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 다른 내가 읽는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아

by 제인 J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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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본다.

낯익은 문장들이 줄줄이 눈에 들어오지만,

이상하게도 그 문장들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가슴에 들어온다.


분명히 같은 책인데,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신선하고 낯설다.


예전에는 그냥 흘려보냈던 단어에 잠시 멈추게 되고,

평범하다고 느꼈던 장면이 왜 이토록 아릿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보다 어렸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책 속 인물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이고, 의미 없다고 여겼던 대사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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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변화는 책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ㅡ 만화도 마찬가지, 나는 이제 둘리보다 고길동에 더 마음이 쓰인다 ㅡ.


기억은 고정된 정보가 아니라, 시간과 경험에 따라 다시 쓰이는 이야기다.


인간의 뇌는 기억을 저장할 뿐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재구성한다. 새로운 경험이 쌓일수록 예전의 기억도 새로운 시선으로 덧입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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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과학적으로 보면, 우리가 책을 다시 읽을 때 그 문장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과거와 전혀 다르다.


그 안에는 감정의 중추인 편도체, 그리고 경험의 순서를 기억하는 해마가 관여하고 있다.


단어 하나, 장면 하나가 불러오는 감정은 단지 기억이 아니라 감정이 실린 기억, 즉 나의 서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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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과거의 문장을 현재의 감정과 연결해 다시 부호화(Re-encoding)한다. 그래서 같은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뇌는 그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정서적으로 '다시 반응'한다.


특히, 삶의 변화가 있을수록, 그 변화는 고스란히 책을 읽는 내 감각에 녹아든다.


처음 읽을 때는 몰랐던 사랑이 지금은 목이 메고,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사회 속 외로움이 지금은 가깝게 다가온다.


그것은 단순히 감성이 풍부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해석 능력이 깊어지고 감정의 언어가 넓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자기 참조적 해석(Self-referential processing)'이라고 한다.


읽는 문장이 나의 삶과 맞닿을 때, 우리는 그것을 더 깊이 받아들이고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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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책은 정보를 전하는 도구이기 전에,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창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문장에서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그 문장이 단순히 '좋은' 문장이라서가 아니라, 그 문장이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책은 두 번, 세 번 읽어야 비로소 진짜 나에게 들어온다. 그건 반복이 아니라 축적이다.


다시 읽는 것은,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 나는, 얼마나 멀리 왔는지 깨닫게 되고, 얼마나 달라졌는지도 알게 된다.


책은 그대로인데, 나만 달라졌다는 사실이 조금은 기쁘고 조금은 먹먹하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더 많은 것을 잃고, 또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수용하게 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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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이를 먹고,

상처를 겪고,

관계를 맺고,

헤어지며 감정의 언어를 배운다.


그 언어는 다시 읽는 책 속에서 조용히 깨어나고, 우리가 미처 몰랐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넨다.


과거의 내가 읽은 문장이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걸고, 현재의 나는 그 말에 처음으로 귀를 기울인다.


그러니 책을 다시 읽는다는 건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나를 닮은 문장을 통해, 잊고 있던 나 자신을 되찾는 일이다.


지금 읽고 있는 이 책도 언젠가는 다시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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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날 나는 또 새로운 나로서, 지금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책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나는 다시 한번 새로워져 있을 테니까.


그렇게 우리는, 지금도 미래에도 같은 책을 읽으며, 전혀 다른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아마 그건 독서가 우리에게 주는 조용한 기적이자 선물이 아닐까.



여러분의 조용한 기적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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