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T로는 얻을 수 없는 지혜를 얻는 방법
지난 4개월간 트레바리 <탁월함의 조건> 1기를 운영했다. 강의나 코칭이 아닌, 북클럽만이 줄 수 있는 묘한 분위기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기억나는 몇 개의 문장으로 회고해 본다.
트레바리엔 강력한 룰이 있는데, 반드시 모임 2일 전까지 '독후감'을 제출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기에, 화요일만 되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다들 잘 읽고 제출하실 수 있을까?" 라는 남모를 걱정.
자정이 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하나씩 올라오는 독후감을 읽으며, "그래도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때로는 이렇게 독려를 하기도 했다.
"잘 쓴 독후감과 못쓴 독후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쓴 독후감과 안 쓴 독후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퀄리티는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일단 써봅시다."
수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일단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 독후감을 써주신 모든 참가자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모집이 잘 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운이 좋게 20명 모두 마감되었다. 하지만 걱정도 컸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북클럽 이미지는 소수의 사람들과 깊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일 텐데 "과연 가능할까?"라는. 아무래도 한명씩 돌아가며 발언해도 시간이 모자라고, 제대로 된 토론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난관이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3명씩 작은 팀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또 나도 몇 가지 짧은 강의를 준비해서 몇 가지 맥락을 만들어주고 소규모 대화를 통해 깊이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여전히 첫 모임이 아쉽긴 했지만, 회차가 지나며 이 방식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나갔다. 돌아보면 제약이 있었기에 오히려 더 새로운 운영 방식을 찾게 된 것 같다.
2번째 모임부턴 자연스럽게 12-14명 정도의 인원이 모였다. 바빠서 못 오는 분들이 있다 보니 조금씩 참가자가 달라졌는데, 대화하기에는 한결 좋은 규모였다. 이때 강조했던 룰은 다음과 같다.
"가능하면, 이전에 이야기 나눴던 사람을 피해서 앉아주세요"
이왕 어렵게 시간을 냈는데, 되도록 다양한 분들과 대화를 나눴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지금 돌아봐도 효과적인 룰이었다. 조직의 대표, HR 매니저, 1인 기업가, 회사원 등 다양한 역할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같은 책도 다른 관점으로 읽힐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토론 과정에서도 생각의 차이가 느껴져서 좋았는데, 치열한 토론을 통해 처음 가진 생각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같은 생각 하는 사람보다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트레바리 포스터 문구가 딱 어울리는 경험이었다.
클럽장이 있는 클럽이다 보니, 첫 모임은 부담스러웠다. "나에게 뭔가 기대가 있을 텐데, 그걸 충족하기 위해서 뭘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컸다. 물론, 최소한의 준비는 필요했다. 예를 들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미리 고민하고, 그라운드 룰을 만드는 일처럼. 하지만, 회차가 거듭되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지금 겪는 문제나 관심있는 주제는 다르기에, 서로 다른 것들이 보일 것이다. 모두 같은 것을 얻어갈 수는 없다. 저마다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얻어갈 것들'을 얻어갈 것이다. 나는 답을 찾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기회의 공간을 여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내가 과도하게 애쓰지 않아도, 함께 만든 공간 자체가 답이 될 수 있다는 것. 강의 형태가 아닌 북클럽이어서 가능한 깨달음이었다.
<탁월함의 조건>에서 내가 의도한 것은 '참가자들의 변화'였다. 좋은 책을 읽고 다양한 관점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각자 실천을 통해 변화를 경험한다면 훨씬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타협하지 않고, 일단 참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탁월함은 결국 어려운 일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그리고 놀랍게도, 4번의 모임에 모두 참여해 주신 분들이 꽤 있었다. 요즘 같은 사회에서 전체 출석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심지어 다른 클럽에서는 한번도 전출한 적 없다고 말한 분도 계셨다. 클럽장으로서 어쩌면 높은 기대를 한 셈인데, 그 취지에 공감해주시고 함께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참가자들의 최종 리뷰를 짧게 정리해 본다. 많은 분들이 “덕분에 좋은 책들을 읽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우린 바쁘다는 이유로 쉽게 독서를 미루지만, 이런 시스템은 분면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많은 분들이 ‘지식’보다 ‘경험’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특히 서로의 삶에서 나온 사례와 고민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사고의 확장”이라는 표현도 있었고, “GPT로는 얻을 수 없는 지혜를 얻었어요.”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북클럽을 계기로 사내에서 독서 모임을 여럿 열었다는 분도 계셨다. 참가하신 분들의 삶에서 조금이나마 변화가 있었다고 하니 뿌듯한 마음이었다.
이렇게 트레바리 <탁월함의 조건> 1기를 마무리한다. 12월은 한번 건너뛰고, 다음 북클럽은 1월에 다시 시작한다. 또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들고 찾아올지 벌써 기대된다. 11월 30일에 오픈한다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페이지에서 미리 확인해주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