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조직 분석
3부. 마지막으로, 조직 상의 실패 요인을 찾아보기로 하자.
일본군은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인 관료제를 받아들였지만, 사실상 인맥이 강력한 기능을 하는 조직이었다. 육대 출신의 초엘리트 집단은 지휘권에 강력히 개입하며, 지극히 강고한 권력을 가졌다. 이러한 인맥 중심의 집단주의 문화는 의사결정의 합리성을 방해했다. 반면 미국군은 직무에 따라 유연하게 인사를 배치했고, 지휘관을 적절한 주기로 교체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전선의 긴장감을 유지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반면 일본은 선후임은 엄격히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시스템 중심의, 역동적인 관료제를 만들지 못한 것이다.
미군은 통합 전력을 중시했다. 반면 일본 육군은 소련, 해군은 미국을 가상 적국으로 설정해왔는데, 명령 체계도 각기 독립되어 있었고, 조직의 행동 양식도 달랐다. 그래서 일본군의 타협을 일궈낼 사람은 오직 천황밖에 없었다. 하지만, 천황은 스스로 나서서 지휘하거나 조정하지 않았고, 양자가 서로 합의할 때까지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기에 일본의 육해공 합동작전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일본군에는 실패를 축적하고 전파할 시스템이 없었다. 일제 돌격은 러일 전쟁 이후 계속 이어온 전법이었으나, 효과가 없었음에도 반복되었다. 일본군 안에선 자유롭고 활달한 논의가 허용되지 않았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정보를 소유했다. 그러다 보니 조직 전체적으로 지식이나 경험이 공유되지 않았다. 게다가 작전을 세우는 참모는 현장에서 떨어져 있었고, 현장의 아이디어는 반영되지 않았다. 훈련 과정 역시 모범 답안을 암기하고 수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장려되었다.
즉, 일본군의 학습은 특정 문제에 대한 최적 답안을 찾는 ‘단일 고리 학습(single-loop learning)’이었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 환경에 적응해 오래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의 행동을 현실에 비추어 수정하고, 나아가 학습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하는 ‘이중 고리 학습(double-loop learning)’이 반드시 필요하다.
앞선 전쟁에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은 주요 인사들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았다. 평가에 있어서도 인정이 짙게 반영되었고, 벌은 소홀히 했다. 그리고 이들은 어느새 요직을 꿰차고 앉았다. 개인의 책임을 묻지 않고, 평가가 애매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조직의 학습 능력은 떨어졌다. 반면 미국은 인사 평가에서 제독들로 구성된 진급위원회가 투표를 실시한다. 선발된 자는 자부심을 갖고, 떨어진 자는 노력하여 다음 기회에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는 조직에 역동성을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