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깨어 있어야, 마음도 살아난다

연결을 잃어버린 시대, 몸에서 다시 시작하는 심리 회복

by 제인 Jane



마음이 무겁다고 느낄 때, 나는 종종 내 몸의 상태를 먼저 살펴본다. 어깨는 굳어 있고, 등은 무너져 있고,
눈은 말라 있고, 숨은 얕다. 여러 가지 생각이 멈추지 않을 때일수록, 내 몸은 멈춰 있었다.

‘신체 에너지가 있어야 정신 에너지도 살아난다’는 말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조언 그 이상이다. 그건 우리가 마음을 감지하고, 회복하고, 다시 삶에 몰입할 수 있는 조건이 바로 몸이라는 살아 있는 매개체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Pixabay



사실 몸의 리듬이 깨지면, 마음도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한다. 심리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데카르트의 오류》에서 '신체 없이 마음도 없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사고나 감정은 단지 뇌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신체와 신경계의 전체적 조율 속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경험인 것이다.



Pixabay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몸을 관리하거나 돌아볼 수 있는 권한조차 때로는 충분히 갖지 못한 채 살아간다. 특히, 한국 사회의 조직과 집단 문화는 '몸을 관리하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지게 만들 때가 많다. “아프면 참아야지”, “버텨야 진짜지”, “내 몸만 챙기는 건 이기적인 행동이야”라는 말들이 암묵적인 기준이 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신체 에너지를 관리하는 것조차 죄책감과 연결하게 된다.

결국 그 결과는, ‘정신력’의 고갈로 이어진다. 마음이 자꾸만 산만해지고 무기력해질 때, 그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몸이라는 기반이 이미 고갈되어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Pixabay



이러한 변화의 속도보다 느리게 쫓아오는 문화적 토대 위에서, 우리는 자주 몸의 감각을 억누르고는 한다. 그래서 한낮의 햇살이 눈부셔도, 눈을 감지 못한다. 피곤해도 퇴근하지 못하고, 아파도 병원을 미룬다. “나부터 챙기면 이기적인 사람처럼 보일까 봐” 항상 조심스럽고, “혼자 쉬는 것조차 눈치가 보여” 매번 회복을 유예한다.

이처럼, 집단주의적 질서 속에서 감각의 우선순위는 항상 바깥으로 밀려난다. 그 결과, 우리는 감정도 마찬가지로 자신보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조정한다. 신체적 무기력은 그렇게 정서적 단절로 이어진다.


Pixabay



우리는 자주 그럴 때가 있다. 피로감을 없애기 위해 자기 계발서를 펼쳐 들지만 내용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해야 할 일은 머릿속에서만 반복된다. 우리는 이럴 때, 사실 뇌를 움직이기보다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건 꼭 헬스장 같은 곳에 가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에게 권한을 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자세, 지금 이 눈의 피로, 지금 내 심장의 속도에만 집중해도 괜찮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처음으로 “나는 지금 나를 돌보는 중이다”라는 감각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감각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게, 정신적 회복과 자기 효능감의 회로를 열어줄 것이다.


Pixabay



결국,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인간인 우리는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었다. 그런데, 몸을 관리하고, 감각을 인지하며, 쉬어가는 권리를 사회가 보장하지 않을 때, 그 연결은 무의식적으로 끊기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정신의 힘이 바닥났다면, 내 탓보다 사회의 구조와 나의 주변의 리듬부터 의심해 보라”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는 감정과 의지로 살아가는 존재인 동시에, 피로하고, 눌리고, 때로는 망가지는 물리적 존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정신의 깃발은 결국 몸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내가 나르시시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