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내 두 손에 식물이 마지막.

16화 죽음을 이겨낸 몬스테라

by sim

몬스테라는 이름처럼 몬스터 같다. 잎이 크게 크게 나는 편이고, 비교적 아무 곳 에서나 잘 자란다. 나에게도 몬스테라가 몇 그루 있다. 아주 좋아하는 곳에서 사 와서 아끼던 화분에 담아주고 키우던 몬스테라였다. 문제는 작년 가을부터 시작됐다. 식물이 몸을 낮추고 모두 영양분을 아끼는 겨울,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을·겨울이 절정기인 식물도 물론 많지만, 대부분의 관엽식물에게 겨울이란 이겨내야 하는 힘겨운 대상이다. 특히 한국의 겨울은 변화무쌍하며 여차하면 3,4월까지도 눈이 내리니···, 정말 쉽지 않다.


가을이 되어 정산하듯 얼마만큼씩 컸나 둘러보는데, 몬스테라가 심상치 않은 것이다. 하엽이 지고 있었다. 본격적인 겨울도 아니고, 그리 오래된 잎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새 잎을 내줄 모양새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몬스테라 초보가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 식물 상점에 여쭸더니 뿌리를 열어보라 하셨다. 집에 돌아온 즉시 몬스테라를 화분에서 꺼냈다. 뿌리가···, 뿌리가 다 물러있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 걸 참고 후우- 숨을 고르고, 뿌리가 어디까지 살아있나 확인했다. 이런···, 70%는 물러있었다. 이를 어쩌나, 하늘이 노랗고 앞길이 막막했다. 뿌리를 내리기 위해 물꽂이를 하라는 상점 사장님의 조언에 따라 무른 자리를 다 잘라내고, 나머지 남은 뿌리를 위해 물에 꽂았다. 그럼 뿌리가 다시 날 거라고 위로를 해주셨다.

공중뿌이만 남은 몬스테라, 곧 공중뿌리도 썩었다.

물꽂이 한 몬스테라는 쉽게 뿌리가 나주지 않았다. 되려 남은 30%의 뿌리가 조금씩 조금씩 썩어 들어갔다. 발견할 때마다 얼른 꺼내서 잘라주고, 잘라주고를 반복했다. 뿌리가 10%쯤 남았을까. 있는 대로 뿌리를 녹여대던 기세가 주춤하고 멈춰 섰다. 그때가 겨울 한복판이었다.


생생하게 잘 살아있던 식물도 죽기를 반복하는 겨울, 그 한 겨울에 10% 남은 뿌리를 물꽂이 한 몬스테라의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마음 한 편으로는 보내줄 준비를 하고 체념한 채 물꽂이를 지켜봤다. 거짓말같이 잎은 탱탱하게 건강했다. 약 올리는 것 같아 미웠다. 희망고문, 정말이지 싫다.

겨울 내내, 몇 달을 수 없이 많이 물을 갈아주는 와중에도 뿌리 하나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더 이상 썩어 들어가지도 않았다. 정지. 정지 상태였다. 혹여라도 썩을까, 한순간에 뿌리가 물러버릴까 전전긍긍하며 겨울을 보내는 와중이었다.


뿌리가 나왔다. 나와줬다. 새하얀 뿌리가 썩어 잘라준 그 자리에서 뾰족, 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그 날의 기쁨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아주 우울한 시즌을 보내는 와중이었는데, 동거인이 “얘 뿌리 났어!”라는 한 마디에 시큰둥하게 다가가 보고, 침대로 돌아와 눕는데 눈물이 났다. 아주 복잡한 마음이었다.


허우대만 멀쩡한 내가, 마음의 뿌리가 다 썩은 내가 살아낼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하고 반복했다. 나는 내가 살아낼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기엔 스스로가 나약했으며, 나에겐 나를 버티게 해 줄 해도 바람도 없었다. 그저 정지. 몬스테라처럼 정지 상태였다. 그렇다고 몬스테라에 감정이입을 하고 나처럼 돌본 것도 아니었다. 식물들은 나의 부재에 죽어 나갔고, 나는 그것을 적당히 방치했다. 내킬 때만 베란다에 나가서 물을 줬다. 아주 한심한 가드너였다.

그런데 몬스테라의 하얗고 뾰족한 뿌리를 보고, 나의 마음은 퉁 하고 주저앉았다. 살아냈다. 뿌리가 다 썩어버린 몬스테라가 살아남았다. 버티고 버텨 양분을 모아 뿌리를 냈다. 실 모양 얇은 뿌리도 아니었다. 두껍고 실한 뿌리가 나온 후, 기다렸다는 듯이 뿌리는 쭉쭉 길었다. 뿌리에 뿌리가 나고, 그 옆에도 나고, 뒤에도 났다. 새 뿌리들은 튼튼했고, 잎은 늘어나지 않았다. 무리하지 않겠다는 심산인 듯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늦겨울과 초봄 사이에 화분에 다시 정식해주었다. “이 정도면 더 이상의 돌봄은 필요 없을 거야.”를 여러 번 회의 끝에 결정 내렸다. 정식해주기 위한 꽤나 그럴싸한 화분을 따로 들이고, 흙 배합하고 심고, 자리를 잡아주던 그 날. 몬스테라는 정확히 살아났다. 초봄을 지나 어느 날, 아주 작은 싹이 났고, 그보다 큰 둥근 잎이 나고 자연스럽게 찢어진 잎이 나와줬다. 순서대로 차근차근, 실망시키지 않고 성장을 보여줬다.

겨우내 살아낸 내가 겨우내 성장한 몬스테라를 보며 온갖 잡생각에 시달릴 때, 몬스테라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어쩌면, 겨우내 버텨낸 나도 조금은 성장했을까?

죽음의 기세를 멈추고, 성장의 기세로 끌어올린 몬스테라는 지금도 새 잎을 내며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다.


사람도 식물도 아플 때가 있다. 죽을 것 같이 아플 때도 있다. 난 그런 때 기세를 본다. 죽을 기세로 몰려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떤 손길이 필요한지는 식물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적당한 손길이 닿은 후에는 기세의 싸움이다. 죽을 기세를 이겨내고 성장의 기세로 끌어올리는 묵직한 힘. 그 에너지. 생명에 대한 원초적인 본래의 욕구 말이다.


오늘도 하엽을 맞이했다. 디온 에둘레 소철이라는 식물이다. 일 년에 잎 한 장을 보기가 힘든 식물인데 한 장 잘라냈으니, 일 년 치를 잘라낸 것이다. 어쩌면 저 친구도 지금 해에 타버린 잎 때문에 광합성도 힘들고, 죽음의 문턱에 발을 들이밀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죽지 않을 것이다. 겨울 내내 디온 에둘레는 새 싹 두 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정지되어있는 줄로만 알았던 겨울에 말이다.


나도 당신도 스스로를 살리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것이 사랑일 수도, 돈이나 성공일 수도 있겠다. 정지. 지금 정지되어있어도 너무 나를 몰아세우지 말자. 시간을 주고 물꽂이 했다고 생각하자. 내게 필요한 에너지를 위해서는 우선 정지되어있어야 한다. 커다란 성장과 움직임 앞에서 에너지는 쓰이지 결코 쌓이지 않는다. 다 썩어버린 나의 밑동에 굵은 뿌리가 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에너지를 모은다. 기다린다. 나의 시기는 나만이 알 것이다. 당신에게도 당신의 시기가 올 것이다. 그 시기를 위해 에너지를 모으고, 참고 견디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저 쉬고 노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당신도, 나도 스스로의 겨울을 맞이했을 뿐. 언젠가 봄이 오고 해를 맞이하며 고개를 들고 꺄르륵 웃어버리는 나를 상상하며 견디어 내자. 당신에게도 그런 날이 오길, 몬스테라를 기다렸던 마음으로 함께 기다리겠다.




지금까지 <죽고 싶은 내 두 손에 식물이>를 아껴주셨던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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