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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욱 Apr 16. 2018

아이폰X를 공짜로 얻는 법

사람을 낚는 6가지 방법

제목이 이끌려 나도 모르게 이 글을 보게 되었다면 여러분도 [잠재적 피싱 피해자] 일 수 있다. 최근에 내가 그랬다. 피해를 당하진 않았지만 거의 낚일 뻔 했고, 그 과정이 참으로 기이하여 전체 과정을 공유하고자 한다. 처음에는 그저 ‘운이 없네’라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UX(사용자 경험)를 이토록 고려한 피싱이라니. 피싱을 하더라도 이 정도로 똑똑해야 겠구나. 또한 "나는 과연 사기치는 사람만큼 연구하고 고민하는가?" 라는 자괴감도 들었다.  


리처드 탈러, 캐스 선스타인의 책 <넛지>와 함께 복기해 보자. 참고로 넛지란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여기에서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뜻한다.





사람을 낚는 6가지 방법


1. 깜짝 놀라게 하라. (인지적 착각)


인터넷 서핑을 하던 어느 날, 깜짝 놀라는 문구를 보게 되었다. 마치 예고된 우연처럼.


귀하는 다음에 대해 오늘 행운의 방문객 입니다. 이 짧은 설문 조사를 완료하고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면, 저희는 Apple iPhone에 당첨될 기회를 귀하에게 제공할 것입니다!


참고로 당시 개인적 상황을 말하자면, 아내가 아이폰 X로 바꾼지 며칠 되지 않았다. '나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라, 더더욱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이런 행운이 있다니?" 이처럼 우연적 ‘피싱’이 성공을 거두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간이 가진 [인지적 착각]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을 평균 이상이라 생각한다. 평균 이상으로 뛰어나고, 남들보다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카지노나 복권 사업이 성공을 거두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착각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손목을 붙들렸다.  



사람은 우연을 좋아한다. 왜? 자신은 운이 좋을 거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2. 익숙하게 하라. (행동하는 자아 VS 계획하는 자아)


아이폰을 공짜로 주다니, 누구나 의심 할 만하다. 그런데 이 피싱 제작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신뢰할 만한 키워드를 요소에 배치한다. 바로 [크롬 Chorme]이다.


친애하는 Chorme 사용자님께.


한번쯤은 누구나 서비스를 사용하던 중에 리뷰 요청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크롬 이용자에게 크롬에 대한 리뷰를 남겨달라는 요청, 게다가 번역체. 얼마나 익숙한 경험인가? 그래서 나도 모르게 OK를 누를 수 밖에 없었다.  책 <넛지>에 따르면, 인간은 계획하는 자아와 행동하는 자아로 구성된다. 계획하는 자아는 의심하고, 숙고하지만, 행동하는 자아는 익숙한대로 행동한다. 의심을 막기 위해선, 익숙하게 만들어라. 이제, 슬슬 입구로 향한다.



게다가 저 OK 버튼은 누르기 쉽다. 엄청나게 크게 만들어 놨다. 제길.



3. 일단 참여하게 하라. (단순 측정 효과)


그 다음 순서는 '작은 액션을 취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게 뭐든 일단 참여시켜라. 내가 받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이 브라우저를 얼마나 자주 사용하십니까? 항상 / 때때로 / 절대 아님


얼마나 간단한 질문인가? 나도 모르게 버튼을 누른다. 절대 '계획하는 자아'가 등장하게 해서는 안 된다. 어려운 질문을 하지 마라. 단순히 버튼을 누르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실제로, 구매의사를 묻는 것만으로도 구매율을 35% 올릴 수 있다고 하는데 이를 [단순 측정 효과]라고 한다. 사람들의 의도를 측정하는 동안에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의도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의 답변에 행동을 일치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국 각지에서 4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표본으로 선정하여 조사를 실시한 결과, “향후 6개월 안에 새차를 구매할 의사가 있습니까?”라는 간단한 질문만으로도 구매율을 35%나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놀랍다.

   


그건 그렇고, 당신은 이 글에 라이킷을 할 의향이 있습니까? :)



4. 바로 피드백하라  (즉각적 피드백)

    

별 생각할 필요도 없이 설문에 답하자, 다음 페이지가 등장했다. 언제나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추첨 시간!


설문 조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답변을 제출 중 ...


이 피싱 제작자들은 정말 머리가 좋다. 조급하지 않다. 뜸을 들일 줄 안다. 피싱 주제에 추첨을 하게 하다니. 다시 한번 '인지적 착각' (= 나는 평균 이상으로 운이 좋다)을 복습시킨다.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다. 애초부터 떨어질 일 없는 피싱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살짝 두근거렸기 때문이다. "내가 과연 행운의 아이폰X에 당첨될 수 있을까?" 이런 나를 보면서 얼마나 웃겼을까.    


입력에 대한 [피드백]은 중요하다. 그것은 즉각적이어야 한다. 나는 설문을 입력했고, 그에 따른 피드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아주 효과적이다. 넛지도 마찬가지다. 입력을 했다면, 피드백이 주어져야 한다. 즉각적이고 시각적이어야 한다. 이제, 빨려 들어간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뚜둥!





5. 사람들의 리뷰를 보여줘라. (집단 동조)


역시 나는 운이 좋다! 남은 수량 딱 하나라니! 게다가 오늘 한정 할인가 1$ 아래에는 나처럼 행운을 만끽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도 나처럼 행복하겠지.


행복 / 당첨되서 너무 좋아요! / 오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다시 한번 할 수 있나요? 등등


이제 피싱은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갑자기 페이스북이 뜰 리가 없잖은가? 그런데 홀린 듯 무언가를 입력하고, 기다린 사람은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드디어 통과했어! 게다가 남은 수령은 1개! 헉, 시간이 없어! 게다가 오늘만이라니! 역시 나는 특별해! 시간도 없고, 의심할 필요도 없다. 모든 사람이 아이폰을 탔고, 나도 기회를 얻었다. 그냥 누르는거다! [여기 클릭]도 아주 누르기 쉽다!


인간들은 다른 인간들에 의해 넛지를 당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말하는 광경을 타인이 보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경우에 동조하는 경향이 더 높아진다는 얘기다. 심지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혹은 확신하는 경우에도 집단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에서, 만장일치로 의견이 수렴되는 집단은 가장 강력한 넛지를 가할 수 있는 셈이다.
선택 설계자들은 행동 변화를 원할 경우 그리고 넛지를 사용해서 이를 실현하고 싶을 경우, 그저 사람들에게 다른 이들이 행하고 있는 바를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할 경우, 혼자 먹을 때보다 약 35%를 더 먹는다. 네 명이 함께 식사할 경우에는 75%를 더 먹으며, 일곱명 이상이 함께 식사할 때에는 96%를 더 먹는다.


    

6.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마라. (손실 기피)


이제 다 끝났다. 마지막 화면이다.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을 입력하면 아이폰이 내 손에!



과연 들어올 수 있었을까? (ㅎㅎㅎ) 피싱을 이토록 열심히 설계한 분들께는 안타깝지만, 나는 여기서 빠져나왔다. 왜? 이유도 단순하다. 입력할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겐 [손실 기피 현상]이 있다. 지금까지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많은 이득을 보고자 했지만, 주소와 전화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단계까지 오자 잠든 이성이 눈을 떴다.


계획적 자아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멈춰서 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앞서 페북 화면부터 첫 화면까지 모든게 이상하게 느껴졌고, 피싱임을 알아챘다. 사실 운이 좋았다. 만약, 입력하는 칸이 아주 간단하게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마무리 되었다면 무의식적으로 입력했을 가능성도 높다. 아슬아슬했다.


손실 기피 현상. 사람들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때, 동일한 것을 얻었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두 배로 큰 상실감을 느끼고, 주의력 결여 때문에 대부분 현상을 유지하려는 편향을 가진다. 아무렴 어때.

이 두 가지 효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은 ‘어떤 선택안이 디폴트 옵션으로 지정될 경우'에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는 강력한 넛지의 역할을 한다.  

  



나의 경험은 여기서 끝났다.


그저 운이 없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뜯어보니 배울 점이 많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마침 읽고 있던 책 <넛지>를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넛지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진 '남자 소변기의 파리'처럼,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비교적 유연하며 비강제적인 유형의 개입주의라고 할 수 있다. 선택을 막거나 차단하지 않으며 선택하는 자에게 심각한 부담도 지우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피싱'은 나쁜 의도를 가진 '넛지'라고도 볼 수 있겠다.


넛지는 선택 설계자가 취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넛지 형태의 간섭은 쉽게 피할 수 있는 동시에 그렇게 하는데 비용도 적게 들어야 한다. 넛지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다. 과일을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놓는 것은 넛지다. 그러나 정크푸드를 금지하는 것은 넛지가 아니다.


최근에 나역시 넛지를 활용한 경험이 있다. 회사 내 리더들의 피드백을 강화시킬 요량으로, '이름을 기입하고 서면 피드백 칸을 별도로 배치하는' 등의 간단한 넛지를 만들었다. 효과는 꽤 괜찮았다. 아무리 피드백을 하라고 외치는 교육보다, 그런 식의 '옆에서 슬쩍 찌르기'가 훨씬 더 효과적임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일상에서 '넛지'를 파악하고 또 활용해 보길 권한다. 당했다면 왜 당했는지, 가했다면 어떻게 했는지 말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결국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고 살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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