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_안경잡이의 꿈

소설_규암: 기억을 엿보는 바위 이야기

by 설기

7. 안경잡이의 꿈


4학년 2학기에는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가 둘이나 되었다.

우리 집에서 30분만 가면 인삼을 대규모로 가공하는 인삼 창이 있었다.


인삼을 손으로 씻거나 통에 넣어 찌는 단순 작업은 집에서 살림을 돕던 언니들의 좋은 일자리가 됐다.

그들을 관리하는 사무직은 서울이나 도시에서 가족과 한꺼번에 내려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집의 아이들은 대개 성적도 나쁘지 않아서 선생님들의 유치 경쟁이 심했다.

나는 그 두 명 중 우리 반에 전학 온 아이에게서 유치하고 싶은 게 있었다.


바로 안경이었다.

안경을 쓴 그 아이는 옷은 적당히 입었는데도,
도시 아이 같은 세련미가 풍겼다.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야. 안경잡이”라고 불렀는데 나도 그렇게 불리고 싶었다.


무엇보다 안경 정도는 턱 해줄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게, 그게 부러웠다.


며칠 후 학교에서 돌아오니 집 안이 온통 어수선했다. 도둑이라도 든 것일까. 안방 문이 열려 있었고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방 안에 들어가니 장롱이며 옷장, TV에 모두 뻘건 딱지가 각도를 맞추지 않고 제 멋대로 붙어있었다.


저녁이 돼서야 오빠와 나는 딱지의 정체를 알게 됐다. 아빠는 서울로 알아볼 일이 있다며 올라가서 며칠째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어느새 전기세며 수도세까지 밀려 있던 상황을 우리는 몰랐다. 얼마 전부터 마루 한쪽에 쌓여있는 엽서들이 생각났다.

우체부 아저씨가 슬쩍 놓고 간 것들이다.



맨 밑줄은 꼭 빨간 색으로 줄이 쫙쫙 그어있다.
“00월 00일 까지 금 00,000원을 납부하지 않으면…….”


나는 그보다 엽서 첫 줄의 인사를 읽고 또 읽었다. “안녕하십니까. 가내 평안을 기원 합니다.”

정말로 가내 평안을 기원하는 걸까.


가증스러운 인사는 왜 쓰는 걸까.

그런 인사를 받고 싶은 맘은 전혀 없었다.


일주일 후 무뚝뚝한 아저씨 몇 명이 트럭을 대놓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요즘은 집행관이라고 불리는 집 달리들이었다.

그들은 기세 좋게 살림들을 번쩍번쩍 들고 나가기 시작했다.


이삿짐센터 우수 직원들만 뽑아놓았나. 가장 무거운 장롱도 순식간에 해치웠다.

TV도 눈 깜짝할 새에 실려 나갔다.

좀 전까지 있던 엄마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어디로 간 것일까. 어디서 울고 있나?


아니면 설마 백마강에?


시끄럼쟁이 부엌문이 그날따라 조용했다. 문을 열자 쏟아져 들어간 빛으로 부엌 안은 잠시 암흑이었다.


이내 아궁이며 찬장이며 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거기 누군가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벽시계를 끌어안은 엄마였다.


엄마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더 고개를 숙였고 그것이 문을 닫으라는 신호인 줄은 나도 알았다.


품에 감출 수 있는 유일한 살림이 벽시계였고,

숨을 수 있는 곳 역시 부엌뿐 이라는 것도 알았다.


우리 집은 하루아침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말소리 외엔 날 게 없었다. 낮에는 아줌마들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찾아왔지만 밤에는 적막만 흘렀다.


두어 주가 흘렀을까. 학교에서 돌아오니 마루에 커다란 박스가 보였다. 박스를 한 번 더 박스로 포장한, 딱 봐도 중요한 물건이었다.


크기로 봐선 14인치 TV보다 훨씬 커 보였다.


그렇다면 TV?

잠시 후 나타난 엄마가 손뼉을 쳤다.

“왔네. 왔어.”


엄마가 면도칼로 배를 쩍 갈랐다.

두구두구두구.

박스에 든 건 황당하게도 책이었다.


국민서관의 한국위인전집 50권. 글씨가 빡빡하고 삽화도 온통 흑백인 고학년용이었다.


엄마는 그 날 밤 똥색 테이프로 대향연을 벌였다. 앞뒷면 표지의 모서리 삼각 변을 모두 감았다. 50권이니까 앞뒷면 100곳,

모서리로 치면 총 300곳.

쩍쩍 테이프 떼는 소리가 집 안을 울렸다.


단군부터 이승만까지 대한민국의 위인 50명이 단체로 안방에 찾아왔다.


안방에 남은 유일한 가구인 책상에 3단 책꽂이가 놓이고 그렇게 집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무관들이 반이 넘었다.

강감찬, 을지문덕, 계백, 김유신, 최영, 이순신, 임경업. 갑옷을 입은 장군들이 책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


말을 타고 칼을 든 채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으면 다 되었다. 그 분들의 어머니는 커다란 호랑이가 달려들다가 머리를 조아리거나, 강물이 넘쳐 바다가 되는 B급 판타지 같은 꿈을 꾸고 그들을 낳았다.

득도한 후 홀로 탁발을 다니는 이름 없는 스님도 반드시 나왔다.

아침에 목탁을 두드리며 대문 앞에 나타나고, 행랑아범은 쫓아내려 하고, 장군의 어머니는 그걸 말리며 바랑이 넘치게 쌀을 시주한다.


그러면 스님은 돌아서면서 꼭 한마디를 한다.


“내 부인의 덕이 고마워 한 말씀 드리겠소. 이 집에서 곧 귀한 인물이 태어날 터이니 부디 몸가짐을…….”


그러면 얼마 후에 부인에게 태기가 보인다.

태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알 수 없었던 나는 그 부분이 항상 아쉬웠다.

‘그로부터 얼마 후’로 뭉뚱그릴 일이 아니란 말이다.


태기가 생기기 전에 대감마님이 사랑방 앞에서 “어험, 어험” 헛기침을 하는 서비스 신이 50권 중 딱 한 번 있었다.


문관들의 어머니는 무관들과 달리 고을 뒷산에 오색 무지개가 떠오르거나,

커다란 지신 나무에 탐스런 해가 비치는 자연 다큐멘터리 같은 태몽을 꿨다.


세 살 때 천자문과 명심보감, 동몽선습을 떼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다섯 살엔 풍수지리에 능통해 조상님 묏자리를 정한 분도 있었다.


밥을 먹지 않고 오로지 책만 읽어 모친은 몸 상할까 조석으로 걱정하고,

부친은 늦은 밤 주인공이 책 읽는 소리에 흡족해하며 마당을 조용히 걸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이차돈이 순교할 때 하얀 피를 뿜어내는 모습이었다.


목에서 하얀 피가 솟구쳐 하늘로 올라가더니 꽃비가 되어 처형장을 가득 메웠다는 대목은 지금도 외울 수 있다.


오랜 후 신문사 문화부 선배가 이차돈이 지방간이었을 거라며 신화를 무참히 깨주었지만,
이차돈의 하얀 피는 최영의 풀 안 나는 무덤과 함께 내가 지키고픈 신화로 남았다.


이차돈의 피에 홀려 집에만 오면 책상 앞에 앉았고 어느새 TV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희미한 한 줄짜리 형광등에 의지해 책을 읽노라면 눈이 뻑뻑해 손으로 비비는 일이 잦았다.



“비비지 마. 눈 나빠진다.”
엄마의 말이 더 반가웠다.




아빠는 추석에 맞춰 두어 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귀한 손님을 방문하는 것처럼 깨끗이 이발을 하고 옷을 차려입고 왔다.


손에는 비닐을 덮은 선물용 사과 바구니를 들었다.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 준 아빠가 멋지고 고마웠다.


피곤한 모습으로 냉큼 들어올 수 있는 걸 자식들에게 예의를 갖춘 것이다.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밤이면 두 장르가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아빠가 서울에서 들고 온 중고 바이올린과 나의 책이었다. 음악과 문학의 대결이었다.


아빠의 바이올린에는 교습용 책이 돌돌 말려 들어있었다.

네 개의 현에는 음계를 적은 깨알 같은 메모가 투명 테이프로 감겨있었다.


엄마의 똥색 테이프도 만만치 않았다.

둘레를 감아놓은 표지는 밥 먹으러 갈 때 엎어놔도 빠닥빠닥 살아있었다.


밤의 적막 속에서 나의 책장 넘기는 소리와 아빠의 깽깽 바이올린 소리가 화음을 이뤘다.

가장 예술적인 겨울방학이 지나고 있었다.




긴 겨울이 가고 새봄이 왔다. 오빠와 난 개학을 했고 살림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TV가 다시 안방에 놓이고 오빠와 난 가장 그리웠던 가요 프로그램을 제일 먼저 틀었다.


세련된 장발에 꾀꼬리 같은 목소리의 남자가 나와 노래를 불렀다.

“서울 사람인 가봐. 세련됐다.”
오빠도 끄덕였다.

윤형주 였다.
안경잡이.


5학년 봄 신체검사에서 시력이 확 떨어졌다는 소리는 내가 겨우내 책을 열심히 읽었다는 증거가 됐다.


부여 독일 안경원 창에 아직 들여놓지 않은 주전자가 뽀얗게 수증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금테를 권하는 아저씨를 마다하고 내가 고른 건 까만 뿔테였다.


손가락으로 창문을 얼굴 크기만큼 문질렀다. 그 자리에는 낯선 내가 보였다.


안경을 쓴 나는 분명 이전과는 달랐다.

이를테면 생전 처음 맡아본 문향이랄까.

흑백의 위인전 같은 내가 거기 서 있었다.




5월에 문교부에서 공모한 어린이날 글짓기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다른 아이 중에 금상이 있다고 했다.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월요일 조회 시간에 교장 선생님의 훈화에 앞서 시상식이 열렸다. 내 이름 앞에 불린 이름은 뜻 밖에도 한일식품 재준이 였다.


그와 나는 나란히 서서 상을 받았다.


집에 가는 길 저만치 앞에서 재준이가 걸어가고 있었다. 따라붙은 내가 말을 붙였다.


“이재준. 너도 연필 받았어?”

“나는 공책인데.”

“좋겠네.”


그는 대답 대신 가방을 열어 공책을 꺼냈다.


“열 개 받았는데 너 두 개 줄게.”

“나를 준다고? 진짜?”


“더 주고 싶은데

이모한테 혼날까 봐 두 개만 주는 거야.”


무궁화 사진이 있는 공책의 표지는 번쩍번쩍 광이 났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생뚱맞은 소리를 했다.


“너 눈에 속 쌍꺼풀 있구나. 우리 아빠도 있는데.”

“그래? 나는 몰랐는데. 너는 안경 했구나.

이쁘네. 안경잡이 꽁미.”


안경잡이. 하하. 안경잡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수돗가에서 찬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저녁에는 그 애의 속 쌍꺼풀이 자꾸 떠올랐다.


한 개였나 두 개였나.


다시 만나면 세 봐야지 작정하다가 안경을 빼놓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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