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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를 소유하는 리더와 성장시키는 리더의 차이점

책 리뷰 <멀티플라이어>

by 강정욱


여러 조직을 거치며 한 가지 사실을 확인했다. ‘나’라는 사람은 동일하지만, 나의 '능력'은 어떤 조직 혹은 어떤 리더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떤 조직에서는 내가 더 똑똑해지고, 더 열심히 일하게 되지만, 어떤 조직에서는 점점 멍청해지고 의욕이 떨어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 차이가 바로 ‘리더십’의 정수가 아닐까.


한번 읽고 잊어버리는 책이 있고, 두고두고 꺼내 읽는 책이 있다. 고맙게도 <멀티플라이어>는 후자다. 트레바리 <탁월함의 조건> 마지막 책으로 선정되어 오랜만에 다시 읽었는데, 13년 전에 처음 읽었을 때도, 최근 읽었을 때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저자는 두 가지 리더십 유형을 제시하며, “어떻게 사람들의 역량을 이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나는 어떤 리더일까? 지금부터 5가지 질문으로 점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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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재를 소유하는가, 성장시키는가?

혹시 강력한 비전에 이끌려 입사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에너지가 고갈되고 효능감이 낮아진 경험이 있는가? 디미니셔의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대담한 비전 제시’다. 그들은 책임질 수 없는 말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리더보다 훨씬 담대하고 매력적인 미래를 그린다. 보통의 사람들은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고 그 말에 책임을 지지만, 디미니셔는 그저 순수한 ‘말’로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그 매력적인 비전 덕분에 탁월한 인재들이 모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역량은 100% 발휘되지 않는다. 디미니셔는 인재를 ‘소유’하려 하고, 그들을 통해 본인 생각을 관철시키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주요 구성원과 1:1로 소통하며, 불투명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눈치 싸움을 부추긴다.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기계를 돌리는 것이 내 일이었다. 그는 내 능력의 50%밖에 끌어내지 못했다. 나는 앞으로도 결코 그와 함께 일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멀티플라이어는 인재를 끌어당기고, 그 능력을 최대치로 활용한다. 피터 드러커가 말했듯, 지금의 조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은 ‘지식노동자’이며, 리더의 역할은 그들의 역량을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멀티플라이어는 구성원의 강점을 파악하고 다양성을 살리며, 성장을 위한 공간과 자원을 제공한다. 그 결과, 조직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조직’이라는 평판을 얻게 된다. 설사 몇 명이 이탈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새로운 인재를 다시 끌어당기는 선순환이 생겼기 때문이다.



2. 조직 분위기를 긴장시키는가, 고조시키는가?

혹시 공격적인 태도와 무례한 말투로 조직을 긴장시키는 리더를 본 적 있는가?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자기 뜻에 어긋나는 사람은 가차 없이 내치고, 회의 중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일명 ‘잡스병’이라는 말로 그런 독선을 미화하기도 했지만, 그가 위대한 혁신가였다고 해서, 그의 무례함이 정당화될 순 없다. 디미니셔는 신경질적이고, 사람들을 쉽게 비판하며, 다음 행동을 예측하기 어렵다. 그 옆의 구성원들은 몸을 사리고, 안전한 아이디어만 내놓게 된다. 그들은 “솔직한 의견을 말하라”라고 하지만, 정작 그런 의견이 나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지는 않는다. 나 또한 솔직한 의견을 내는 걸 주저하지 않는 스타일임에도, 직언을 위해선 용기를 내야 했다.


“어느 디미니셔는 결단을 내리지 않고 진을 빼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그는 ‘손은 여러 개지만 머리는 하나’라는 원칙을 고수했다. 사람들의 지성과 재능은 막히고, 조직은 점점 ‘죽어가는’ 곳이 된다.”


멀티플라이어는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기보다 먼저 듣는다. 필요할 때만 말하고, 심리적으로 안전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러면서도 ‘최선을 다한다’는 기준은 쉽게 양보하지 않는다. 즉, ‘심리적 안전함과 탁월함’의 균형을 유지하며 사람들의 전력을 이끌어낸다. 그 결과, 구성원들은 불필요한 긴장이 아니라 도전 의식을 느끼며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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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시하는가, 독려하는가?

회의 중 발언할 틈이 없이 리더의 말만 들은 경험이 있는가? 내가 경험한 많은 디미니셔는 ‘엄청난 달변가’다. 실제로 회의 시간 내내 화이트보드를 가득 채우며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지 증명하는 리더를 본 적 있다. 숨이 턱턱 막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흡입력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그저 본인 생각을 설득하기 위해서 애쓴다는 것이다.


“그가 답을 모르는 질문을 하는 걸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반면 멀티플라이어는 “내가 모든 답을 알아야 한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답 대신 질문을 던지며, 건설적 긴장을 만든다. 종종 “우리 고객은 누구인가?”, “우리는 왜 이 사업을 하는가?” 같은 본질적 질문을 던지며 구성원들의 몰입을 이끈다. 최대한 계획을 함께 세우고자 노력하며, 작은 성공을 쌓아간다.



4. 소수와 결정하는가, 다수를 토론에 참여시키는가?

혹시 불투명한 의사결정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디미니셔는 대체로 혼자, 혹은 소수 측근과만 논의 후 결정을 내린다. 그들은 구성원의 지식과 노하우를 이용하지 않고, 본인 의견에 동의하는 집단을 선호하며, 그런 사람들만 곁에 둔다. 종종 회의가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면 엉뚱한 논점으로 옮겨질 때가 많았고, 아이디어 역시 새로운 방식보다는 과거 성공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말로는 열린 조직을 지향하지만, 실제 결정은 문을 닫고 이뤄졌다. 결국, 구성원들은 '어차피 정해진 결론인데, 괜히 힘 빼지 말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그가 모든 일에 답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사람들에게 ‘팔고’ 실행에 옮기게 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멀티플라이어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에 집중한다. 토론과 대화를 통해 의견을 확장하고, 맥락을 충분히 공유한다.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결과는 철저히 요구하며, 결정의 이유에 대해선 충분히 소통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구성원들은 맥락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결속력 있게 업무를 진행한다.



5. 세세하게 간섭하는가, 책임감을 심어주는가?

작은 일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마이크로 매니저를 본 적이 있는가? 디미니셔는 흔히 “내가 없으면 안 된다”라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업무를 위임하기보다, 단편적인 테스크만 맡기고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싶으면 즉시 개입한다. 결국 구성원은 자존감이 낮아지고, 리더에게 의존하게 되는데, 이러한 악순환은 디미니셔의 예언처럼, 정말로 “그가 없으면 일이 안 되는 조직”을 만든다. 운이 좋게 성공을 하더라도, 그것은 디미니셔의 업적이 되어버린다.


멀티플라이어는 구성원들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실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다. 필요할 때 도움과 조언은 주되, 책임은 다시 구성원에게 되돌린다. 시간이 지나면 리더의 개입 없이도 스스로 성과를 내는 조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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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라이어와 디미니셔는 스펙트럼으로 이해해야 한다.


지금까지 멀티플라이어의 다섯 가지 특징을 살펴봤다. 하지만 “나는 멀티플라이어인가, 디미니셔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은 잘못되었다. 서로 상반된 ‘유형’이 아니라, 넓은 스펙트럼으로 이해해야 한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멀티플라이어이면서, 동시에 디미니셔다. 물론, 강력한 디미니셔는 나르시시스트나 소시오패스적 성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선한 의도를 가졌음에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의 경영 환경에서는 ‘지시하고 복종하는 리더십’이 오랫동안 성공의 공식처럼 여겨졌다. 리더의 자리로 올라갈수록 성과 압박은 커지고, 공감 능력은 낮아진다. 디미니셔의 밑바탕에는 “내가 없으면 사람들은 해내지 못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결과만 생각하며 무심코 내뱉은 말과 행동들이, 의도치 않게 디미니셔적 리더십을 강화한다.


이 책이 주는 시사점은 여기에 있다. 지금의 내 모습을 ‘자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사각지대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의 무의식적 행동을 인식할수록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다. 더 쉽고 편한 길이 아니라, 더 어렵지만 더 나은 길을 가고자 노력하는 모든 리더들의 건승을 빌며, 책 <멀티플라이어>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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