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의 슈퍼 히어로들 Part 1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간다. 각기 앉은자리에서 떠드는 학생들의 표정은 들떠있다. 모두가 조잘대며 떠들고 있는 와중에 버스 구석 자리에는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한 한 남학생이 큰 헤드폰을 착용한 채 음악을 듣고 있다. 버스는 보통 두 사람이 한 행에 앉기에 웬만하면 옆에 앉은 친구와 놀 수도 있지만, 음악을 듣고 있는 학생은 예외인 듯하다. 그 옆에 앉은 학생은 음악을 듣고 있는 남학생이 존재하지 않는 듯 자신의 왼쪽에 앉은 학생과 떠들고 있다.
세 명 이상 모인 자리에는 언제나 서열이 존재한다고 그랬나? 지금 수학여행 가는 고등학생들의 버스 안에서도 당연하다는 듯 서열이 존재한다. 구석에서 커다란 헤드폰을 착용한 채 음악을 듣고 있는 남학생이 가장 낮은 서열이라면 큰 소리로 전체 분위기를 리드하고 있는 남학생은 모두가 선망하는 대상이다. 다른 학생이 저 데시벨로 소리를 냈으면 선생님에게 한 소리 들었을 볼륨이지만 잘생긴 남학생이, 그것도 모두를 즐겁게 하는 듯한 그 남학생이 떠드니 선생님도 즐기는 듯하다.
보통 잘 나가는 사람들이 맨 뒷자리에 앉는 건가? 그 남학생은 맨 뒷자리 중간에 앉아서 분위기를 리드하고 있고 그 남학생 옆으로 조수 같은 학생들이 간신배처럼 앉아 반장의 대화에 추임새를 넣고 있다.
“야, 역시 태식이가 나서니까 문제가 해결되네.”
한 간신배 학생의 말에 태식이라는 이름의 그 남학생이 아니라는 둥 손을 휘젓는다.
“뭘 내가 나서니까 해결 돼. 우리가 다 같이 해서 된 거지.”
통 큰 웃음을 보이며 성격까지 좋아 보이는 태식이는 인기도 많아 보인다. 모두가 자신에게 호응 해주는 게 기분이 좋은지 태식이는 버스 안을 둘러본다. 그러다 혼자 창가 구석에서 유일하게 호응하지 않은 채 음악만 듣고 있는 헤드폰 학생을 발견한다.
“쟤 이름이…”
태식이는 옆에 앉은 간신배 학생에게 조용히 묻는다.
“어… 쟤가 누구였더라?”
간신배 학생이 누군지 모르는 듯 자기 옆에 앉은 학생에게 묻는다.
“매종이라고 부르는데?
“응? 매종? 무슨 이름이 그래?”
“본명은 아닌 거 같은데? 본명을 모르겠네.”
그 자리에 있는 학생들은 매종이라 불리는 학생을 잘 모르는 듯하다.
“딱히 존재감도 없는 애라…”
간신배 학생이 간사하게 웃으며 태식이한테 말한다.
“너는 같은 반 아이인데 존재감이 없다는 말을 어떻게 하냐.”
간신배 학생을 나무라는 태식이의 말에 주위 학생들이 ‘역시’라는 말과 함께 태식이의 넓은 아량을 칭찬한다. 간신배 학생은 다시 간사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인다.
“매종이라고 불린다고?”
태식이가 일어나 매종이 한테 다가가 묻는다. 매종은 큰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느라 태식이의 말을 듣지 못한다.
“이 새끼가 태식이가 말 걸어주는데!”
간신배 학생이 매종의 머리를 치며 말한다. 매종의 헤드폰이 머리에서 떨어진다. 그제야 매종은 버스 안 학생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매종은 헤드폰을 집어 들며 무슨 일이냐는 듯이 쳐다본다. 간신배 학생은 뭘 쳐다보냐는 듯이 다시 머리를 한 대 치려 하지만 태식이가 막는다.
“아니, 너는 왜 애 머리를 치고 그러냐.”
태식이는 간신배 학생을 나무란다. 주위에서 또 한 번 태식이의 넓은 아량에 감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태식이는 그 소리에 만족하며 매종의 어깨를 살짝 만져준다.
“다 같이 수학여행 가는데 너 혼자서만 이러기에는 너무 아깝잖아. 같이 놀자.”
주위 학생들은 태식이가 너무 괜찮은 아이라며 역시 리더의 면모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야, 혼자 음악 듣고 싶어서 그럴 수도 있는 걸 네가 왜 나서서 그래?”
그때 이쁘장하게 생긴 여학생이 일어나 말한다.
“너네는 약 먹었냐? 태식이가 뭔 말만 하면 추임새를 그렇게 짜증 나게 두고 난리야.”
“하영아 왜 그래?”
옆에 앉은 다른 여학생이 하영이에게 말한다.
“아니, 그렇잖아. 선동질도 아니고 말이야. 걔 그냥 놔둬. 매종이는 음악 듣고 싶어서 그러고 있는 거니까 괜히 선동해서 애 왕따시킬 생각하지 마.”
하영이가 태식이한테 말한다. 주위에서는 다시 ‘오’ 하면서 두 사람을 주시한다.
“아니, 난 괜찮-”
“-선동질이라니.”
매종이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하는걸 태식이가 웃으며 끊는다. 그리고 하영이한테 말한다.
“난 그냥 우리가 다 같이 여행 왔으니까 재밌게 놀자는 거지. 왕따 없는 여행을 해보자는 건데 그게 왜 나빠?”
“네가 반장이야?”
“아니.”
“그럼 학급 회장이야?”
“아닌데?”
“그런데 왜 네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하는 건데?”
하영이의 말에 태식이는 멋쩍게 웃는다. 그리고 자신이 잘생긴 걸 아는 듯 미소를 멋들어지게 날려준다.
“뭐 하는 거야? 이 속에 뭐 꼈냐?”
하영이가 짜증 난다는 듯 말한다. 태식이는 웃고 있지만 사르르 떨리고 있고 눈썹은 씰룩대고 있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난 그저 재밌게 다 같이 놀자고-”
“-그러니까 그걸 네가 왜 정하는데?”
태식이가 마무리를 지으려는 듯 말을 하지만 하영이는 듣기 싫다는 듯 끊어버리고 자리에 앉는다. 태식이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대화를 못 끝낸 게 아쉬운지 목 운동하듯 고개를 까딱거린다. 옆에 간신배가 자리로 돌아가자고 하자 순간 태식이가 간신배를 째려본다.
“무슨 일이니?”
앞자리에 앉아있던 선생님이 그제야 일어나 사태를 진정시킨다. 태식이는 자리에 돌아가 앉는다. 그리고 하영이와 매종을 째려본다.
버스는 어느새 도착지에 다다랐다. 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려 기지개를 피고 태식이는 여전히 매종과 하영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 있다.
“우리가 대신 까 줄까?”
간신배가 조용히 태식이에게 속삭인다.
“우리가 양아치냐? 까긴 뭘까?”
태식이가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간신배에게 말한다. 간신배는 고개를 숙인다.
“아니, 태식이 네가 쟤네들 거슬려하길래…”
하영이는 다른 버스에서 내린 여자 아이들과 한 남사친을 보고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매종은 여전히 혼자서 헤드폰을 낀 채 주위 눈치를 보고 있다.
“너네들은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산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산이 뭐야 산이. 지금이 어느 땐데.”
하영이 남사친이 투덜댄다.
“야, 그래도 공기 맑은 곳으로 가는 게 어디야. 난 강남은 너무 매연이 심해서 이런데 오면 너무 좋던데.”
“그래도 그렇지. 어디 해외든지 하다못해 제주도라도 가야지 누가 수학여행을 산으로 오냐고.”
“우리 개울가에 가서 점심 먹자. 나 그런 거 해보고 싶었는데.”
투덜대는 남사친을 끌어안으며 하영이가 말한다.
“오진이 너는 왜 너네 반 친구들하고 안 있고 우리하고 있냐? 너 이렇게 여자애들하고 놀면 다른 애들이 안 놀려?”
다른 여학생이 하영이의 남사친을 오진이라 부르며 묻는다.
“난 너네랑 노는 게 편해. 라니의 잔소리 듣는 게 제일 즐겁거든. 너는 잔말 말고 있다가 내 여드름이나 좀 봐줘 봐.”
오진은 하영이와 라니라 불리는 여학생의 팔을 각각 잡고는 행복한 듯 걸어간다.
“오진이는 게이 아니지?”
“게이를 가장한 테토 남이다.”
오진이 갑자기 목소리를 굵게 만들면서 말한다. 여학생들은 재밌다고 웃는다.
“그래도 오진이 덕분에 똥파리들 많이 쳐냈잖아.”
“앞으로도 남자 문제는 나에게 물어라. 특히 제아 너는 더욱더.”
뒤에서 따라오는 제아를 쳐다보며 오진이 말한다. 제아는 ‘치’ 거리며 호주머니에서 껌을 빼 씹어먹는다. 오진이 자신도 달라고 입을 벌리고 제아는 또 하나 더 꺼내 넣어준다.
“야, 매종! 너도 친구 없으면 여기 붙어. 같이 밥 먹자.”
하영이가 저 끝에서 헤드폰을 착용한 채 땅만 보고 걷는 매종을 부른다. 매종은 그 소리가 들렸는지 화들짝 놀란다. 더 뒤에서 매종을 지켜보던 태식이와 간신배가 그 상황을 지켜본다.
“안 그래도 남자가 나 혼자라서 좀 그랬는데 같이 놀자.”
오진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여기로 오라는 시늉을 한다. 매종은 고개를 떨군 채 하영이와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넌 뭐 죄 지었냐? 왜 그렇게 고개를 떨구고 그래?”
하영이 매종을 나무라듯 말한다.
“머리에 든 게 많은가 보지.”
오진의 말에 여학생들이 코웃음을 친다. 매종은 좋은지 싫은지 알 수 없게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태식이와 간신배는 그들을 보며 약속이라도 한 듯 뒤따라 간다. 간신배는 자신의 심복 같은 남자애 한 명을 더 데리고 간다.
-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