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에 한 강연에서 질문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나요?"라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물론 조직 변화에 대한 이론이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지만, 하나하나 다 말씀드리긴 쉽지 않았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문장은 "은 탄환은 없다"였다. 조직 변화를 다룰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이기도 해서, 글을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한다.
2. "은 탄환은 없다(No Silver Bullet)"는 프레드 브룩스가 1986년에 쓴 논문에서 유래된, 개발자들 사이의 격언이다. 은 탄환은 하나의 비유인데, 늑대인간을 한 번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만능 해결책을 의미한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요소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사용자, 법률, 장비, 문화적 배경 등) 그러한 복잡성을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고,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3. 개발자 관점에선, 하나의 툴이나 방법론을 도입하면 복잡한 상황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예전 개발자들과의 대화에서 '은 탄환' 비유를 들었을 때, 조직 또한 복잡하기로는 결코 뒤지지 않기 때문에 조직 개발을 표현하는 좋은 비유라고 생각했다. 복잡한 조직을 한 번에 변화시키는 '은 탄환'은 없기 때문이다.
4. 현실에서 조직 개발과 변화는 매우 어렵다. 해결책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거나, 혹은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로 치닫곤 한다. 예를 들어, "결국 CEO나 리더들이 문제야." "이미 만들어진 조직문화는 어쩔 수 없어." 등 문제에 대해서 파고들어 가다 보면 좌절하기 쉽다. 모든 걸 한 번에 바꿔줄 구원자를 찾아서 헤매지만, 그러한 구원자는 사실상 드물다. 막상 구원자가 등장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끝이 없다. 그가 만드는 해결책은 조만간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5. 이러한 고민을 하던 중, 생각의 물고를 트게 한 책이 있는데, 레베카 코스타의 책 <지금 경계선에서>다. 이 책은 문명이 흥하고 망하는 이유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문명이 흥할 때는 문제를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며 사회가 커지고 복잡성이 증가해 나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구성원들의 능력 이상으로 사회가 구조적으로 복잡해질 때가 위기다. 그때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지 못하고, 비합리적 믿음에 기댈 때, 해당 문명은 망하고 사라진다고 강조한다.
6. 문명의 존속을 위해 다양한 해법이 제시되지만, 그중에서 '병행적 점진주의'가 기억할 만하다. 병핵적 점진주의란, 작지만 유용한 다수의 완화책을 동시에 실행할 때 발생하는 누적효과가 완화책을 한 번에 하나씩 실행할 때의 효과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말한다. 즉, 너무 크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유용한 완화책을 동시에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7. 모든 조직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히 있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병행적 점진주의를 떠올린다. 즉, "해결책은 어차피 없다. 다만 우리가 조치할 수 있는 완화책이 있다. 어쩌면 다수의 완화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변화의 주체는 한 사람이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해볼 수 있다. 물론 그것으로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긴 쉽지 않겠지만, '작게나마 나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고, 그러한 완화책들이 쌓이면 어느새 변화한 조직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