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1일~23일 (월정리 근처)
1월 21일 금요일
월정리에서 하나의 장면만 가져가라고 하면, 집에서 바라본 일출이 아닐까 싶다. 매일 보면서도 늘 감동받는, 제주도에서의 아침 일상이다. 원래 계획은 세화리에서 점심을 먹고, 섭지코지와 성읍 민속마을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자연경관을 좋아하는 건 가족 중에서 나밖에 없지만, 이왕 제주도에 왔는데 성산 일출봉은 꼭 봐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런데 문제는 날씨다. 바람도 많이 불고 생각보다 너무 추웠다. 점심을 먹고 날씨가 풀리면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는데,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전격적으로 집으로 복귀했다.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저녁에 월정리 해변으로 놀러 가기로 계획을 변경하고 낮잠을 잤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계획했던 멘도롱 돈까스가 문을 닫았기에, '봉자네 상점'으로 목적지를 변경했다. 마침 며칠 전에 우연히 근처를 지났던 가게였다. 등심 돈까스와 치즈 돈까스를 시켰는데, 매일 저녁마다 연돈 예약을 실패하고 있는 입장에서 큰 위로가 되는, 그런 맛이었다. 개인적으론 합정 크레이지 카츠를 돈까스 중에서 최고로 꼽는데, 거의 비슷한 수준의 촉촉함과 바삭한 맛이었다. 작은 가게 특유의 아득한 분위기 덕분에 더욱 기분 좋게 밥을 먹고, 월정리 해변을 산책하고 돌아왔다. 일찍 자야지, 내일은 재원이 생일이니까!
1월 22일 토요일
오늘은 재원이 생일이다. 간단히 미역국을 먹고, 집 앞 '세모'에서 주먹밥을 사서 스누피 가든으로 향했다. 무민랜드보다 낫다는 평가가 많아서, 나름 기대감이 높았는데 결과적으로 그 기대감을 충족시키고 남았다. 스누피를 잘 모르는 사람마저도, 가든에서 나올 때는 기념품 하나쯤 사서 나오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공간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스누피가든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디테일'이었는데, 가든 내 모든 안내판이나 작은 소품에서까지 '찰리 브라운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컨셉에 충실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화장실을 가더라도 일반적인 남녀가 아니라, 캐릭터로 표현한 거라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만나게 되는 스누피의 얼굴이 반가웠다. 기획한 분들이 정말 진심이었구나.라는 것이 느껴서 좋았던게 아닐까. 카페에서 스누피 그림을 그렸는데, 그 모든 시간들이 다 좋았다. 재원이도 많이 좋아해 주었고.
집에 돌아와서 늘 그렇듯 우리는 낮잠을 자고 일어났고, 재원이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녁으로는 생일을 맞아 재원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자로 했더니, 회를 먹고 싶다고 해서 근처 횟집으로 갔다. 우럭 튀김이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저녁에는 할리갈리를 하고 나는 오랜만에 영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를 보며 쉬었다.
1월 23일 일요일
비 오는 아침이다. 이제 여행 막바지에 접어드는 상황이라, 푹 쉬자는 생각뿐이었다. 오전에는 재원이는 공부하고 나는 일기를 썼다. 그리곤 할리갈리를 활용해서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냈는데, 이게 대박이었다. 기존 게임이 순발력을 요구한다면, 우리가 만든 게임은 기억력과 계산능력, 순발력을 모두 요구하는 게임이었다. 우리가 만들었지만, 스스로 뿌듯하고 감탄했다.
점심으로는 원래 떡하니에서 떡볶이를 먹으려고 했는데, 문을 닫아서 세모로 갔다. 어제 먹고 다시 먹지만 여전히 맛있었다. 오후에는 스르르 아이스크림을 먹고, 동부 보건소로 가서 검진을 받았다가, 나는 몸국이 먹고 싶어서 테이크 아웃했다. 정말 특별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다. 제주도에 잠깐 머물렀다면 이런 시간이 상당히 아쉽게 느껴졌을 것 같은데, 2주를 머물다 보니 되려 좋았다. 일상 같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