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_베고니아 담임은 왜 노름방에 갔나

소설_규암: 기억을 엿보는 바위 이야기

by 설기
5학년 담임 선생님은 낡은 은테 안경을 쓰고,
머리에 낮은 까치집을 지고 다니던 총각이었다.


우리가 시험을 보고 있으면 자신은 교탁에 다리를 꼬고 앉아 책을 읽었다.

손가락 사이로 몇 글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크리0챤00데미. 담임은 교회 주보를 가져온 걸까.

교탁 옆에는 잎이 빨갛게 돋아나기 시작한 화분이 놓여 있었다.


남자 선생님들이 주로 입는 털실 조끼가 아닌 회색 하이넥 스웨터 위에 갈색 코듀로이 재킷을 입어 그가 서울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실감하게 했다.


어느 날 아이들의 도시락을 죽 펼쳐놓더니 내 도시락을 집어 들고 눈을 찡긋 했다.

이들이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 날부터 그는 점심시간만 되면 내 도시락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겐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오라는 특별 처분이 내려졌다. 종례 때 깨끗이 씻은 빈 도시락 통을 돌려주었다.


그런 날이 계속되자 어느새 내 도시락을 들고 교실을 나서는 담임의 뒷모습이 당연하고 떳떳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아빠의 옷을 엄마가 무심히 받아 걸듯 그가 내 짝이라도 된 느낌이었다.


엄마는 총각 선생이 밥이 그리워서 내 도시락을 가져가는 거라며 특별히 반찬에 신경을 썼다. 반장을 제쳐두고 내 것만 먹는다는 자부심도 엄마와 나 사이에 비밀스럽게 흘렀다.


“총각이 사 먹는 밥 갖고 되겠어? 따신 밥이 먹고 싶었던 거지.”


그런 담임이 다리 옆 오래된 영화식당 뒷방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전해 준 건 국숫집 순기 할머니였다. 그 곳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곳,


노름방이었다.


동네에서 알아주는 국수 기술자인 순기 아빠는 ‘그쪽’ 기술로도 이미 유명한 사람이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을 사람들은 국수를 사러 가서는 모른 체 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순기네 집에선 한 달에 두어 번 살림 때려 부수는 소리가 났다. 모두가 잠든 밤에 와장창 소리가 나면 동네 사람들은 순기 아빠가 들어온 줄 알았다.

“그래. 죽여라. 죽여.”


순기 엄마의 비명이 들리고 순기 할머니의 고함 소리가 뒤따르면 상황 끝이었다. 경찰을 불러야 하나 마음을 졸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을 순기 생각에 마음이 아파왔다.


그러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되풀이됐다. 다음날 아침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헤벌쭉 웃으며 국수를 파는 순기 엄마 말이다.


어느 날은 두부까지 사서 그릇에 받쳐 들고 종종거리며 걸어가는 빨간 슬리퍼 뒤축을 보니 배신감마저 들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일까.


“엄마. 아저씨랑 아줌마 밤새 싸웠는데 아줌마가 왜 웃어. 아줌마가 분명히 죽이라고 했는데.”
“죽었지.”
“뭐?”



순기 아빠가 밤마실을 다니는 영화식당에서 우리 담임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믿을 수가 없었다. 순기 할머니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우리 집에 와서 밤새 나라라도 팔린 양 수선을 떨었다.


“우리 애비 말에 그 선생이 거기에 왔더랴. 자기도 끼워달라는 얘기지. 하기는 우리 애비가 아무하고나 노남.

동네 유지들끼리 사교를 하는 거여.

고급 사교 말여.


학교 선생까지 올 적에는 틀림없는 자리지.

이제 보니 그러느라고 밥도 못 먹었구먼.”


그러니까 우리 담임은 새벽까지 도박을 하다가 숙직실에서 눈을 붙인 후,

점심시간에 내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곤 다시 모자란 잠을 잤다는 것이다.


도박꾼 담임도 밉지만 그를 만났다는 이유로 순기 아빠의 도박을 사교로 둔갑시키는 순기 할머니가 더 얄미웠다.

담임은 도대체 그런 곳을 왜 갔다는 말인가.


바보 같은 그이


결국 그는 여름방학이 오기 전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영화식당 주인이 교육청에 투서를 했다는 소문이 났다. 7월 초 토요일 점심, 청소 당번을 하고 나오다가 학교를 나서는 담임과 마주쳤다.


그날 보았던 책과 비슷하게 생긴 책들을 노끈으로 칭칭 싸매 들고,

다른 손에는 교탁 옆의 화분을 들고 있었다.



“청소 다 했니?”

“네. 선생님은 어디, 가세요?”


“응. 선생님 이제 집에 간다.

엄마한테 그동안 도시락 잘 먹었다고 전해드려라.”


“……”

“넌 네 걸 나눠줄 줄 아니까 꼭 훌륭한 사람이 될 거다.

선생님이 응원할 거야.”


그가 눈을 찡긋 감았다 떴다. 갑자기 코끝이 매캐해지면서 눈 아래가 빠르게 시려왔다.


그가 정말로 밤마다 도박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순기 할머니 말대로 고급 사교였는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익숙한 사람과 처음으로 이별을 감내해야 하는 나의 선택이었다.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려야 할지, 꾹꾹 참으며 멀쩡하게 서 있어야 할지 얼른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담임이 운동장으로 내려섰다. 교문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리듬에 맞춰 운동장이 둥둥 올라갔다. 눈물이 운동장을 떠받치고 있었다.


생애 첫 이별은 소리를 내고 싶어도 나지 않는 꿈속의 울음과도 같았다.


몇 년 후 그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학교에 들려왔다.


그를 교육청에 투서했다는 영화식당 주인은, 알고 보니 식당 옆에 늘어나는 거지 막을 없애달라고 경찰서에 민원을 넣었을 뿐이었다.


그 소식마저도 연탄불을 빌리러 온 순기 할머니가 엄마에게 전해 주었다.




그렇다면 담임은 왜 그날 영화식당에 간 것일까.

그가 떠난 후 영화식당 주인의 소원 대로

식당 옆 거지 막도 사라졌다.


그는 무얼 하던 사람이었을까.

그가 보던 책에 해답이 있던 걸까.


그가 떠나던 날,

노끈 사이로 본 책에는 일곱 글자가 선명했다.

크리스챤아카데미.

그냥 교회 주보가 아니라는

고두고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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