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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욱 Apr 30. 2022

왜 일본제국은 실패하였는가? (1)

여섯 번의 전투 패배 회고

개인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전쟁사를 좋아한다. 유튜브에서 삼국지 아저씨라고 불리는 임용한 교수님의 방송을 즐겨보고, 밀덕에겐 꽤 유명한 ‘토크멘터리 전쟁사’도 꽤 챙겨봤다. 내가 전쟁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전쟁 그 자체보다는 ‘군대’라는 조직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며, 경영 서적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이다. 군대는 최초의 근대적 조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가장 오래된, 합리적이며 계층적인 조직이다. 지금의 조직 구조 역시 대부분 군대에서 비롯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예전에 박석민 정치 컨설턴트가 “정치는 전쟁과 스포츠, 그 사이에 있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나 또한 “기업 조직은 군대와 사회, 그 중간에 있다.”라고 표현한다. 결국 군대가 승리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규율과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중요한 자율성, 그 두 가지가 창조적 긴장을 이뤄나가는 것이 성공하는 기업의 특징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책의 요점은 ‘일본군의 실패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를 회고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일본이라는 국가의 문화에 기반된 요소가 많다 보니, 잃어버린 30년을 맞이하고 있는 일본의 현재 모습도 적잖게 투영되더라. 전쟁사와 회고, 조직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분은 아시아의 피터 드러커라고 불리는 노타카 이쿠지로인데, 암묵지와 형식지를 통한 지식 창조 모델을 제시한 분이다. 그렇기에 더욱 신뢰할만한 책이다.


“이 책이 지향하는 바는 태평양 전쟁의 일본군 작전 실패 사례에서 그 조직 결함과 특성을 분석해, 조직으로서의 일본군이 저지른 실패에 감추어진 메시지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지휘부와 Align이 되지 않은, 그저 정신력에 의지한 전투 (노몬한 전투)

제국주의 시대, 일본 육군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중극 침략과 식민지 지배 과정을 거치면서 합리성이 정체되거나 퇴화되어갔다. 그리고 만주에서 펼쳐진 노몬한 전투는 육군 최초의 패배로 기록된다. 당시 중앙부는 분쟁을 확대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었으나, 관동군은 자체적으로 판단했다. 즉, 권한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았고 소통마저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중앙부의 명령은 ‘불명확하고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게 되며, 관동군은 이 명령이 ‘전투 중지를 명한 것은 아니’라고 받아들이고 전투를 추진하게 된다.

그와 더불어 객관적으로 승산이 없는 전력이었음에도 일본군만의 정신력으로 승리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소련 사령관은 “일본군 부사관과 병은 용감무쌍하고, 초급장교는 마치 광신도처럼 용맹스럽지만, 고급장교는 무능한 자들뿐.”이란 말을 남겼다. 근거도 없는 낙관주의는 패배를 부른다는 걸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1. 작전 목적이 애매하고, 중앙과 현지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하고, 객관적 전력을 무시한 체 정신력에 의지하면 패배한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 전투 (미드웨이 작전)

일본 해군의 전략은 단기 결전이라 불리는, 미국 함대가 태평양을 넘어올 때 함대 결전으로 단번에 적을 무찌르는 방법이었다. 장기전으로 들어가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전력이 열세였던 미국은 일본보다 정보전에서 앞서고 있었고, 일본의 계획을 거의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일본군의 가장 큰 착오는, 미 항공모함이 미드웨이 부근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입관을 가진 것이다. 함대끼리의 결전을 전투의 핵심으로 여겼고, 공격력 향상에 투자했지만 공격을 발휘하는데 전제가 되는 정보 수집과 정찰에 대한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반면, 미국의 항공모함은 당시 산호해 해전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진주만에서 단 3일 만에 수리를 끝내고 미드웨이로 출격시켜서 전황을 뒤집게 되었다. 

2. 복잡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빠르게 정보를 확보하고 민첩하게 반응하지 못한다면 패배한다.


영화 미드웨이


일본 육군과 해군이 전혀 효과적으로 협력하지 못한 전투 (과달카날 작전)

당시 일본 육군의 핵심은 병참 보급선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지구전이 우선되었다. 하지만 해군은 전황이 불리해지면 퇴각할 수 있기 때문에 추가 보급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각자 다른 상황 속에서, 육군과 해군의 불신은 점차 커지고 알력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육해공을 통합해 하나의 목표를 집중 공격하려면 각 조직이 효과적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정보 체계를 정비하고, 고성능 통신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 비해 일본은 통신이 긴밀히 이뤄지지 않아서 따로따로 전투를 벌였다. 이와 더불어 일본군 전략은 관료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1선에서의 작전 변경 요청은 대개 거부되었다. 전체적인 전략 상으로도 합의를 이루지 못했지만, 현장의 피드백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것이다. 결국 죽을 각오로 전군이 돌격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3.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조직은 더 긴밀히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패배한다.



인간관계를 과도하게 중시하고, 개인의 돌출 행위를 허용한 전투 (임팔 작전)

역사에 길이 남는 패전 중 하나로 꼽히는 임팔 작전은 작전 계획 자체가 엉터리였다. “왜 작전이 실패했는가?”가 아니라, “왜 이런 무모한 작전이 실행되었는가?”라는 주제로 회고해 보자. 우선, 미얀마 정세에 정통한 사람이 무타구치 사령관을 제외하고 없었다. 그의 작전에 경악한 참모진들이 다른 사령관에게 보고를 했으나 지휘 계통을 무시했다고 받아들여져서 해임되고 말았고, 다른 사단장들도 공개적으로 반론하지 않았다. 그저 주제와 동떨어진 잡담을 나눌 뿐이었다. 결국, 합리성보다는 관계와 융화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반영되어 대본영의 인가가 떨어진다.

무타구치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은 작전의 성공을 의심하는 것과 같으며, 이는 부대 사기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보급과 병참을 중시하지 않았고, 기습 돌파 일변도의 작전을 구상했다. 전투 결과는 전멸을 넘어 거의 궤멸되었는데, 전사자 3만 2천 명, 병사 및 아사자가  2만 명 이상 발생했다. 


4. 애초에 어이없는 작전 계획이 상급 사령부의 허가를 얻는 과정이 문제였으며, 인정이라는 이름으로 관계와 융화를 과도하게 중시하는 분위기가 패배를 부른 것이다.


“영국, 인도군은 중국군보다 약하다. 과감하게 포위하고 우회를 실행한다면 반드시 퇴각한다.  보급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말레이시아 작전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과감한 돌진이야말로 승리의 지름길이다.” 


임팔 전투


일본다움을 강조했으나, 자기 인식에 실패한 전투 (레이테 해전)

당시 일본과 미국과 생산력 차이는 더욱 크게 벌어진, 객관적으로 일본이 열세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승산이 낮은 작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선 목적을 명확하게 하고 전략적 일관성을 확보하여 적재적소에서 동시에 활약해야 했다.

당시 일본 해군은 러일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게 한 ‘대함 거포 주의’를 시종일관 고집하는데, 이러한 성향은 전황이 변화했음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레이테만 돌입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설정했지만, 실제로는 명령에 반하는 행동을 자주 보였고, 심지어 거짓 성공 보고를 수차례 되풀이하게 되었다. 당시 해군에 만연했던 평범성을 벗어난 작전이었고, 결국 실패한 것이다. 

5. 독창적인 작전이 실시되더라도, 그것은 기존까지의 방식이나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결국 통일되지 못한 지휘가 패배를 부른 것이다.




야마토 전함

2부는 일본군 전략에 대해서 좀 더 다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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