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이 없는 순간

이젠 낯설지만 어딘가 신선해

by 제인 Jane




출근길 지하철, 카페, 횡단보도 앞에서 대기할 때까지, 우리는 거의 무의식처럼 이어폰을 낀다.


무언가를 듣고 있지 않으면 어딘가 공허하고 허전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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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팟캐스트, ASMR, 때론 아무 소리도 없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까지, 세상과 나 사이에 얇고 조용한 장막을 내려 현실의 모든 소리로부터 나를 잠시나마 보호한다.


이제 이어폰은 단순한 청취 기기가 아니라, 사회적 피로를 조절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되찾기 위한 심리적 장비의 하나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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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을 끼는 행위는 어떤 의미에선 '세상과의 거리두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의 말에도 반응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어색한 침묵을 채우기 위해 애를 쓸 필요도 없다. 그렇게 그 장치는 잠시나마 우리를 '혼자 독립된 공간'으로 데려가 준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감각 차단을 '감각 탈중앙화(Sensory decentering)'라고도 부르는데, 외부 자극을 줄임으로써 내면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뇌과학 연구에서도 노이즈 캔슬링 환경은 '내적 반추(Self-reflection)'를 담당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의 활성화와 연관이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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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가끔씩은 그런 이어폰을 끼지 않은 세상에 대해 생각해 본다 ㅡ물론 깜빡하고 이어폰을 두고 왔을 때면 강제로 더욱, 하하ㅡ.


세상의 온전한 소리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통과할 때, 즉 내가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귓가에 다가오는 것들' 속에 나를 놓아둘 때, 우리는 무엇을 듣고 또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하는 그런 생각이다.


이어폰을 빼고 걷다 보면, 아침의 소리, 새소리와 행인의 발걸음 소리, 자동차의 엔진음, 아이의 웃음소리가 차례로 나를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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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는 '주의 훈련(Attentional train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외부 자극에 주의 깊게 반응하면서 마음을 조율하는 방법인데, 이어폰을 뺀 상태의 일상은 그 자체로 하나의 훈련장이 될 수 있다.


그 소음 속에서 우리는, 나를 괴롭히던 생각과 불안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으로 호흡을 되돌려준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한층 예민해진 감각은, 내가 여전히 살아 있고 여기에 있다는 증거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이어폰 없는 세상은, 이제는 때때로 조금 시끄럽고 어색하며 불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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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 조금 더 열린 상태, 누군가의 말에 더 귀 기울일 수 있는 준비가 된 상태임을 뜻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잊고 있었던 소리들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만난다.


이어폰이 없는 태초 그대로의 귀로 듣는 세상은, 덜 완벽하지만, 어쩌면 더욱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세상이다.





오늘 하루,

이어폰은 잠시 내려놓고, 생생한 세상의 소리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던, 그리고 듣지 못했던 것들과 새로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