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결국 적당함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적당한 것

by 제인 Jane




사회가 더 경쟁적인 형태가 될수록, 그리고 경제적으로 큰 부를 얻지 못한 사람들을 '패배자'이니 '루저'이니 같은 못난 말로 정의 내리며 조금이라도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을 몇몇 개인들이 증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쇼펜하우어와 같은 염세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인기가 눈에 띄게 올라가고 있는 듯하다.


나 역시 그런 염세주의적 사고에 공감하고 있다. 특히, 쇼펜하우어와 연관된 책들을 읽다 보면, 책장을 넘길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여기에 다 적혀 있다"는 말이 밖으로 튀어나올 뻔하기도 한다.


다만, "나는 염세주의자다"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세상에 정답이라고 확신하거나 증명할 수 있는 말은 그 어떤 것도 없다."라고도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의 삶을 사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내면의 비교가 아닌 외면과의 비교에 목숨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 인정, 평가, 더 나아가 작더라도 물질적인 것 모두에 대해까지 우리는 남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타인보다 덜 좋은 곳에 살고, 덜 비싼 것을 먹고, 덜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또는 덜 똑똑한 것 같아서 과거의 나를 그리고 지금의 나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심하면 미래의 나를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게도 더 넓고 좋은 곳에 살고, 더 비싼 것을 먹고, 더 높은 지위를 가지며 더 똑똑하게 살아야 한다고 그 누구도 강요한 적이 없다.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나 자신 그대로 잘 먹고 잘 살 수도 있을 텐데, 우리는 왜 남과 비교하고 최대한 같아지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불행의 나락에 빠질 것처럼 쩔쩔매며 살고 있을까?



보통의 삶은 결국 '적당한 삶'이다. 그러한 삶에는 "누구보다 더"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무언가를 하거나 또는 하지 않는 것 등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삶이 적당한 삶이다.


많은 사람이 말한다. "적당한 게 가장 힘들어."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다만, '적당하기'를 실행하는 것이 힘들 뿐이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데 나만 없다면 하나라도 갖고 싶고, 하나를 가졌을 때는 두 개를 갖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심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욕심은 인간이 태초부터 가지고 있는, 일종의 초기 세팅된 시스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그 욕심을 내려놓는 것은 불가능한 게 아니라 힘든 것뿐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 또 어렵지 않게 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생각에 달려 있다. 그저 어떻게 살아갈지 지금이라도 선택하고 조금씩 실행해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무언가와 무언가를 비교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길 것 같다면, "적은 가까이에 있다."라는 말을 기억하면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 가까운 적은 실제로 나와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는 '나'이다. (그 누구도 그 이상 가까울 수는 없다)

비교로부터 힘을 얻고 싶다면 차라리 당장 어제의 나 또는 오전의 나의 모습과 비교를 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 오전에는 시간이 없다며 못 읽었던 책을, 자기 전에 짬을 내어 단 몇 페이지라도 읽었다면, 그만큼 더 대견한 사람이 된 것이 맞지 않은가?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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