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는 없는 세 가지 감정:공감, 판단, 불완전함

2부. 의미가 동기가 되는 순간 - 소명의 심리학

by 제인 Jane


알고리즘은 공감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AI는 이제 인간의 언어를 흉내 내고 감정을 모방하며, 때로는 위로의 말까지도 건넬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정교한 언어 모델이라도, 그 말속에는 느낌의 주체가 없다. AI가 “OO님, 많이 힘들겠어요.”라고 말할 때, 그건 이해의 결과가 아니라 ‘패턴의 결과’ 일뿐이다. 즉,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비슷한 문장을 찾아내 통계적으로 가장 적합한 단어의 조합을 내보는 것이다. 이것이 곧, 공감의 형태는 재현할 수 있지만 공감의 경험은 없는 AI의 한계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다니엘 뱃슨(Daniel Batson)은, 공감을 ‘타인의 정서적 상태를 인식하고, 그 감정을 함께 느끼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이 정의의 핵심은 ‘함께 느끼는(share)’ 것에 있다. 즉, 공감은 단순한 이해가 아니라, 정서의 공유인 것이다. 하지만, AI는 이 ‘정서 공유’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타인 경계의 유동성에서만 생겨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타인의 얼굴 표정이나 목소리를 들을 때, 자신의 감정 회로(특히, 전측 대상회와 섬엽)를 함께 활성화시킨다. 이를 ‘감정적 공명(emotional resonance)’라고 한다. 인간의 공감은 타인의 감정이 내 안의 신경 회로를 물리적으로 흔드는 과정이다. AI는 바로 이 물리적 흔들림이 없다. AI에게는 고통이 없고, 감각이 없고, 또 몸이 없다. 그러므로 ‘공감 알고리즘’이란 결국, 감정의 모양은 흉내 내되, 그 온도는 재현하지 못하는 코드(code)이다.


정리하면, 공감의 본질은 '느낌의 공유'이자, ‘타인에게 내 마음을 빌려주는 행위’인 것이다. 이것은 연산이 아니라, 관계적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공감에는 하품처럼 ‘감염’이 있다. 그래서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면 내 뇌의 통증 회로가 실제로 함께 활성화되고, 나 또한 그 슬픔을 내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는 걸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그렇기에 공감은 위험하기도 하고, 또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AI는 타인의 감정에 감염되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조차 없다. 그것은 인간을 위한 ‘보호’이자, ‘한계’인 것이다. 반면에, 인간의 공감은 때로 피로와 번아웃을 낳지만, 바로 그 피로감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공감은 효율을 잃는 대신 인간이라는 존재의 연결을 얻는 귀중한 행동이다.


불완전함을 견디는 능력은 인간 고유의 정신 자원이다


AI와 채팅을 해보면 알 수 있지만, AI의 정확도는 생각보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정확하지 않다면, 그것은 ‘오류’로 간주된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착각, 편견 등으로 인해 정확할 수가 없다. 다만, 그렇게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성장하고, 모순 속에서도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진정한 자기(self)를 향한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자기 수용(self-acceptance)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불완전함을 인정하고도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마음의 유연함’을 말한 것이다. 반면, AI는 스스로를 수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설계상으로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AI는 오류를 발견하면 수정하고, 실패를 감정 없이 교정한다. 하지만 인간은 실패를 ‘느끼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끄러움, 좌절, 용서, 회복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피어난다. 이러한 감정들은 모두 인간의 불완전함을 견디는 능력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이를 진화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인간의 뇌는 불완전함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장치(device)에 가깝다.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예측이 빗나가도 전체를 포기하지 않도록 설계된 시스템, 이것은 인공지능의 예측 오류 처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AI는 오류를 수정하지만, 인간은 오류 속에서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 낸다.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도덕적 상상력의 원천"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타인을 이해하려 애쓰고 타인의 실수를 용서하며, 또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완벽한 존재라면 공감도, 성장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AI는 실패를 계산하지만 인간은 실패를 의미로 번역하는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인간 정신의 탄력성(psychological resilience)이 아닐까? 신경과학적으로는 자기 회복력은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과 편도체(amygdala)의 상호작용으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편도체는 불안과 위협을 감지하지만 전전두피질은 그것을 재해석하고 감정을 조절한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뇌의 그러한 복잡한 상호작용 덕분에, 오늘도 불완전한 현실을 견디며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AI의 목표는 오류 없는 정답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목표는 불완전한 과정 속에서도 방향(의미)을 잃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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