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2부. 의미가 동기가 되는 순간 - 소명의 심리학

by 제인 Jane


‘소명(calling)’의 심리학적 정의 : 직업이 아닌 ‘관계’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당신은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시나요?” 그런데 그 질문 뒤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질문이 숨어 있는 듯하다. “당신은 그 일을 의미 있다고 느끼시나요?”


많은 사람이 ‘소명’을 찾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그걸 운명으로, 또 누군가는 종교적인 단어처럼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소명은 직업이 아니라 ‘관계’에 가깝다. 그것은 내가 세상과 맺는 방식, 나의 일이 세상 안에서 어떤 파장(영향)을 일으키는가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이 일이 정말 나에게 맞는 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의 내용보다 그 일을 하는 이유를 잃어버릴 때 번아웃(burnout)을 경험한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은, 바로 이 ‘이유’의 영역이다. 기계가 효율을 높인다면, 인간은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높인다.


심리학자 에이미 브제스니에브스키(Amy Wrzesniewski)는, 사람들이 일을 바라보는 방식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하나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직업(job), 또 하나는 성취와 승진을 위한 경력(career),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소명(calling)이다. 그녀는 소명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내가 하는 일이 나를 넘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상태." 즉, 소명은 단순히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세상과 맺는 관계’라는 의미다. 우리는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면 그 일의 의미 역시 완전히 달라진다.


이런 이야기가 언급될 때는, 병원 청소를 하는 사람의 예가 자주 인용된다. 누군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물었을 때 ‘그냥 청소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누군가는 ‘나는 환자들이 깨끗한 공간에서 안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합니다.’라고 답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뭐, 직업의식이 투철하네."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주는 교훈은, 단순한 직업의식이 아니다. 후자의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세상에 기여하는 행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소명의식이라는 것이다.


소명은 거창한 비전(vision)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매일 반복하는 일이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고 있다는 감각, 그게 바로 소명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성과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라난다. AI는 코드(code)를 계산할 수 있지만, 결코 자신이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느낄 수 없다. 진정한 의미는 계산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그리고 세상과 사람의 연결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


또, 소명은 ‘나의 욕망’과 ‘세상의 필요’가 맞닿는 지점에서 태어난다. 앞서 말했듯이,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의미를 느끼는 한,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말하는 의미는, 나 혼자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세상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누군가의 필요에 내가 반응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명은 결국 세상과 내가 서로를 발견하는 과정인 셈이다.


우리는 일을 통해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을까?’ 만약 우리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한 생계가 아니라 관계의 언어가 된다. 그렇기에, 진짜 소명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통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다만, 많은 사람이 “내 소명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소명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관계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의미 있는 관계를 꾸준히 경험할수록, 그 일은 점점 더 소명에 가까워진다. 즉, 소명은 인생의 ‘목적지’가 아니라, 매일의 일상 속에서 ‘관계를 지속시키는 방식’이다. 그것은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어떤 파문을 남기는가’를 잊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깝다.


결국 소명이란, 이 한 문장으로 설명된다. ‘소명은 내가 택한 직업이 아니라, 내가 세상과 맺는 관계의 품질이다.’ AI는 인간의 일을 대신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관계를 대신 맺거나 느낄 수는 없다. 기계가 일하는 세상에서도, 의미를 만드는 건 언제나 인간의 몫이자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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