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낙관적이고 외향적인 세상

중간이 필요한 세상

by 제인 Jane



나는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낙관적이고 외향적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약 모든 사람이 밝고, 활기차고, "실패해도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라고 말하는 세상.

누군가의 말에 침묵하지 않고 바로 반응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두려움이 없고, 미래를 언제나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그런 세계 온다면 어떨지 같은 생각이었다.


우리 사회는 MBTI 열풍이 불었을 때 보았 듯이, 외향적(E)이고, 낙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것이 '옳거나' 또는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런 상상을 했을 때, 처음에는 꽤나 괜찮은 생각인 것 같기도 했다.


팀워크도 좋아지고, 모임도 활발해지고, 모든 사람이 서로를 격려하며 에너지를 쏟는 그런 사회가 될 수 있겠지.


그리고 공동체는 더 단단해지고, 과감하게 창업이나 도전도 늘어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문화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다. 마치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말이다.


한 번의 실패는 과정일 뿐, 모두가 그 과정을 인정하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세상은 좀 더 빠르게 전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시 그 이후의 미래를 상상해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조용히 생각에 잠기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던 사람은?

세상을 조용히 관찰하고, 한 단어에도 오래 머물던 사람들은 설 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러한 심연 속에 잠겨, 조용히 숨 쉬고, 인간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던 창작물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모두가 낙관적이고 외향적인 세상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나친' 낙관은 때때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수면 위에 미세하게 찰랑찰랑 흔들리는 위험 신호에도,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실제로 심리학에는 '낙관 편향'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날 나쁜 일은 과소평가하고, 좋은 일은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말한다.


그래서 만약 이 경향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면, 기후 위기나 구조적 불평등 같은 장기 문제에 둔감해질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 것이다.






또 하나, 모두가 외향적이라면 사회는 과잉 자극 상태에 놓이게 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말이 많아지고, 표현이 넘쳐나며, 템포가 빨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조적으로는, 이 속도 속에서 천천히 말하고, 조용히 느끼는 사람들은 빠르게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수전 케인이 『콰이어트(Quiet)』에서 말했 듯, 내향적인 사람들의 힘, 즉 깊이 있게 사유하고, 갈등을 조용히 조율하며, 창의적 문제 해결을 탐색하는 능력은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낙관적이고 외향적인 사람들만 있는 사회는 아마도 눈부실 것이다. 늘 밝고, 힘차고, 잘 웃고, 앞을 향해 달릴 것이다.


그러나 그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미처 돌아보지 못한 뒤편에서 사라지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말하지 못한 감정, 고요함이 주는 지혜, 천천히 피어나는 온화한 관계들이 말이다.






사람은 각기 다르게 태어나고, 다르게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먼저 말하고, 어떤 사람은 듣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불을 지피고, 어떤 사람은 불씨를 지킨다. 그래서 세상은 조화롭게 굴러갈 수 있다.

그러니 결국 우리가 바라는 건 모두가 낙관적이고 외향적인 세상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과 그 반대의 기질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 아닐까?


따듯한 빛이 있어야 시원한 그늘이 있고,

조용함이 있어야 소리가 깊어진다.


진짜 건강한 사회는 모든 성향이 공존하는 곳에서 피어날 것이다.

모두가 밝은 세상보다, 각자의 빛깔을 지닌 사람들이 어우러진 세상이,

더 오래, 그리고 더 멀리 갈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나는 나의 하루를 미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