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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욱 Jun 08. 2019

가족과 함께 보라카이 여행하기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

*원래는 2019년 5월 성찰을 써야 하지만, 한 달간 정말 특별한 일이 없었던 관계로 여행기로 대신한다. 




여행을 가면 하루 동안 본 것과 느낀 것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하나 이번 여행에선 글자 하나 읽지도 쓰지도 않았다. 제대로 된 휴양을 해보고 싶었고 스스로에게 어떤 부담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일정도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제대로 챙기지 못한 가족과 함께 잘 먹고, 잘 쉬고, 많이 이야기하고 오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족한 여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날이 되자 손이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남기지 않으면 경험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느낌, 혹은 두려움이 내 안에 있나 보다. 리조트에서 체크아웃 후 발 마사지를 받으며 끄적끄적 글을 쓴다. 다만 의무감이 아닌 ‘기꺼이'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끄적인다. 


석양은 여전하다


오랜만에 온 보라카이는 늘 그렇듯 비슷했고. 또 달라졌다. 한 가지 분명히 달라진 것은 해변의 모습과 환경 보호에 대한 강한 의지다. 2007년 처음 방문했을 때 보라카이는 비교적 깨끗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관광객이 늘어나고 관리를 하지 않자 중요한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하고 만다. 나 역시 2016년에 방문했을 때, 그 아쉬움을 느꼈다. 근 10년 만의 방문이었는데 해변가는 온통 장사꾼과 음식점으로 채워졌고, 그 모습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맛있는 망고 쉐이크 그리고 석양의 아름다움은 그대로였지만, 과거보다 퇴보한 느낌이었다. 나보다 기대가 컸던 아내는 더욱 그랬다. 





두테르테의 강력한 의지로 시작된 보라카이 '폐쇄 프로젝트'는 눈에 띄는 2가지 업적은 남겼다. 우선 해변가에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표지판을 걸고, 상시 주둔하는 사람들을 두었다. 이번에 가서 느낀 것이지만 야자수는 많아진 것 같고 해변은 더 넓어졌다. 아마도 상업 공간이 사라진 덕에 느껴지는 것이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여행자들에게 그렇게 경험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일회용품 사용이다. 음료 빨대는 모두 종이로 바뀌었고 상점들도 모두 종이 상자를 나눠준다. 어떤 곳도 예외 없이 말이다. 아직도 한국을 가면 플라스틱 빨대를 쓰는 곳이 많은데 반성이 될 만큼 바뀌었다. 개인적으론 인상 깊은 변화였다. 




그 외 자잘한 변화들도 보인다. 일단 관광객 국적의 비율이 변한 것 같다. 중국인이 확실히 늘었다. 2007년만 해도 서양인이 꽤 많이 보였는데 이젠 중국과 한국인이 압도적인 것 같다. 경제 발전과 여행은 떼려야 뗄 수가 없나 보다.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 시티몰도 생겼다. 보라카이 최고의 현대적 건물이라 할만하다. 필리핀의 유명 쇼핑몰인 SM City만큼은 아니지만 크고 넓고 시원하며, 관광객들도 한 번쯤 방문할 만하다.


그리고 내 눈에 유심히 보인 것은 셀카족들이다. 특히 한국과 중국에서 두드러지는 현상 같은데 셀카를 찍는 것이 여행의 목적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우연히 보게 된 어느 중국인 여자는 정말 모든 공간에서 휴대폰 화면 속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영을 할 때도, 조식을 먹을 때도 그녀는 오롯이 화면 속 자신에게 집중했다. 그녀의 집중력과 남자 친구의 관대함이 기억에 남는다. 남의 일이 아니다.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는 나 또한 반성이 되었다. 


우리도 셀카를 많이 찍었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특히 저렴한 인건비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들은 변함없었다. 어떤 가게든 점원이 참 많다. 이보다 좀 더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야 하는데.라는 안타까움도 들었다. 과거에 비해서 전자 제품도 많아지고 새로운 브랜드도 많이 보였지만, 화웨이나 우포 등 가성비 좋은 중국 기업의 진출이 눈에 띈다. 결국 자동차나 전자 제품 등 제조업을 자국화하지 않으면서 경제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란 쉽지 않다. 10년 전에 비해서 필리핀의 산업구조가 거의 변함없다는 것은 참 아쉽다.  


내가 좋아했던 식당도 여전했다. 망이나살, 졸리비, 차오킹 등 2007년에 자주 먹었던 브랜드가 아직도 맹위를 떨친다. 물론 그 시절을 기억하고 싶은 나에겐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필리핀 입장에서도 반길 만한 일일까. 더 더양하고 새로운 시도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음식을 못 먹게 되더라도 괜찮다. 몇 년 뒤에 다시 방문했을 때는 조금은 더 역동적인 필리핀을 보고 싶다. 그 가능성만큼은 충분한 곳이니 만큼 잘할 거라 믿는다. 


3대 프랜차이즈가 모인 곳, 시티몰


여러 가지 생각을 공유했지만, 보라카이는 나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여행지다. 가성비가 좋고, 안전하고, 무엇보다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아름다운 석양은 분위기 연출의 1등 공신이다. 그리고 기억나는 사소한 것들. 저녁이면 흘러나오는 가수들의 노랫소리, 음식물을 구걸하는 길거리의 개들. 늘 웃음을 잊지 않는 아이들. 친절한 호텔리어들 등.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방문하고 싶다.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지킬 것은 지키고, 변화할 것은 변화시키길.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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