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8일~21일 (월정리 근처)
1월 18일 화요일
애월의 마지막 날이자, 월정리의 첫날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동선에 마침 제주 시내가 있었기 때문에, 동문시장으로 향했다. 뭐 먹을까 고민하다가, 맛집을 찾아보니 우진 해장국이랑 김만복 김밥이 눈에 들어왔는데 아내가 김밥을 먹고 싶다고 해서 김만복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테이크 아웃만 취급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난처했다. 결국 김밥을 사서 다시 차에 가서 먹을까 하다가, 주위 공터에서 냠냠 먹었다. 김밥이 약간 심심하긴 했는데, 부드러운 계란 김밥이라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고 시장으로 향하는 길에 '제주목 관아'가 눈에 띄었다. 한창 사극이랑 역사에 관심이 많아진 재원이를 위해, 아내는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방문했다. 하하. 생각보다 관리가 잘 되어 있었는데, 귤나무도 다양한 종류가 있었고, 전통놀이도 체험해볼 수 있었다. 역사관에 가서 예전 이야기도 살펴볼 수 있었다. 그 당시에 제주도에선 말과 귤, 전복을 중심으로 공물을 바쳤는데, 당시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자연스럽게 상상이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탐욕스러운 관리랑 원칙 없는 세금이 문제다.
스벅에서 커피 한잔 하고, 시장에서 장을 봤다. 타이백 감귤이랑 몇몇 선물을 샀다. 그리곤 월정리로 향했는데, 새로운 집의 느낌은 정말 '인스타 감성'이 충만한 곳이었다. 집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최고였다. 근처에 아무것도 없는 시골이긴 한데, 그래서 불편함도 있겠지만 그래서 조용해서 좋기도 하다. 잠깐 밖으로 나가서 산책 갔을 때가 일몰 시점이라 하늘 색깔이 예뻤는데, 예로부터 일출 맛집이라고 해서 아침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저녁에는 재원이 이빨이 많이 흔들려서, 실로 감아서 뺐다. 몇 차례 시도 끝에 겨우 성공했는데 어딘가 훅 날아가 버려서 찾지 못했다.
1월 19일 수요일
역시 일출 맛집. 명불허전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본 일출 중에서 지금까지 손에 꼽힐 만큼 예뻤다. 듬성듬성 놓인 풍력발전소 덕분에 더 운치가 있었다. 멀리 나갈까 하다가, 무리하지 말고 집 근처에서 돌아다니며 쉬기로 했다. 오전에는 각자 시간을 보냈는데, 나는 일을 하고, 재원이는 문제집을 풀고, 아내는 가계부를 썼다. 또 같이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렸다. 그러다가 어제 뽑은 재원이 아랫니를 발견했는데, 밖으로 나가서 지붕에 던졌다. 이빨을 찾았을 때 엄청 기뻐하던 재원이와 아내 얼굴이 선명하다.
점심을 먹으러 월정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한담 해변이나 곽지 해수욕장과 또 다른 분위기였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론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참고로 아내에게 바다 느낌을 물어보니, 그냥 '시골 바다'라고 냉정하게 한 마디 했다. 점심은 월정리 갈비밥에서 먹었는데, 밥을 먹던 중 아파트 1층에서 물이 샌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화재보험에 가입해놓은 상황이긴 하지만, 누수가 발생할 경우 상당히 복잡한 상황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신속하게 인테리어 사장님께 연락해서 대응을 했지만, 앞으로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다행히 별일은 아니었다.)
점심을 먹은 이후, 우리가 선택한 것은 시내버스를 타고 세화로 향하는 것이다. 마침 집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오랜만의 버스 투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세화 해수욕장 근처에는 아기자기한 소품샵이 많았다. 그중에서 우리의 눈과 입을 사로잡은 곳은 '카카오 패밀리'라는 수제 카카오 전문점이었다. 나는 무언가에 진심인, 진지하게 몰입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데 그 가게가 딱 그러한 장인의 모습이었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카카오를 맛보고 결국 자신만의 가게를 만드는 것까지. 세상에는 존경할만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우리도 카카오 카라멜을 비롯한 많은 선물을 사서 집으로 왔다. 저녁 일과는 늘 그렇듯 보드게임과 야근으로 이뤄졌다. 이제 급여를 입력하는 일이 남았다.
1월 20일 목요일
오늘은 아침에 로컬 순댓국을 먹고, (맛있었다!) 에코랜드로 향했다. 예전부터 꽤 유명했던 관광지였던 것 같은데,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 이상이었다. 사실 오래전에 만들어진 관광지이기도 하고, 지금 시즌이 겨울이라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었는데, 그럼에도 전반적인 경험은 훌륭했다. 재원이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기차 체험인데, 유럽 기차를 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고, 이동 거리도 상당했다. 각 스폿마다 충분한 시간을 누리고 싶었는데, 재원이는 빨리 기차 타러 가고 싶다고 해서 설득하느라 혼났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풍경도 인상 깊었다. 다만, 다른 계절에 왔다면 훨씬 더 예뻤을 것 같다. 겨울이라 동백꽃 숲이 예쁘긴 했지만, 수국이나 라벤더를 비롯한 다양한 꽃들은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중간에 산책길을 걸을 수도 있었고, 말먹이주기 체험도 있었다. 마지막 코스에선 따뜻한 물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족욕 체험'이 있었는데, 겨울에 누릴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던 체험이었다. 앞선 코스에서 산책을 꽤 했던 상황이라 발이 추웠는데, 따뜻한 물에 발을 녹이니 마음도 스르르 풀렸다. 일본 료칸도 생각나고,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재원이도 기차 타기와 말먹이주기, 그리고 족욕이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점심으로 교래에서 유명하다는 닭 칼국수를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제주도 여행에서 가장 기분 좋은 시간은 늦은 오후(4시 반쯤)인데, 그때 나와 아내는 잠깐 낮잠을 자고 재원이는 오디오 클립을 듣는 게 제주도에 온 뒤 우리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저녁에 계속 일을 하다 보니 낮에 쉽게 피곤해졌는데, 그나마 이 시간에 낮잠을 자면서 피로를 풀 수 있었고 재원이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일어난 후에는 평소와 같은 시간을 보냈다. 샤브샤브를 먹고, 할리갈리를 하고, 연돈 예약을 실패하는 그런 당연한 일상. (*당시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연돈은 누가 먹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