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사람'의 시대는 끝났다

1부. 일의 종말 앞에서 인간을 다시 묻다

by 제인 Jane


퍼포먼스 중심 사회의 붕괴


우리는 오랫동안 성과가 곧 인간의 가치인 사회에 살았다. 보고서는 빠를수록 좋았고, 숫자는 높을수록 인정받았다. ‘일 잘하는 사람’은 칭찬받았고, 일이 느린 사람은 금세 뒤처졌다. 그런데 문제는, ‘일 잘함’이 이제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 아니라는 점이다. AI는 이미 우리 인간보다 더 빠르게 문서를 작성하고, 그럼에도 더 정밀하게 데이터를 분석하며, 심지어 리더의 의사결정까지 예측해 준다. 완벽한 퍼포먼스가 우리의 손을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 ‘일 잘하는 사람’은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자리를 AI 시스템과 자동화 알고리즘이 대신 차지하고 있다. HR 업계에서는 이미 ‘하이퍼 퍼포머(High Performer)’라는 단어 대신 ‘하이퍼 러너(High Learner)’, 즉 배우는 인간, 해석하는 인간에 더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가치 체계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AI는 완벽하게 일하지만, 그 일의 맥락을 해석하거나 의미를 설계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성과의 시대가 아니라 ‘맥락의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단순히 성과를 내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성과를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존재다. 그런데 AI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위치를 잃고 정체성의 붕괴를 경험한다. 이것이 바로 ‘퍼포먼스 중심 사회의 붕괴’가 단순히 경제적인 변화가 아니라, 심리적인 위기로 이어지는 이유이다. 성과가 더 이상 ‘자기 증명의 언어’로 작동하지 않을 때, 인간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꺼내 들게 된다.


그래서 어쩌면, 이 시대의 가장 깊은 피로는 과로가 아니라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 하는 삶의 피로일지도 모른다. 성과는 달성할 때마다 증발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다음 성과를 향해 다시 달린다. ‘이번에는 인정받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경쟁의 구조는 AI에게 완벽히 유리한 경기장이다. 기계는 피로를 느끼지 않고, 감정의 낭비도 없다.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커피나 에너지 드링크를 먹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결국, 인간은 성과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던 셈이다. AI가 완벽 해질수록, 인간은 완벽의 의미를 잃는다.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는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잘하는가’보다 ‘의미 있는가’를 묻는 시대가 왔다.


성과보다 존재가 중요한 이유


‘존재’라는 단어는 어쩐지 철학 책에서나 볼 법한 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요즘처럼 모든 것이 효율화된 시대에는 이 단어가 오히려 가장 실용적인 개념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AI는 성과를 낼 수는 있지만 ‘존재’를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다. AI가 일의 양과 질을 모두 압도하는 시대, 인간이 남길 수 있는 것은 ‘그 일을 한 사람’의 흔적뿐이다. 그 흔적은 감정이나 경험, 해석, 그리고 의미가 될 것이다. 성과가 결과를 보여준다면, 존재는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성과는 숫자로 계산되지만, 존재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기에 성과가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존재가 시작된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우리가 어떤 일을 ‘의미 있다’고 느낄 때 오렉신(orexin) 뉴런이 활성화되고 그것이 ‘심리적 지속력(psychological endurance)’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단순한 성과 경쟁에서는 절대 생길 수 없는 반응이다. 즉, ‘존재’라는 것은 뇌의 생리학적 수준에서조차 우리의 행동을 지속시키는 진짜 에너지인 것이다. 이걸 기업이나 조직에 그대로 대입해 보면, 성과 중심 조직은 피로를, 존재 중심 조직은 지속 가능성을 얻게 될 것이다.


오스트리아 신경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Viktor Emil Frankl)은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견뎌낼 수 있다.”


이 말은 단지 인내의 미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유(reason)’, 즉 의미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외부 조건이 아닌 내면의 기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AI 시대의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움직이는 건 더 높은 목표가 아니라, 더 깊은 이유다.


‘일 잘하는 사람’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는 ‘일에 이유가 있는 사람’, 즉 의미를 가진 사람이 빛나는 시대가 온다. 성과가 인간을 구분하던 시대는 끝난 것이다. 앞으로는 ‘왜 이 일을 하는가’가 ‘얼마나 잘하는가’보다 중요해지는 시대이다.


AI는 효율의 언어로 세상을 바꾸고 있지만, 인간은 여전히 의미의 언어로 세상을 이해한다. 효율은 속도를 높이지만, 의미는 방향을 정한다. 그러니 이제 남은 질문은 단 하나다. “당신은 왜 그것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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