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대로 배우고, 배우는 대로 산다

인간은 내던져진 존재다

by 제인 Jane




아침에 눈을 뜨고,

허겁지겁 아침식사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고,

TV를 보다가 잠드는 하루 산다.


그리고 내일도 그렇게 살 것이다.

우리는 이 반복의 나날을 '일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 익숙함 속에서 때때로 잊는다.

내가 왜 이 길을 걷는지,

지금 이 삶이 진짜 내가 원하던 것인지를.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인간을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났고, 선택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 환경 속에서 주어진 정답에 순응하며 산다.


시험을 잘 봐야 한다,

좋은 직장을 가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

결혼을 해야 한다...

그렇게 누군가 짜놓은 '모범 답안지'를 따라가다 보면, 나를 위한 삶이었는지, 남을 위한 삶이었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어느 날 퇴근길에 지하철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적이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정말 이게 맞나?"


지만, 늘 "생각해 볼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는데, 일단 해야지", "다들 이렇게 사는 거잖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으로 끝던 듯하다.



이은주 교수는 우리가 일상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삶에 대한 질문'을 잊고 산다고 말기도 했다.


이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철학하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시작점라고 생각한다.






'철학'은 사실 거창한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살면서 "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태도 그 자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심리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개념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예컨대, 자기 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서는 인간의 내적 동기를 유지하고 자율성을 느끼기 위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세 가지 심리적 욕구를 말한다.


그게 바로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삶에 대해 묻지 않을 때,

즉 자율성이 사라졌을 때 삶은 지루하고 피로해진다.


진짜 나의 욕구가 아닌, 외부에서 주어진 기준에만 맞추어 살아갈 때 우리는 자주 '번아웃(Burn-out)'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또, 실존주의 심리학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의미를 찾는 존재이며, 그 의미를 잃었을 때 내면의 공허함과 무기력에 빠진다."


이는, 삶을 다시 나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피해선 안 된다는 것 의미한다.


결국, 철학을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나로 살기 위한 질문과 사유의 실질적인 연습인 것라고 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아이들에게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넌 어떤 모습으로 삶을 살고 싶니?"라고 묻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자신만의 삶 안에서 스스로 묻고, 깨닫고,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 한 번쯤은 지금 하고 있는 잠시 모든 걸 멈추고 물어보고 싶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이 길이 진짜 내가 원하는 길인가?"


이 질문은, 무기력과 반복에 익숙해진 내 삶을 다시 흔드는 미세하지만 아주 강력한 진동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답이 당장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렇게 자신에게 묻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려는 결단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삶은 배움이고, 배움은 삶을 비추는 철학이다.


그 철학은, 매일의 삶을 의심해 보고 다시 돌아보는 그 작은 용기에서 시작된다.



우리 이제, 진짜 나를 바라보고 사유해 볼까요?








<추천 자료>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철학함을 가르침(Teaching Philosophy)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한국외국어대, 이은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