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정욱 Sep 06. 2022

제주도 보름 살기를 하다. 애월 2

2022년 1월 15일~18일 (애월 근처)

올해 초, 제주도 보름 살기를 다녀왔다. 버즈빌에서 3년 재직 후 2주의 장기근속 휴가를 받았고, 가족과 함께 제주도를 가기로 결정했다. 당시, 나름 바쁜 와중에도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매일 일기를 기록했다. 하지만, 막상 브런치로 옮기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더라. 이제야 하나씩 옮겨본다. (*대부분 원문이며, 지금 시점에서 추가하는 말은 이렇게 표기했다.) 


1편 바로가기




1월 15일 토요일

한담해변로 산책


오늘은 첫 주말이다. 보름 살기를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일상에의 경험'이다. 원래 여행은 일상처럼, 일상은 여행처럼 보내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삶인데, 막상 그것이 쉽지는 않다. 아무래도 여행은 시간이 한정적이고, 제한된 자원 내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보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지 않은가. 하지만 2주라는 긴 시간은 우리 인식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조급함이 사라진, 일상 같은 여행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일상


오늘 아침은 원래 근처 빵집에 다녀와서 점심을 먹고 집에서 낮잠이나 잘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가자 따뜻한 날씨가 우리를 반겼다. 지난 3일 동안 날씨가 그리 좋지 못했기 때문에, 따뜻한 봄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바로 계획을 수정해서, 한담 해변산책로로 향했다. 애월 카페거리로 목적지를 변경한 것이다. 걸어가는 길은 정말 황홀했다. 중간중간 해변에 들려서 재원이는 모래 놀이를 했고, 따뜻해진 날씨가 우리의 마음도 따뜻하게 만들었다. 


모래는 참을 수 없지!
해변로


카페에서 커피를 먹으면서 나는 책을 보고, 재원이는 그림을 그리고, 아내는 가계부를 작성했다. 이후에 소품 가게에 가서 이런저런 그림도 사고, 관광객처럼 돌아다녔다. 점심으로 뭐 먹을까 하다가, 아내가 해물라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놀멘'으로 향했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겨울처럼 느껴지지 않는 날씨였다. 라면 자체도 맛있었지만, 좋은 날씨에 야외에서 먹는 그 분위기가 더 맛있었다. 음식을 먹을 때, 단순히 맛이 아닌 분위기를 먹는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해물라면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산책로를 걸어서 다시 집으로 왔다.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하나로마트에서 내일 먹을 삼겹살을 샀다. 그리곤 둘 다 뻗어버렸다. 잠깐 낮잠을 자고, 저녁을 먹는데 행복감을 느꼈다. 미래도 중요하고 현재도 중요하다. 평소에는 물론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투자하며 살아야 하지만, 가끔은 현재를 붙잡을 필요가 있다. 여행은 현재를 붙드는 가장 좋은 수단이 아닐까. 하루를 정리하며 글을 쓰는 이 순간도 그렇고.


애월 바다




1월 16일 일요일

사려니 숲길 & 동백 포레스트


여행 중, 우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엇일까?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날씨'를 꼽고 싶다. 인상 깊었던 여행을 떠올렸을 때, 나는 그 시점의 기온과 분위기를 함께 떠올린다. 너무 덥지도 않고, 너무 춥지도 않은 적절한 날씨를 여행지에서 만날 때 나는 오랫동안 기억한다. 날씨야 말로 통제할 수 없는, 불가피한 변수이기 때문에, 더욱 귀하고 고마울 뿐이다.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도 '날씨'로 인해서 많은 것이 변화한 날이다. 원래 계획은 오늘만큼은 그저 쉬자는 것이었다. 삼겹살을 구워 먹기로 해서 미리 마트에서 사 오기도 했다. 그런데 아침 날씨를 보니, 내일(월) 비가 온다는 거다! 그렇다면 지금 이대로 있을 수 없겠다 싶어 급히 계획을 짰다. 목적지는 동백꽃을 보러 가는 것이고, 대부분 남원읍에 모여있길래 가는 길에 사려니 숲길도 들렀다 가기로 했다. 사려니 숲길은 2012년에 따로 한번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충분히 구경하지 못했었다. 오랜만에 다시 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사려니 숲


사려니 숲길에 도착 후 함께 걸었다. 생각보다 땅이 많이 젖어있어서 많이 걸을 순 없었지만, 잠깐이나마 숲 속을 걷는 그 느낌이 좋았다. 점심으론 그 유명한 범일분식의 순댓국을 먹으러 갔는데 하필이면 바로 우리 앞에서 다 떨어졌다고 하셔서 ㅠ 근처의 중국집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곤 동백 포레스트에서 동백꽃을 구경했다. 인스타 명소인 것 같은데, 젊은 커플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나를 비롯한 몇몇 아저씨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돌아다녔다. 개인적으론 동백꽃도 예뻤지만, 돌아다니는 집집마다 감귤 나무를 키우고 있고, 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모습들이 더 인상 깊었다. 겨울 제주도의 매력을 많이 느끼고 간다.


인스타 명소
동백꽃



1월 17일 월요일

일요일 같은 월요일


오늘은 월요일, 하지만 우리에겐 일요일이다. 아침에 간단히 아침을 먹고, 근처의 '애월 빵공장'으로 향했다. 컨셉 자체가 인스타를 노린 것 같긴 한데, 전반적으로 빵이 예쁘고, 맛있고, 다만 비쌌다. 맛이 없었다면 조금은 속상했을 가격인데, 그나마 높은 퀄리티와 뷰가 많은 것들을 보상해줬다. 재원이는 (오랜만에) 문제집을 풀었고, 나는 글을 썼고, 아내는 가계부를 썼다. 약 두 시간을 각자의 시간으로 채웠다. 우리에겐 함께하는 시간, 그리고 각자의 시간이 모두 필요한 법이다.



점심은 토요일 마트에서 사놓은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이 순간을 위해서 서울에서 공수해 온 에어 프라이어! 따로 구워 먹을 필요가 없어서 너무 편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보건소로 가서 아내는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아내가 지난번에 먹은 방어회랑 매운탕이 먹고 싶다고 해서, 갯바위 수산으로 방향을 돌렸다. 일상 같은 하루였다. 


저녁을 먹고, 애월의 마지막 밤바다를 보러 나갔다. 날씨 자체는 그리 춥지 않았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아마도 안 동안은 애월에 올 일이 없을 것 같으니,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늘 그렇듯 할리갈리를 하고 재원이는 잠이 들었다. 나는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매일 밤에는 업무를 하고 있다. 인생은 늘 예측 불가능이다. 좋은 일도 있고, 아쉬운 일도 찾아온다. 이번 일은 아쉬운 일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 하고자 노력 중이다. 그러다 보면 좋은 일도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애월의 마지막 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도 보름 살기를 하다. 애월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