연예계는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야한 동영상에 찍히면 스타가 되는 것뿐만 아니다. 누구나 스타가 될 수도 있기에 너도나도 쉽게 스타가 되려고 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모든 매체에 노출이 되면 스타로 가는 시작길이였다. 문제는 팬이 사라지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스타가 있으려면 팬들이 많아야 한다. 팬들이 사라진다면 서로 스타라고만 말하고는 끝나버리는 세상이 돼 버릴 것이다.


나는 그 당시 공을 들여 키운 연예인이 있었고 드라마, 영화 관계자들부터 광고주들, 기자들까지도 다 얘기가 끝난 상태였다. 계약서까지 모두 준비되었고 사인만 하면 내 연예인은 뜰 일밖에 안 남았다. 오랫동안 공들여 세운 계획과 그에 걸맞은 아이를 찾아 아이돌까지 키운 내 시간이 보상받을 때였다.


하지만 그즈음에 제니 동영상이 돌기 시작했고 나는 그저 제니 같은 또 다른 안타까운 연예인 지망생이 사라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와 가까운 지인이 제니를 키울 거라는 소문을 익히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연예계에 허다했다. 굳이 동영상이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준비해도 망하는 게 연예계였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동영상을 본 사람은 모두 제니를 피해자로 보면서 동정을 하고 생각이 조종되기 시작했다. 그런 원치 않은 동영상에 찍힌 지망생은 보통 조용히 사건을 처리한 후 시간을 들여 이름을 바꿔 나오게 하는 방법도 있었다. 다른 방법도 충분히 고려했을 텐데 이건 마치 누군가가 마법을, 그것도 흑마법을 써서 한 번에 사건을 처리한 듯 보였다. 난 누가 그런 흑마법을 썼는지 알고 있었다. 제니 소속사 대표. 한때는 가까웠던 그 대표가 내 뒤통수를 이런 식으로 칠 줄은 몰랐다. 문제의 USB를 손에 넣은 것이다. 설마 그 USB가 실제로 작동이 된 거란 말인가?


이전에 함께 만난, 그저 미친 노인의 헛소리인 줄로만 알았던 그 USB를 제니 소속사 대표가 갖게 된 것이었다. 그 노인은 지금 일을 정확히 암시했었다. 나는 그 노인의 말을 헛소리로 듣기도 했지만 설령 그런 기술이 존재하더라도 이 세상에 나오면 위험하다 생각했다. 좋은 의미로 쓰이면 모르겠지만 잘못된 손에 들어가게 되면 연예계에는 지옥이 펼쳐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싹을 잘라버리는 게 나을 듯싶었다. 차라리... 내가 가진 다음 없애버려야 했었다. 모든 일은 빨리 처리하고 싶은 게 사람의 욕망이다. 특히 안 좋은 일은 더 그렇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라는 무기가 존재한다. 시간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 수도 있지만 새 삶으로도 데리고 갈 수 있다. 그러기에 일을 처리할 때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처리하는 게 낫다고 나는 믿었다. 성공에는 공식이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공식이 나는 시간이고 노력이 실력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저 운이라고도 할 수 있고 기회를 포착했다고도 할 수 있는 그 한순간이다. 악을 손에 쥔다 하더라도 그 악으로 성공을 해서 제니와 같은 대성을 이룬다면 과연 그걸 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에 와서 후회하면 무슨 소용일까? 내가 키우려던 아이는 삶의 퇴로가 막혔다.


"나 이제 어떻게 살아요. 엉엉."


울면서 매달리는 그 아이가 안타까웠지만, 그 당시 나는 투자자에게 받은 투자금 때문에 다른 대안을 찾아야만 했다. 이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제니 때문이었다. 그 당시 제니의 동영상을 만든 고등학생 중 한 명이 이 아이의 전 남자 친구였다. 이 아이는 제니 동영상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연예인이 되기 위해 엄청 조신하게 지내고 있었을 뿐이었다.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정리하였기에 열심히 연예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학진학도 포기하고 오로지 연예인이 되는 것에만 매달리며 매일 준비를 하였다. 나 역시 이 아이에게 모든 걸 걸었기에 우리 두 사람은 의기투합이 잘 되었다. 나는 이 아이가 슈퍼스타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의 전 남자 친구는 알만한 집안의 자제였다. 게다가 그 집안이 이 아이가 자신의 아들과 사귀는 것뿐만 아니라 투자도 해주었기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만큼 이 아이를 이뻐해 주었다. 아니, 믿었다. 문제가 생겨도 충분히 해결해 주었을 것이라고. 이 아이를 잘 키우면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켜 우리가 뻔히 아는 그런 감동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만들 거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교만했다.


세상이 잘못 돌아가는 건 누군가 깨끗한 물 잔에 똥물을 한 방울 집어넣어 그 잔을 똥물로 만들기 때문이다. 제니의 소속사 대표 또한 내가 믿어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주위의 해가 될만한 모든 걸 다 뿌리째 뽑을 녀석이었다.


소속사 대표가 제니 동영상을 그 USB에 넣어 다시 뿌린 것이 틀림없다. 그 동영상을 본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제니에게 매혹되었다. 난 그 대표와 한 연예 소속사에서 밑바닥부터 일하며 함께 한솥밥을 먹으며 지냈다. 서로 소속사 대표가 되어 연예계를 더 발전시키자고 약속도 한 사이였다. 하지만 난 늘 그 대표의 어두운 면이 불안했다. 그럼에도 나와 함께 있으면 그 어두운 면이 사라질 거라 착각한 나의 오만이 이제 와서야 후회되기 시작했다. 내가 그때 그 USB를 먼저 손에 넣었어야 했다. 그 노인의 말이 헛소리라고 치부했으면 안 되었다.


제니 소속사 대표는 단지 제니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제니를 최고의 연예인으로 띄우고 전 남자 친구와 그들 주변 사람들을 연예계에서 퇴출시키려는 이유만으로만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제니 소속사 대표는 내 투자자들에 대한 앙심이 있었던 건 이전에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워낙 막강한 세력이었기 때문에.


제니 소속사 대표가 그들을 향한 단순한 복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연예계를 지옥으로 만들려고 계획을 짜고 있을 것이 뻔하다. 연예계가 지옥이 된다면 결국 세상이 지옥이 될 것이다.


선함은 천천히 퍼져나가지만 악함은 초고속으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제니라는 친구도 몇 번 사석에서 만나봤었다. 그 당시 연예계에 5년 정도 있었고 대표의 말대로 하는 순진한 아이였다. 하지만 연예계의 무서운 면은 서서히 악에게 잠식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연예계 곳곳에는 악이 도사리고 있다. 더 무서운 건 그 악이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니 소속사 대표가 소유한 USB가 눈에 보이지 않는 악을 점점 보여줄 것이다. 난 이제 내 소속 다른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제니와 제니 소속사 대표의 행위를 막아야 한다. 답은 하나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팬들을 더 많이 보유하는 것이다. 흑마법과도 같은 USB에 맞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대항해야 했다.




제니 동영상 이후로 영화계를 포함한 모든 쇼 비즈니스의 판도가 바뀌었다. AI가 판치는 세상에 슈퍼스타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돼버렸다. 하지만 너도나도 슈퍼스타가 되고 싶어 하기에 스타보다는 진정한 팬이 더 적어진 세상이 돼버렸다. 얼마 없는 진정한 팬을 소유하기 위해 연예인들은 너도나도 선물 공세에 팬들에게 잘해주기 위한 계획을 짠다. 이 모든 게 소속사의 일이다. 슈퍼스타가 되지 않으면 팬들에 의해 조정된다. 하지만 슈퍼스타가 되면 팬들은 자동으로 따라온다. 이 공식은 여전했다. 제니가 슈퍼스타라면 우리 연예인들은 그저 연예인일 뿐이었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소속사 연예인들이 개인 시간에 팬들을 욕한 게 화근이었다. 팬들을 '바퀴벌레'라고 부르는 것이 동영상에 그대로 찍히면서 팬들이 돌아서는 계기를 만들었다. 거기 반해 제니는 자신의 개인 시간에 팬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이 또 동영상으로 찍혀 나오면서 제니의 팬이 아닌 팬들도 다 제니에게 가버렸다. 일명 팬 모노폴리가 시작되었다. 진정한 팬이 많이 없기에 제니의 팬들이 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제니 소속사 대표는 그런 사람들의 심정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팬들을 조종하고도 충분히 남을 사람이었다. 필요한 만큼 나 빼내고 너덜하게 팬들을 버릴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지구에 있는 인간의 수만큼 팬의 수를 늘릴 수 있다 믿기 때문이다.


난 연예인들의 입단속을 시켰지만, 솔직히 개인 시간에 자기가 한 말까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 USB보다 더 강렬한 진정한 팬들을 찾아 다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 난 제니 동영상에 나오는 제니 전 남자 친구가 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니와 그 기획사 대표가 연예계를 지옥으로 만든 다음 그 세계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전 남자 친구를 다시 연예계로 데리고 오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지옥 같은 연예계가 더 지옥이 되면 파멸이다. 왕으로 군림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할 것이다. 정말 그걸 원하는 건지….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정말 세상 파멸을 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팬들이 있기에 저희가 있을 수 있는 거예요."

"당연한 소리 하지 마시고요. 이번에 저희를 위해 어떻게 하실 건데요?"


한 팬의 말에 내 연예인은 의기소침해지며 나를 쳐다보았다. 옆에 서 있던 매니저에게 가서 대처하라고 했다.


"아, 저희 아티스트께서 조금 쉬셔야 할 것 같은데 다른 날에 또 할게요."

"아티스트는 무슨 아티스트. 아무나 보고 아티스트라고 하냐? 그 아티스트라는 소리 좀 하지 마세요."

"네, 죄송합니다. 저희 아이돌은…."


팬들이라기보다는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기자에 가까웠다. 제니 소속사와 싸우기도 전에 저런 팬들을 지키다 내 인생을 다 쓸 것 같았다. 현재 '아티스트'라는 단어 역시 연예인에게 쓰는 것이 금기시 돼버렸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아무래도 이제 연예계를 떠나는 게 나을 듯했다. 다 포기하고 싶었다. 그때 망연자실한 내 기분을 환하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이전에 내가 공들여 키우던 아이가 어느새 20대 후반이 되어서 나에게 나타났다. 나는 깜짝 놀랐다. 성형을 했는지 이전보다 훨씬 더 이뻐진 얼굴,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몰라보게 좋아진 몸매, 요염한 자태, 말투, 모든 것이 완벽에 가까운 아이로 성장했다.


"희진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떨렸다. 너무 설레었다. 여자로서의 설렘보다는 이 아이라면 제니의 대항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너무 이뻐졌는데? 요즘 뭐 하고 지내?"

"계속 미국에서 일하고 지내다가 최근에 돌아왔어요."

"얼굴은 한 거니?"

"아, 네. 조금 손 좀 봤죠."


쑥스러운 듯 헤헤 웃는 그녀의 모습이 내 가슴을 더 뛰게 했다.


"아직도 연예인 생각은 있는 거야?"

"생각이야 늘 있죠. 기회가 없는 거지. 지금은 제니 세상이잖아요."

"아니야. 네가 생각만 있으면 언제나 기회는 열려있어."

"그래요?"

"응. 그럼."


나는 그녀와 함께 가까운 커피숍에 갔다. 주위 사람들이 그녀를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점점 더 확신에 차기 시작했다. 10년 동안의 미국 생활을 들려주었다. 그녀의 삶 역시 다사다난했던 듯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성형외과 대표를 만나면서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다.


"다른 건 아니었고 좀 특이한 분이셨어요. 저에게 아우라가 있다면서 혹시 성형에 관심이 있냐 묻길래 저는 돈도 없고 괜히 이제 와서 굳이 성형을 하나 싶어 거절했죠. 그런데 저에게 돈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상한 걸 원하는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주식정보를 주더라고요. 종잣돈도 주면서 이걸로 주식을 사라고 하고는 주식이 뛰어서 돈을 벌면 그 돈을 가지고 자기 성형외과로 오라는 거예요. 그냥 밑져야 본전이니까 준 돈으로 사라는 주식을 샀죠.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정말로 엄청나게 뛰는 거예요. 평생 놀고먹어도 될 정도의 돈이 들어왔어요. 세금을 다 내고 나서도 말이에요. 저는 당장 그 사람한테 갔죠. 약속도 했었으니까요. 이름도 좀 특이한 성형외과인데 내부도 특이했어요. 저에게 한 달 이상 병원에 있어야 한다면서 천만 원 정도의 돈만 내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싸서 또 의심했는데 제 마음을 읽었는지 의심하지 말라면서 믿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나 이런 말을 해줬어요. 자기는 이뻐져서 행복해진 사람을 보면 만족한대요. 어차피 제 인생 막장으로 갈지도 모를 상태여서 그냥 믿고 했죠."


희진이는 돈도 많고 외모도 최상급이 돼버렸다. 내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안 되었다. 순간 USB를 준 노인이 떠올랐지만, 그 노인의 모습이 전혀 성형외과 의사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10년 동안 투자금을 갚느라 내 인생도 망가졌다. 맨날 전화 오는 투자자들 때문에 자살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내가 데리고 있는 연예인들로는 아무것도 못 하였다. 푼돈만 벌고 그나마 그 푼돈도 다 투자자들에게 줘야 했다. 내가 여자였더라면 그 성형외과 의사를 찾아가 수술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희진이를 데리고 당장 투자자들에게 긴급회의를 요청했다. 내가 그들을 부르는 것에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맨날 피해만 다니던 내가 긴급회의를 요청했으니 일상이 진부한 그들은 뭔가 싶어 금방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희진이를 보자 내 요청에 놀라는 눈치에서 다른 쪽으로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중 몇 명이 흑심을 품고 있는 것도 내 눈에는 들어왔다. 그들은 희진이를 매우 만족해했다. 끝나고 술집을 가자고 하였다. 일대에서 최고로 비싼 술집이었다. 나는 한 번도 데리고 간 적이 없던 술집이었다.


희진이는 술도 잘 마셨다.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희진이를 한번 만져보려고 추파를 던지지만 희진이는 도도했다.


"사장님들. 내가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온건 순전히 우리 대표님 때문이야. 난 솔직히 당신들 투자금 따위도 필요 없어. 당신들이 우리 대표님을 그동안 얼마나 괴롭혔는지 알았기에 내가 여기 온 거야. 그래도 우리 대표님 믿고 투자금 회수 안 해준 게 고마워서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하는 거야. 이상한 짓들 할 생각하지 말고 난 우리 대표님하고 일할 거니까 만약 같은 배에 타고 싶으면 지금 투자한 금액에서 각각 3배를 더 투자해. 안 그러면 다 빼버릴 테니까. 당신들 현재 투자금이 얼마인지 내가 대충 알아. 빠질 사람은 말해. 당신들의 투자금에 내가 2배를 더 쳐서 줄 테니까."




희진이의 카리스마에 나는 놀란 고양이처럼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희진이가 이런 아이였던가? 수줍고 말도 잘 못하는 아이로 기억하는데? 투자자들은 너도나도 나와 비슷한 표정으로 희진이를 쳐다보았다. 나는 솔직히 겁이 났다.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빼는 것도 모자라 정계, 연예계, 금융계 등 영향력이 있는 이 사람들이 화가 나서 무슨 짓을 해버리면 내 인생도 끝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희진이야 미국으로 도망치면 그만이지. 나는 희진이가 농담도 잘한다며 넘어가려고 일어서는데 투자자들이 희진이에게 홀린 듯 모두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무슨 소리야 희진 씨. 3배가 뭐야 나는 5배도 더 높여줄 수 있어."

"나는 10배!"


저마다 희진이가 말한 금액 이상을 부르면서 마치 여신을 찬양하듯 희진이에게 굽신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찾았어! 야, 최 대표! 자네가 지금까지 했던 고생이 이제야 빛을 보겠네!"

"희진 씨야말로 바로 우리가 찾던 제니의 대항마잖아!"


투자자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나에게 말하자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희진이는 나에게 윙크를 하며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나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마치 문제의 USB가 사람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 중에는 이전 희진이와 사귄 전 남자 친구의 가족도 있었다. 까먹은 게 아닐 텐데 그는 이전일은 기억도 못 하는 듯 희진이에게 푹 빠져있었다.


"최 대표.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전쟁이라고. 내 아들도 다시 연예계로 복귀시키고 우리가 제니에게 당했던 10년을 다시 되돌려 줘야지. 희진 씨에게는 제니가 가지고 있지 않은 고급스러움이 느껴져서 좋네."


그들에게 연예계의 투자는 사치품을 사는 정도이다. 희진이가 말한 금액을 투자한다면 전 재산을 투자해야 하는 투자자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희진이는 누구인가? 아니, 10년 동안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아니, 그 성형외과 의사는 누구란 말인가? 연예계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나는 감각이 남달라 졌다. 물론 현실에 부딪혀 그 감각을 제대로 실행 못한 게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인지,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략 알 수 있는 감은 뛰어났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고 감조차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할 틈이 없다. 이제 계획을 짜서 지옥이 되려는 연예계를 되돌려 놔야 한다. 팬들을 다시 확보해야 한다. 이들의 표정이 마치 악에 지배당한 얼굴이어도 나는 계획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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