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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욱 Jan 10. 2019

적게 일하고 많이 벌기

생산성 Productivity

일과 삶의 균형과 압도적 생산성


최근,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과거에는 ‘부자 되세요’가 덕담이었다면, 지금은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라고 말해야 한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 것은 시대적 배경이 크다. 과거 고도성장 시기에는 군대식 복종 문화가 만연했지만, 깔 땐 까더라도 내가 얻는 몫만큼은 분명했다. 지금은 어떨까? 단연코 No다. 기대는 무너졌다. 회사가 내 삶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적당히 일하고, 저녁과 주말이 되면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다. 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져 고통받는 엄마, 아빠, 선배들의 사례를 보며,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고 각오를 다진 사람들이다. 나 또한 공학이라는 전공을 포기한 이유는 나이 40이 되었을 때 치킨집을 하고 싶지 않다는, 내 삶을 찾고 싶다는 무의식적 반항이자 몸부림이었다.


균형의 회복,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 시점에 역설적으로 먼저 떠올려야 할 키워드가 있다. 바로 생산성이다. 이에 대한 고민 없이, 균형만 외치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부딪친다. 구조를 탓하지 않고, 개인의 잘못만 되돌아보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환경만 탓하는 것도 매한가지다.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의 노동 생산성이 바뀌지 않는 이상, 모두가 웃는 상황이 올 수 있을까? 그런 기적은 없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기 위해선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균형이 중요해질수록, 생산성은 더욱 부각될 것이다. 이제 그 재미없고 두꺼운 단어를 한 꺼풀 벗겨보자.


중요한 것은 야근을 줄이는 일도 야근수당을 줄이는 일도 아닙니다. ‘일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며 그 결과로 야근 시간보다 노동시간 자체를 줄이는 것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야근을 줄이는 것만 생각하는 기업과 생산성을 높이려고 지속적인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기업은 장기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목표치가 전혀 다릅니다. 이처럼 회의든 야근이든 양을 조절하기보다는 질을 얼마나 높이는가가 중요합니다. (생산성, 이가 야스요)



물 뜨러 가기 VS 우물 설치하기


어느 나라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5km 넘게 떨어진 곳에 강이 있었고,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물을 길어와야 했다. 크고 작은 그릇과 물통을 들고, 키 작은 꼬마부터 힘센 젊은이까지 모두 하나가 되어 땀 흘리며 물을 퍼 날랐다. 그들의 하루는 성실했고, 단순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옆 마을에서 온 사람이 마을 사람들에게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한다.


“여러분, 제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우물이라는 것이 있어요. 여기도 땅을 깊이 파면 분명 콸콸 샘솟는 우물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다들 그렇게 힘들게 물 뜨러 가지 마시고, 우물을 만드는 것이 어때요? 다만, 우물을 파는 동안은 물이 부족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논의를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촌장이 말한다. “이보쇼, 우리는 우물을 파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놀란 옆 마을 사람이 다시 묻는다. “아니, 왜요? 왜 그렇게 결정되었습니까?” 촌장이 대답했다.


"우리 지금 물 뜨러 가야 돼요!"


예전 직장 상사에게 들은 우화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각자의 직장과 일이 떠올랐다면 당신도 ‘생산성’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생산성과 관련 있을까? 없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생산성의 주요 변수가 아니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 잠시 멈춰 서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사람이 ‘생산적인 사람’이다. 생산성은 움직임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생산성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


이번에는 우화가 아니라, 실화다. 아는 지인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다녀왔는데, 꽤 인상 깊었던 만남이 있었다고 한다. 젊은 기업가를 만났는데, 그는 혼자 기획하고 디자인해서 앱을 만든다. 1-2년에 걸쳐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사용자를 늘려서 기업에 되파는 방식인데, 그런 식으로 벌써 몇 년째 일하고 있다. UX 디자인이 꽤 훌륭해서, 전공이냐고 물었더니 3개월 정도 학원을 다닌 것이 전부다. 애플 같은 기업도 들어갈 수 있지만, 굳이 뭣하러 그렇게 답답하게 사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 젊은 친구의 생산성은 어떨까? 그는 과연 몇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 하는 걸까? 일과 삶의 균형은 어떻게 될까? 그가 만들어 내는 우물과 내가 들고 있는 물통을 내려다봤다. 만감이 교차하는 이야기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지식 사회, 생산성 ‘빈익빈 부익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 다양한 툴, 최적화된 교육은 쏟아지고 있다.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뺏긴다는 지고의 법칙은 여기서도 아무렇지 않게 작동하고 있었다. 이제, 생산성은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급히 물을 뜨러 가기 전에, 잠시 멈추자. 우물을 파지 않으면, 당신은 영원히 바빠야 한다. 앞으로 80세까지 일해야 하는 저성장의 시대, 압도적 생산성만이 일과 삶의 균형을 담보한다. 보다 오랫동안,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생산성 향상’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PS: 제 브런치 글을 일부 수정하여 업로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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