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월드(2)

팔아야 하는 자와 사야 하는 자 그리고 상도덕 p1

by 사이먼 케이


래리는 다시 '물방울과 바위의 길' 작품을 들여다본다. 처음이다. 이 작품을 간직하고 싶다. 자신의 최대 고객이 왜 이 시리즈를 그렇게나 애타게 찾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물방울과 바위의 길'은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길의 시리즈' 중 하나이다. 이전에 래리는 '물방울의 길'과 '바위의 길' 작품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손님들이 가지고 있어서 구경 갔었다. 집은 팔아도 이 시리즈 작품은 절대 안 판다고 하였다. 어차피 작품을 구매한 이유는 소장 목적으로, 나중에는 미술관에 기증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그래야지만 구매가 가능했었다고 하였다. 또 다른 작품들인 '물방울, ' '길, ' '바위'는 이미 프랑스와 미국, 그리고 일본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파는 물건이 아니란 뜻이다. 그러니 이 시리즈의 작품이 마켓에 나오면 사려고 줄 서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중에서도 이 모든 시리즈의 최정점이라는 '물방울과 바위의 길'이 마켓에 나온다면 당연히 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부르는 게 값이 될 것이다.


지만이가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가장 첫 관문은 먼저 가격제시를 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가격제시를 하지 않으면 진도가 나가지 않을 거라는 거다. 오후에 또 다른 스케줄이 있다. 빨리 여기서 해결해야 한다. 게다가 이 작품을 다른 사람도 노리고 있을 것이다. 래리의 명성 때문에 가장 먼저 이 작품을 거래할 기회가 생긴 것뿐이다. 그렇다고 비싸게 살 수는 없다. 비싸게 사면 비싸게 팔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자신의 고객은 이 작품을 끝으로 두 번 다시 자기와 거래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싸게 줄 수도 없다. 주식으로, 비트코인으로 돈을 벌었지만 지금 현금화시킬 수도 없다. 이 작품을 자신의 최고 손님에게 주는 대신 다른 걸로 받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지만이는 돈이 절실할 것이다.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지금 이 지역에서 위치해 있으면 운영비가 많이 든다. 현재 미술시장은 좋지 않다. 아마 한동안 작품 한 개도 팔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미술 작품 중 가장 값이 나가는 작품의 가격이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입니다. $450 million, 대략 6,600억 원 정도 되지요. 물론 '물방울과 바위의 길'이 레어(Rare) 하지만 아직은 문디 작품 정도의 가격을 받을 히스토리가 없어요. 잘 아시잖아요.”

“네, 하지만 지금 이 작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지금도 계속 연락이 옵니다.”

“싸게 달라고 하겠죠.”

“얼마든지 가격을 매겨주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6,600억은 아니겠죠.”

“그러니 대표님께서 가격을 제시해 달라는 겁니다.”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끝내는 데는 래리만의 공식이 있다. 잘난 척을 때에 맞게 해야 하고 상대방이 갑인 듯 느끼게 한 다음 원하는 것을 빼내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당당하게 판매자가 갑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구매자가 이겼다고 생각했을 때의 그 성취감을 느끼게 하고 돈은 래리가 더 많이 챙기는 것이다. 서로 윈윈이라고 생각이 들어야 한다.




언제부턴가 래리는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이 아니어도 갑과 같은 급으로 행동했다. 아무리 물건을 파는 판매자여도 말이다. 래리는 다른 판매상 하고는 달랐다. 고객들 앞에서도 을보다는 갑처럼 행동을 할 수 있었다. 고객들이 래리가 가지고 있는 작품을 가지고 싶어 안달이 났기에 래리는 늘 고객에게 말했다.


"당신이 아니어도 구매할 고객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고객들은 눈에 불을 켠다. 협박하는 고객도 있었다. 결국 하나같이 그들은 래리에게서 작품을 구입했다. 성공한 래리를 인터뷰하기 위해 수많은 잡지사가 줄을 섰다. 자신의 최대 고객인 그분 역시도 래리를 같은 급으로 생각했다. 이런 그가 지금 지만이가 가지고 있는 이 작품 앞에서 처음으로 을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래리는 비즈니스의 달인이다. 아니, 사람들이 래리를 가리켜 그렇게 말한다. 마치 자신이 일군 이 비즈니스가 쉽게 된 줄 안다. 하지만 매 순간 래리는 긴장한다. 노력한다. 힘들다. 자신이 갑이라 생각해야 버텨낼 수 있었다. 지금은 이상하다.


래리는 솔직히 이 작품이 없어도 살 수 있다. 큰돈은 다른 경로로도 벌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스케줄에서도 100억 정도의 돈을 벌 것이다. 그런 래리와는 달리 지만이는 이 작품이 없으면 두 번 다시 큰돈을 만질 기회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지금 걸려있는 그림들을 다 합해도 5억이 안된다. 그나마 래리의 회사가 만든 판화가 가장 값어치가 높아 모든 작품들이 합쳐서 5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 이 레어 한 작품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은 천문학적이 될 것이다. 10년 넘게 비즈니스를 해온 래리의 직감이다. 분명하다. 주식이나 비트코인으로 몇십억, 몇백억씩 버는 것과 느낌이 다르다. 뭔가 돈을 버는 것 이상일지도 모른다.


래리는 머리를 굴려본다. ‘물방울과 바위의 길’ 작가가 아무리 유명해도 현재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다빈치와는 다르다. 작품의 가격이 오르는 데는 역사, 수많은 사람의 손길, 그리고 작가의 상품성이 필요하다. 죽은 다빈치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6,600억 원의 작품은 경매에서 나온 가격이다. 누군가가 그 돈을 주고 샀을 것이고 다음에 판다면 그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팔려고 할 것이다. 다빈치 작품은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경에 나온 고전 작품이다. 역사가 있고 5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의 손에 걸쳤다. 다빈치는 이 시대가 아는 최고의 예술가이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물방울과 바위의 길’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는 말 못 한다.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래리와 지만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한 세기는 지나야 가격이 어떤 식으로 오를 것일지 알 것이다. 게다가 저 작품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상품성이 필요하다. 누가 구매하냐에 따라 그 상품성의 가치가 올라간다. 래리의 최대 고객이 구매하면 상품성이 오를 것이다. 이전 시대와는 다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으므로 어쩌면 빠르게 천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 많은 유명 컬렉터의 손을 거쳐야 한다. 이런 생각이 보통 때의 래리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 작품은 어쩌면,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든다. 생존작가 중 가장 잘 나갈지도 모른다. 제프 쿤스의 기록을 깨는 것도 시간문제인 작가이다.


'물방울과 바위의 길'은 보면 볼수록 빠져든다.

생존작가 중 가장 비싼 작품은 제프 쿤스(Jeff Koons)의 토끼 조각이다. $91.1 million, 대략 1,300억 원 정도로 경매에서 팔린 기록이 있다. 지만이가 원하는 게 그 정도일까? 토끼 조각의 가격 역시 옥션 가격이기에 경합을 벌이는 자리에서나 가능하다. 아, 옥션. 지만이가 이 작품을 결국 옥션에 내놓는다면 확률적으로 저 가격을 받을 수도 있다. 나의 최고 고객이 옥션에 참여해 결국 나는 아무것도 못 벌고 고객의 실망만 받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옥션에 나오는 건 너무 빠르다. 잘못하면 상품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나의 비즈니스 방식을 깨버렸다.




“100억이면 어떻겠습니까?”

“6,000억을 말씀하시고 100억이라뇨?”

“현재 이 작품을 100억 이상 주고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겁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얼마든지 가격을 매겨주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직 생존작가입니다. 다빈치가 아니라고요.”

“제프 쿤스의 작품도 1,000억에 팔렸습니다.”

“굳이 왜 저를 처음에 만나자고 하셨습니까? 다른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요.”
“앞으로 다른 비즈니스를 같이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렇다면 100억에 파시지요.”
“100억은 너무 적습니다. 이런 작품은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겁니다.”

“세상일은 모릅니다. 저와 계속 비즈니스를 하고 싶으시다면 아실 겁니다. 저는 계속해서 값이 나가는 작품을 잘 고른다는 것을. 제 다른 비즈니스로 지만 씨가 돈을 벌 수도 있고요.”


나는 나의 회사에서 제작한 판화를 가리킨다. 미술 세계에 들어와서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판화 제작을 한 것이다. 잘 나왔을 뿐만 아니라 한정판의 판화가 나오자 세상이 들썩였다. 순식간에 모든 판화가 다 팔렸다. 에디션 몇 점은 팔지 않고 내가 간직했다. 나중에 더 값이 뛸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판화는 오리지널 보다 나을 때가 있다. 나의 회사가 제작했지만 너무나 신기하고 뿌듯했다.


“그래도 이 작품만큼의 돈은 벌지 못할 겁니다.”

“이번만 일하고 은퇴하실 건가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럼 얼마를 받고 싶으십니까?”

“글쎄요, 얼마를 주실 수 있나요?”

“저도 돈의 한계는 있습니다. 현재 마켓을 고려했을 때 100억이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프 쿤스 가격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니면 900억 정도로요.”


900억. 시간이 지나면 이 작품은 900억이 아니라 1,000억 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만큼 희귀한 작품이다. 전 세계의 부호들이 탐내는 작품이 될 것이다. 소문만 나면 지만이 말대로 수많은 사람이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늘은 900억이 될 수가 없다. 이상하다. 지만이는 분명 나보다 말을 못 한다. 나보다 사업수환이 더 뛰어나다고 할 수없다. 그런데 자꾸 지만이에게 휘말리는 느낌이 든다. 좀 전에 '물방울과 바위의 길' 작품을 빤히 들여다본 이후, 정신이 멍해진 느낌이다. 온 세상이 빨갛게 느껴지기도 했다. 정신 차리자.


“조금 현실적으로 가시죠. 100억이면 좋은 가격인 듯합니다.”




지만이가 망설이는 것이 보인다. 내가 처음에 1,000억에 관련된 얘기를 한 것이 실수였다. 내가 을처럼 느껴진 이유이다. 100억에 살 수 있다면 고객에게 조금만 더 붙여서 팔든지 아니면 내가 간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만이가 휴대폰을 꺼낸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지만이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었다. 그 진동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벌써부터 돈냄새를 맡은 뚜벅이들과 옥션에서 돈만 좇는 일명 스페셜리스트라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연락하고 있던 것이었다. 역겹다.


“글쎄요, 그냥 대놓고 말씀드리죠. 실은 ***이 연락해 주셨어요.”


***. 난 이 이름에 얼굴이 굳어버렸다. 생각도 못 했다. 아니, 평상시와 달랐던 나의 이상한 직감이 나의 최고 고객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은 내 최고 고객. 늘 나에게만 작품을 구매했던, 나에게 돈을 벌게 해 준 그분이다. 나에게만 작품을 구매할 거라 믿었다. 지만이가 망설인 이유가 돈 때문은 아니었다.


상도덕. 내 손님인걸 뻔히 아는데 지만이에게 연락을 했으니 상도덕을 지키는 지만이로서는 어떻게 해야 옳은지 고민했던 것이었다. 그 고민은 나에 대한 의리라기보다는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으로서 나를 존중해 준 고민이었다. 업계에서는 한 사람이 상도덕을 지키지 않으면 도미노처럼 무너져 결국 그 업종이 망하거나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지만이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이 30년 차와 10년 차의 차이인가?


나는 잠시 나가서 전화를 걸었다. ***이 전화를 받았다.


“래리, 자네는 이번 일에는 빠져도 좋을 것 같은데?”


***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상도덕. 이 인간이 나를 제치는 건가?


“이런 일에 직접 전화를 거시다니요? 제가 잘해서 구해드릴게요.”


할 말이 이렇게밖에 없을 정도로 순간 무기력해졌다. 그 이후에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만이 갤러리에서 나온 이후 아무런 기억이 떠오르질 않는다.




"네, 저와 함께 구입하시면 되는 겁니다."


지금 나는 다른 잠재 구매자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물방울과 바위의 길’을 함께 구매하지 않겠냐고 묻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이 방법 외에는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질 않는다. 이제는 노동이다. 내가 저 작품을 손에 넣지 않으면 나의 갤러리는 망한다. 아니, 내가 망한다. 어느새 내 최고의 손님이 내 최악의 적이 되어버렸다. 이 싸움은 마치 플랑크톤인 나와 고래인 최고의 손님과의 싸움과도 같다.


지금 나는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으로 900억 투자금을 모으고 있다. 저 작품이 내 손에 들어오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보다 먼저 구매하지 않는다면, 지만이에게서 저 작품을 빼내어 오지 않는다면 나의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다. 상도덕을 지키지 않은 결과는 점점 더 처참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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