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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욱 Feb 12. 2018

그릿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책 <Girt> 두 번째 리뷰

책 <Grit> 첫 번째 리뷰에서 이어지는 글이다. 지난번 글이 ‘Grit’의 중요성과 정의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Grit’을 기르는 방법론을 소개한다. '어떻게 그릿을 기를 수 있는지' 궁금한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결론부터 말해, 그릿을 키우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관심과 일치하는 일을 하는 것. 어제보다 더 잘하려고 연습하는 것, 타인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 고통을 성장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응? 이게 무슨 소리일까?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함께 나아가보자. 그리 어렵지 않다. :)   




첫째. 관심과 일치하는 일을 하라.  


사람들은 개인적 관심과 일치하는 일을 할 때 훨씬 만족감을 느낀다. 그뿐만 아니라 실적이 좋고,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며, 한 직장에 더 오래 다닌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심사를 발견할 수 있을까? 관심사는 자기 성찰을 통해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계기로 흥미가 만들어진다. 단, 이때에는 자율성이 중요하다. 고압적인 부모가 교사가 내적 동기를 파괴하는 경우가 많다. 관심사를 발견한 뒤에도 오랜 시간 주도적으로 관심을 발전시켜야 한다. 


열정은 계시처럼 오지 않는다.


'열정은 계시처럼 오지 않는다’는 말에서, 심히 끄덕끄덕거렸다. 나 역시 ‘자기 성찰’을 부단히 강조하는 사람 중에 하나지만, 막상 나의 것도 성찰로 발견하지 않았다. 성찰의 필요성은 ‘사후’다. 걷고 난 뒤에 맞는지 아닌지 돌아보는 것에 가깝다. 일단 길을 가보지 않으면, 확인할 방법도 없다. 그래서 부단히 경험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삶을 후회하는 것보다, 실패로 가득 찬 삶을 후회하는 편이 낫다. 


한 마디로, 덕업일치다.


둘째.  질적으로 다른 연습을 하라. 


전문가들은 더 ‘오래’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피드백에 수용적인 자세다. 그들은 잘한 부분보다 고쳐나가야 할 틀린 부분에 더 관심이 많다. 그들은 나날이 발전하기 위해서 코치를 두고, 기록을 측정하고, 반복한다. 즉, 의식적으로 연습한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의식적인 연습은 행동이지만, 몰입은 경험이다.


연습은 언제 멈출까? 보통은 자신의 체력이 다할 때까지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처음 설정했던 목표를 완전히 달성할 때까지, 신경 쓰인 기술 부족이 무의식적인 자신감으로 바뀔 때까지 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고통받을까, 아니면 몰입을 통한 황홀경을 느낄까? 꽤 어려운 질문인데, 답은 간단했다. 의식적인 연습은 행동이지만, 몰입은 경험이라는 것. 다시 말해서 의식적인 연습이 꼭 몰입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지만, 확률은 높아진다. 마라톤이 좋은 예가 아닐까. 고통 속에 종종 활홀경을 경험하게 되는 과정 말이다. 마지막으로, 의식적인 연습과 관련해선 대니얼 코일의 책 <탤런트 코드>가 꽤 훌륭하다.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똑같은 노력이 아니라는 사실!


셋째. 타인의 행복에 기여하라. 


목적이란, 타인의 행복에 기여하려는 의도를 말한다. 실제로 그릿이 높은 사람들은 의미 있고 타인 중심적인 삶을 추구하는 동기가 다른 이들보다 대단히 강하다. 이와 관련해선 애덤 그랜트의 <기브 앤 테이크>가 필독서라 불릴 만하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개인적 흥미와 친사회적 관심 둘 다 지닌 지도자나 직장인들이 자기중심적 동기만 가진 이들보다 장기적 실적이 좋았다.  


그렇다면, 목적의식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지금 하는 일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자주 성찰하고,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라. 그리고 생각해보라. 당신에게는 분명 롤모델이 있을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자극을 줬던 사람들. 당신의 롤 모델을 떠올려 보고 왜 자극을 받았는지 생각해보라. 만약 없다면 한번 찾아보라. 나의 경우에는 '파커 파머'와 '구본형’ 선생님 같은 분들이 롤 모델이다. 그분들의 공통점으로는 성찰을 통한 '깊은 인생'을 추구했고,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나 역시 그러한 활동을 할 때, 쉽게 지치지 않는다. 더 잘하고 싶다. 이렇듯, 각자의 롤모델을 찾고, 뒤따라 가보자.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내 마음 속 스승,  <가르칠 수 있는 용기>의 파커 J. 파머


넷째, 고통을 성장의 기회로 삼아라.  


언제든 다시 일어나기 위해선, 희망이 필요하다. 그릿이 뛰어난 사람은 낙관론자다. 이들은 자신의 고통에 대한 일시적이고 구체적인 이유를 찾는다. "내가 시간관리에 실패했어, 주의가 산만해서 효율적으로 일하지 못했어." 하지만, 비관론자는 영구적이고 전반적인 원인을 탓한다. "나는 모든 것을 망쳤어. 나는 실패자야!" 동일한 사건임에도 해석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행동도 바뀐다. 


무력감을 낳는 요인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다. 


당신이 어릴 적 무언가를 잘 했을 때,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가? 재능에 대한 칭찬인가 아니면 노력인가? 한 가지 실험이 있다. 쥐들에게 (통제 불가능한) 전기 충격을 주면 금방 겁을 먹는다. 하지만, 다른 무리에겐 전기 충격을 주되, 통제할 수 있도록 한다. 그들은 어떻게 될까? 전기 충격을 주지 않은 평범한 무리보다 모험감이 더 강한 쥐로 성장한다. 즉, 어린 쥐에게 닥친 죽지 않을 만큼의 시련은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을 때' 성장이 된다. 그릿도 근육과 같다. 통제 능력을 조금씩 높여가면서 함께 커진다. 


강의할 때 내가 자주 사용하는 예시가 있는데, 위와 비슷하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미분에서 이런 유형의 문제가 싫어요." 중간으로 갈수록 범위가 넓어진다. "나는 미분이 싫어요. 혹은 수학이 싫어요." 그렇다면 공부를 못하는 친구는? "나는 그냥 공부가 싫어요." (ㅎㅎ) 사실, 공부가 처음부터 싫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문제 혹은 과목이 괴롭혔을 것이다. 그때 필요한 것이 ‘분별'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해야 한다. 아주 쉽고 작은 것부터 하나씩 정복해야 한다. 그래야 자기 통제감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압도당하면 안 된다. 하나가 무너져도, 다른 하나를 붙들고 서야 한다. 자신 안에 다양한 무게 중심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성장형 사고방식'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고, 낙관론자가 될 수 있는 비결이다. 




여기까지, 그릿을 키우는 4가지 방법이다. 한번 더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관심과 일치하는 일을 하라.  

둘째. 질적으로 다른 연습을 하라. 

셋째. 타인의 행복에 기여하라. 

넷째. 고통을 성장의 기회로 삼아라. 


글을 맺으며 한 가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한다. 바로, 이 글을 읽는 것과 그릿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글을 읽으며 한두 번 끄덕거린 것으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실천만이 유일한 실재다.


이 글을 읽는 것과 당신의 그릿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위의 4가지 키워드 중에서 하나라도 진득하게 실천하는 것. 그것만이 그릿을 기르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미친개처럼 달라붙어서 물고 빨기를. 건투를 빈다. 



전문가들은 도전적 목표를 설정한 뒤에는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온전히 집중하고 비상한 노력을 기울인다. 흥미롭게도 많은 이들이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연습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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