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규암: 기억을 엿보는 바위 이야기
이사라 봐야 전에 살던 집에서 걸어서 10분 남짓이었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내가 생각하던 딱 촌집이었다.
대문 없는 흙 마당에 들어서면 토방 위에 마루, 그 위에 창호지를 바른 방 한 칸이 나왔다.
마루에 올라앉으면 발끝이 둥둥 떴고, 토방 위 댓돌에 놓은 신발은 늘 미끄러져 떨어졌다.
마당 수돗가에는 녹슨 오래된 작두 펌프가 있었다. 함석에 나무 모서리를 덧댄 부엌문은 쳐다만 봐도 저 혼자 끼익 소리를 냈다.
천장 대들보는 그을음을 뒤집어쓴 채 거미줄까지 매달고 있었다. 부엌에 들어가도 천장을 보기 싫었다.
그즈음 아빠는 시외버스를 타고 멀리 전주나 대전을 다녀왔다. 누구를 찾아야 하는데 찾을 수 없다고 엄마가 이야기했다. 그 사람이 돈을 갖고 튀었거나 동업이 틀어졌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그 얘기가 그 얘기지만.
밤늦게 돌아온 아빠는 수염이 까슬까슬해진 턱을 나에게 비볐다.
“아빠. 그 사람 못 찾았어?”
“응.”
“그럼 우리 집 망해?”
내가 마음이 아팠던 건 우리 집이 망하는 것보다 혼자 길거리를 돌아다닐 아빠의 모습이었다. 상상 속에서 아빠는 낯선 거리를 돌고 또 돌았다.
그즈음 내게 다시 활기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존재는 말만 안 할 뿐,
먹고 자고 싸며 할 건 다하는 털 달린 존재, 강아지였다.
동네에는 사나운 개들이 몇 녀석씩 존재했는데 대개 두 부류로 나뉘었다. 사람만 보면 무조건 짖어대는 목청 형, 맘에 안 들면 콱 물어버리는 조폭 형. 드물게 두 성질이 하나로 합쳐진 형이 있는데 윗집 할머니네 개가 그랬다. 딱 두목님이었다.
동네 고샅길에 나타나기만 해도 서늘한 냉기가 흐르는 두목님은 잿빛 늘씬한 몸통에 호랑이처럼 깊고 찢어진 눈매에 위엄까지 서려 있었다.
당연히 묶여있어야 할 두목님은 윗집 할머니가 교회만 가면 동네를 돌아다녀서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 두목님이 우리가 이사 오자 새끼를 낳았고 윗집 할머니는 그 중 하나를 선물로 주신 거였다. 하얀 몸 털에 왼 쪽 눈 주위만 검은 털로 덮인 세련된 바둑이.
오빠와 나는 두목님의 자손 바둑이의 이름 짓기에 골몰했다. 흔한 메리나 독구, 쫑은 당연히 제외였다. 흰둥이나 검둥이는 흑인 백인처럼 차별적이라고 내가 주장한 끝에 동네에는 없는 이름이 나왔다. 재롱이. 재롱이 였다.
달릴 힘이 생기자 녀석은 틈만 나면 목줄을 끊고 윗집 자기 엄마에게 도망쳤다. 어린 강아지여서 느슨한 비닐 끈으로 만들어준 목줄은 이빨로 툭 끊어내면 그만이었다. 그리곤 재빠르게 뒤꼍으로 도망가 비탈을 올랐다.
우리가 학교에 가 있는 사이 녀석이 도망가면 할머니가 밥을 먹여 데려다주셨다. 혀를 날름거리며 내 옷을 킁킁대는 녀석을 도저히 혼낼 수가 없었다.
그날 오후에도 오빠와 나는 마루에 앉아 도망간 재롱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나절에 도망가 아예 눌러앉은 참이었다.
두꺼운 쇠줄은 어린 것에게 달 수 없었다. 그저 도망가고 데려오고를 반복할 밖에. 마당 입구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오늘도 할머니신가.
나타난 건 뜻 밖에도 혼자 걸어오는 재롱이 였다. 그런데 요 놈이 이상했다. 몇 걸음 걷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다리가 아픈가 쳐다보니 배가 불룩했다. 너무 많이 먹어 걷지를 못하는 거였다. 기가 막힌 우리 앞에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목님, 재롱이 엄마였다.
족히 서너 달 만에 만나는 두목님 앞에서 오빠와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여차 해서 물어버리면 우리는 꼼짝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재롱이가 마루에 앞발을 걸쳤다. 하지 않던 짓이었다.
엄마 앞에서 위세라도 떠는 것인지 앞발을 척 걸치고 꼬리를 흔들었다. 오빠는 먹던 새우깡을 재롱이에게 하나씩 줬다. 아각아각 재롱이는 새우깡을 계속 먹었고, 우리는 두목님에게 아부하듯 재롱이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
그때 처음으로 두목님의 눈을 바로 볼 수 있었다. 호랑이처럼 쭉 짼 눈매가 그 날은 약간 쳐져 보였다. 개는 원래 말을 못하지만 마치 말을 참고 있는 듯 보였다.
새우깡을 먹는 재롱이를 쳐다보던 두목님이 서서히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기수단이 퇴장하듯 몸을 돌려 마당을 빠져나갔다.
잊을 수 없는 것은 고개부터 돌려 천천히 집을 벗어나던 퇴장의 속도다. 그건 개의 속도가 아니었다. 나는 그가 우리에게 무언의 인사를 보냈다고 믿었다.
재롱이는 그 날부터 도망가지 않았다.
얼마 후 재롱이는 튼튼한 쇠 목줄을 달게 되었다. 겨우 6개월이나 넘었을 재롱이가 사람으로 치면 열 살이 되었다니 말도 안 되었다. 재롱은 여전했지만 가끔 의미 없이 짖어 대고 몸을 후다닥 움직여 나를 놀라게 했다.
비가 퍼붓던 토요일 오후였다. 집에 돌아오니 아무도 없고 재롱이도 조용했다.
무슨 일인가 다가가니 쇠 목줄에 목이 칭칭 감겨 있었다. 혼자서 몸을 치대다가 줄에 엉킨 모양이었다. 목줄을 만질수록 재롱이는 더 버둥대고 나는 지쳐갔다. 목줄의 고무 밴드를 자르는 수 밖 에 없었다.
비 젖은 발로 방에 들어갈 수 없어 부엌에서 식 칼을 들고 나왔다. 칼을 들이대니 녀석은 더 발버둥을 쳤다.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이미 비를 철철 맞은 나는 어찌할 줄 몰라 울음을 터뜨렸다.
“재롱아. 어떡하라구. 으엉?”
그때 재롱이가 딱 멈췄다. 꼬리를 다리 사이에 묻고 가만히 주저앉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설령 칼로 찌른다고 해도 순순히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였다.
그 모습이 더 슬퍼 나는 조금 더 울다가 담요를 가져와 재롱이를 덮어주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 재롱이는 가만히 있었다.
재롱이가 없어진 것은 한 달 쯤 후였다. 외갓집에서 돌아와 보니 재롱이가 집을 나간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밤까지 재롱이를 찾아다녔다.
어스름 땅거미가 깔리는 백마강 둑 아래를 며칠이나 훑어도 재롱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얀 것만 보이면 달려가선 비둘기나 고양이란 걸 확인하곤 눈물을 지었다.
비슷한 것이 있다고 그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처절한 부재의 아픔을, 나는 느꼈다. 그리움은 부재를 전제로 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해 아침마다 끊임없는 고문이 재생됐다.
눈을 뜨면 오늘도 이어질 그리움에 넌더리가 났다.
나중에야 알게 된 건 수컷인 재롱이가 자꾸 발정기 행동을 보이자 오빠와 내게 좋지 않다고 판단한 엄마의 결행이었다. 세숫대야 같은 볼록한 걸 보면 이상한 짓을 하고, 밤마다 짖어 대서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혼나던 재롱이.
먼 친척 아저씨가 놀러 와선 ‘커가는 남매에게 왜 수컷 강아지를 들였냐’고 하자 얼떨결에 그 아저씨에게 주었다는 게 사건의 전말이었다.
내겐 재롱이가 집을 나갔다고 한 것인데 차라리 사실을 아는 게 나을 뻔했다.
나는 재롱이가 혼자서 길을 헤매는 상상이 가장 아팠다. 비오는 날의 그 표정으로 나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도무지 밥도 먹을 수 없었다.
공책의 맨 뒷장에 낙서 같은 글을 썼다.
“하느님.
정각에 기도하면 사람이 많아서 안 되시지요.
제가 4시 42분에 기도하면 들어주실 건가요.
그럼 재롱이를 찾아주실 건가요.
아니면 밤 10시 17분에 기도하면 들어주실 건가요.
그럼 재롱이가 돌아올 수 있게 해주실 건가요.
하느님. 몇 시가 좋으세요.
말씀을 해주세요.”
공책을 베고 잠든 나는 잠시 깼다가 제목을 붙여놓았다. ‘하느님. 몇 시가 좋으세요.’ 침까지 번진 한심한 낙서를 엄마와 아빠가 돌려 읽었다.
아빠가 낯선 도시에서 사람을 찾아다닐 때 재롱이도 그 옆에서 혼자 터덜터덜 나를 찾아다녔다. 내 머리 속에서 둘은 하나였다.
둘은 같이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슬픔이 새끼를 쳐서 다른 슬픔을 불러 같이 다녔다.
뭉쳐진 슬픔은 엄마와 실 감기를 할 때처럼 돌돌 풀렸다가 짱짱하게 다시 감겼다.
나는 단단한 슬픔의 뭉치를 드디어 글로 돌돌 풀기 시작했다.
재롱이는 첫 글의 사명을 갖고 태어나 내게 왔었다. 그런 슬픈 재롱은 다신 없을 것이다.
그 후로 평생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