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_엄마의 싸리 빗자루 두 개

소설_규암: 기억을 엿보는 바위 이야기

by 설기

6. 엄마의 싸리 빗자루 두 개


1979년, 4학년이 되자 드디어 특별활동이 시작됐다. 교과 수업 말고 운동이나 원예, 미술, 합창, 무용 등 일주일에 한 번씩 교실을 옮겨서 수업을 받는 일,


특활이었다.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준비물에 들어갈 돈 때문이었다. 작년 이 집으로 이사온 후 우리 집엔 새로 산게 거의 없었다.


김치와 물만 들어간 김치찌개 하나로 긴 겨울을 난 직후였다.


합창 반은 노래에 자신이 있었지만 합창 복을 맞춰야 해서 일찌감치 제쳐뒀다.

무용은 무용복을 공연 때마다 맞춰야 하니 합창반보다 윗길이었다.


운동 반은 아예 소질이 없고, 원예 반은 남자 애들이 많아서 패스. 남는 건 문예반과 가사 반 정도였다.


문예반 생각을 했지만 독후감을 쓰느라 책을 자주 사야 한다니 그 역시 마음에 걸렸다. 결국 나는 짝꿍 재숙이와 가사 반에 드는 걸로 결정했다.


바늘과 실, 천만 있으면 살 게 별로 없다고 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아이들이 모두 가사 반을 적어내는 바람에 가사 반은 때 아닌 히트를 쳤다. 어차피 하나는 들어야 하니 다른 선택은 없었다.


바람이 빠지기 시작한 타이어처럼 하굣길부터 서서히 기가 죽었다.





저녁을 먹으며 엄마에게 가사 반에 들었으니 내일 바늘과 자투리 천을 가져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아직 야무지게 이불도 못 개는 내가 가사 반에 들었다니 엄마는 놀란 듯 했다.

“합창반도 있잖아?”

“거기는 옷을 맞추어야 해.”

“그래. 착하네.”


그날 밤 잠결에 설핏 엄마와 아빠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의 낮은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얕은 한숨이 섞인 엄마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그래도 뭘 사가야지. 그냥 갈 수는 없잖어."

"빗자루가 제일 싸긴 해요."


"……."


“두 개까진 될 것 같은데.

근데 두 개 갖고 창피해서 어떻게 간대요.”




다음날이 되었다.

특활을 앞둔 마지막 5교시 수업 시간. 점심을 먹은 아이들은 대놓고 졸기 시작했다. 교과서 내용만 칠판 가득 적어놓는 담임은 늘 등만 보였다.


드르륵 소리가 나며 교실 앞문이 반쯤 열렸다. 수업 중에 교실 문을, 그것도 앞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교장 선생님 밖에 없었다.


반만 열리는 걸 보니 교장 선생님은 아니었지만 졸음에 겹던 아이들 눈이 단박에 쏠렸다.

한창 판서 중인 담임은 살짝 신경질이 났던지 반 박자 쉬고 문 쪽을 쳐다보았다.

분필을 잡은 손 그대로 문으로 다가가 나머지 문을 홱 열었다.


창문 틈으로 내다보니 싸리 빗자루 두 개를 가슴에 꼭 안은 웬 아줌마가 보였다. 술이 두둑한 싸리 빗자루 두 개에 가려 얼굴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엄마였다.



X자로 엇갈린 빗자루 사이로 담임에게 얼굴을 내밀고 공손하게 이야기하는 걸 보니 더럭 겁이 났다.


사고를 친 것도 없는데 엄마는 왜 부탁을 하는 것일까. 나는 나갈 생각도 못하고 창문 틈에 얼굴을 반만 걸치고 내다보았다.

엄마에게 빗자루 두 개를 받아 든 담임이 교실로 돌아오더니 내게 저벅저벅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너 가사 반 말고 문예반으로 가라. 원고지는 나한테 얻어가고.”

그제야 고개를 든 나는 빈 창가를 쳐다보았다.


학교에만 오면 사람을 놀라게 하는 엄마는 이미 가고 없었다.


교무실에서 원고지를 받아 들고 연필 한 자루를 달랑 쥔 채 문예반이 열리는 5학년 교실로 갔다. 5학년이 있는 교사는 다른 건물이어서 디딤돌 몇 개로 연결해 놓았다.


나는 걸어서 건너도 될 디딤돌을 굳이 뛰어서 건넜다. 바람 빠진 타이어가 다시 빵빵하게 차올랐다.


문예반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들은 엄마는 반색을 했다. 그리곤 공책 뒷장에 썼던 글 이야기를 했다.


“그 왜 하느님한테 시간 묻는 거 썼었잖아. 재롱이 때 공책에다가.”


침 때문에 앞 장이랑 붙어버려 진작 버린 공책이었다.


“나는, 네가, 글을 쓰는 게 좋을 거 같어.”


엄마는 내가 도로 가져온 바늘과 실을 소쿠리에 담느라 자꾸 말이 끊겼다.

“내가? 진짜? 왜?”


엄마는 엉뚱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날 장에 가서 내내 생각했지. 빗자루를 세 개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플라스틱 빗자루는 싸서 세 개를 살 수 있었는데.

근데 빗자루는 싸리 빗자루가 좋거든. 잘 쓸리고 빠지지도 않지.

그나저나 문예반에는 애들이 많어?”


“응. 다음 주까지 꿈에 대해서 두 장 써오래.

커서 되고 싶은 거.”


나는 실제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아이는 엄마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였다.

바늘을 물었다가 쌈지에 꽂아놓으며 엄마는 입을 새처럼 오므렸다. 찔리지 않으려고 집중하느라 그런 걸 나는 엄마의 굳은 의지로 해석했다.


그래도 되었다.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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