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일의 종말 앞에서 인간을 다시 묻다
이쯤 되면 살짝 이상하다. AI가 우리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면, 논리적으로 우리는 더 이상 일할 이류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여전히 일자리를 원하고, 퇴직 후에도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할까? 이것은 단순히 생계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그 답은 인간의 뇌에 있다. 인간의 뇌는 ‘쓸모’를 느낄 때 비로소 안정된다는 사실을 들여다볼 수 있다.
뇌의 구조를 조금 들여다보면, 우리가 일을 통해 얻는 보상은 단지 돈이나 칭찬이 아니라 ‘존재의 확신’이다. 즉, 나는 여전히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감각이 우리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지탱한다. 이것은 아주 원초적인 생존 메커니즘에서 비롯되었다. 고대의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기여하지 못하는 존재’가 곧 ‘생존 불가능한 존재’였다. 그 본능이 오늘날까지 우리의 뇌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뇌는 ‘기여’나 ‘쓸모’를 감지하면, 보상 회로(도파민 경로)를 활성화시켜 쾌감과 동기를 준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편도체가 경고 신호를 보내며 불안과 무기력, 그리고 심리적 피로를 유발한다. AI가 일터에서 인간의 역할을 대체할수록, 많은 사람이 막연한 불안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쓸모의 상실’은 곧 존재의 불안으로 이어지게 된다.
‘쓸모’라는 단어는 다소 경제적으로 들리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의 ‘심리적 산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쓸모를 통해 타인과 연결되고, 세상과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래 머물면, 뇌는 마치 산소가 부족할 때처럼 둔감해진다. 활력은 사라지고, 자기 확신마저 희미해진다. 많은 은퇴자가 ‘이제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고 우울해할 때, 그건 단지 사회적 역할의 상실이 아니라 뇌가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감지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흥미롭게도, 이 순간 활성되는 것이 바로 오렉신 뉴런이다. 오렉신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은 단순히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시킬 뿐만 아니라, ‘내가 왜 깨어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리적 대답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서 의미 있는 목표를 수행할 때 오렉신 활동이 증가하고, 그 에너지가 각성과 집중으로 이어진다. 이는 즉, 의미는 뇌의 생리적 에너지원을 점화시키는 연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AI는 끊임없이 작동하지만, 인간은 의미를 느낄 때만 진정으로 깨어난다.
그 때문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계속 일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노동의 본능이 아니라, ‘의미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쓸모 있는 인간으로 느껴질 때, 우리의 뇌는 생리적으로 안도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된다. 결국,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먹는 것처럼, 존재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심리적 유용감’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나는 여전히 쓸모 있다.’라는 내면의 확신을 의미한다. 이것은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느끼는 '유효성'이다.
예를 들어 이런 순간들이 있다. 누군가가 “당신 덕분에 살았어요.”라고 말할 때, 또는 팀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 확실히 존재한다고 느낄 때, 그리고 때로는 아이가 “이건 우리 엄마가 제일 잘해!”라고 말할 때 등이다. 이때 우리는 급격히 활력을 되찾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칭찬을 들은 기쁨이 아니라, ‘나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 기능하고 있다.’라는 존재의 확인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체성은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에 의해서 구성된다. 즉, ‘Doing’은 ‘Being’을 만든다. 그런데 만약 내가 하던 일을 갑자기 잃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나’의 일부도 함께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직업 상실이나 은퇴, 혹은 경력 단절은 우리에게 경제적인 손실보다 정체성의 붕괴로 더 큰 고통을 남긴다. 사람들이 퇴사 후에 우울감이나 무력감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때 심리적 유용감이 우리의 자기 정체성의 ‘심리적 닻(anchor)’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나는 이 일을 통해 세상에 어떤 의미를 남기고 있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이 약해질수록 자아는 흔들린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일’을 통해 정체성을 재건하려고 한다. AI 시대에 이 구조가 더욱 중요해진다. AI가 모든 기능적 일을 대신할수록, 인간의 정체성은 점점 ‘내가 왜 하는가’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어떻게’보다 ‘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는 일을 통해 자신을 사회적 거울에 비춰보며 산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서 ‘나는 유능한 사람인가?’, ‘나는 존중받는 존재인가?’, 그리고 근본적으로 ‘나는 여전히 필요한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확인한다. 그래서 AI가 아무리 인간의 일을 완벽히 모사해도, 인간은 자신의 쓸모를 느끼는 행위, 즉 심리적 유용감을 회복하는 행위 없이는 결코 살아 있는 듯 살 수가 없다.
정리하자면, 지금 이 순간 AI가 '효율을 최적화'할 때, 인간은 '의미를 최적화'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여전히 일하고 싶은 이유이며, 일의 본능이 아닌 의미의 본능으로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