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규암:기억을 엿보는 바위이야기
내게 동생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은 때는 6학년 개학을 앞둔 2월이었다.
동네에선 다 큰 남매가 동생을 본다고 야단이었다.
나는 동생이 태어나기 전날까지도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내 관심은 오로지 사거리 양품점 유리 상자에서 본 푸른색 꽈배기 머리띠에 가 있었다.
동생이 태어나는 아침까지도 아빠에게 그 머리띠를 사달라고 졸랐다.
나보다 어린 존재에 완벽하게 무지한 나였다.
어둠이 내리고 집안은 조용해졌다. 안방에선 산파 할머니와 엄마의 대화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과연 동생이 태어나긴 하는 것인가.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아빠였다.
“이거 맞지?”
아빠는 머리띠를 건네주고 싱긋 웃으며 다시 안방으로 사라졌다.
머리띠를 만져보다 잠이 들어 그대로 아침이 되었다.
안방에선 간 밤에 동생이 태어났다.
태평한 일이었다.
눈을 뜨자 유난히 밝은 햇살이 집안을 감싸고 있었다. 안방으로 건너간 오빠와 내 눈 앞엔 작은 생명체가 누워있었다.
얼굴은 빨갛고 머리엔 잔 핏줄이 선연한 아기님, 아기 분?
생명인 채 사람인, 사람인 채 생명인 어떤 존재. 눈이 마주치자 난 엉성한 첫 인사를 건넸다.
“어어. 안녕?”
아들이 분명하다고 장담한 동네 아줌마들의 굳건한 믿음만큼이나 아들 같은 딸이었다. 이미 6학년 여름방학에 접어든 나는 아기의 탄생이 신비로우면서도 생경했다.
집에 하얀 기저귀가 걸리고 엄마는 아기를 어르고 젖을 물리고 밥을 하느라 녹초가 됐다. 내겐 수업이 끝나면 일찍 집에 돌아와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 갑자기 바뀐 일상이 낯설었다.
학교 수업보다 언니 수업이 더 쉽지 않았고 동생은 내게 그저 아기로 존재했다.
어느새 가을 운동회가 다가오고 우리는 연습에 한창이었다. 수업을 다 끝내고도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선생님을 기다리는 일은 지루하고 심심했다.
아이들은 앉은걸음으로 기어 나와 삼삼오오 떠들기 시작했다. 나도 건너편에 앉은 명주에게 다가가 말을 붙이고 있었다.
“선생님 오신다.”
잽싸게 일어나 앉은 자리로 뛰어가는 순간 딱딱한 것이 눈썹을 가로질렀다. 잠시 후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고 왼쪽 얼굴이 뜨끈하게 젖어왔다.
배구코트 심판이 올라가는 발판에 눈썹을 정통으로 찧은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아픈 것보다 창피했다.
병원에 실려 간 나는 곧바로 뻐근한 마취 주사를 맞았다. 지방으로 일을 간 아빠를 대신해 엄마가 달려왔다. 옆집에 아기를 맡기고 황급히 달려온 엄마는 낮이나 밤이나 똑같이 입는 감색 월남치마 차림이었다.
“세상에 어떡하니. 이걸.”
나보다 더 떠는 엄마를 보자 나는 전혀 울지 않은 채
상처를 꿰매고 집에 돌아왔다.
열다섯 바늘이었다.
병원 문을 나서는데 꼭 올 사람이 안 온 기분 이었다.
목까지 올라온 울음이 터질 까봐 서둘러 택시에 올랐다.
집에 돌아오자 마루에는 아줌마들이 모여 있었다.
하얀 거즈를 두툼하게 붙이고 온 나에게 월자 아줌마가 말했다.
“언니가 되고 나니까 아주 의젓하네. 좀 어떠냐.”
아줌마들 뒤로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의젓하고 늠름하게 나를 기다린 아기였다. 아줌마들은 아기가 어쩌면 엄마를 찾지도 않고 이렇게 순할 수 있느냐고 입을 모았다.
아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그리고 내가 가장 보고 싶어 한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고생 많았다는 표정으로 순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는 아기는 그렇게 나의 동생이 되었다.
11월 6일 동생의 백일이 다가왔다. 잔치는 집안 형편상 힘든 일이었다. 조용한 낮이 지나갔고 우리 가족은 평범하게 저녁을 먹었다.
밤이 되자 엄마가 나를 불렀다.
“나랑 어디 좀 가자.”
머리엔 불린 쌀 한 말을 이고,
등엔 동생을 업은 엄마를 따라 시장에 있는 방앗간을 향해 가는 그 길.
일찍 문을 닫은 초겨울 시장에는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놀란 것이 있다면 천지를 덮은 새하얀 눈이었다. 포대기에 업힌 동생은 쌔근쌔근 잠을 잤다.
나는 동생이 깨지 않을까 손으로 동생의 엉덩이를 받치고 걸었다. 손이 시렸다.
엄마가 디딘 발자국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며 세상에 엄마와 나, 동생 셋만 존재하는 착각이 들었다. 뽀얀 눈길을 걸어 아늑히 불을 밝힌 방앗간에 들어서자 엄마와 내 머리에선 허연 김이 났다.
동생은 아직도 자고 있었다.
방앗간 아저씨가 분쇄기의 커다란 입에 쌀을 쏟아 넣고 핸들을 돌리자,
까만 고무 컨베이어벨트가 덜컹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그 소리에 깬 동생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가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솥에 물을 끓여 동글동글 경단을 만들었다. 액운을 물리친다는 빨간 수수팥떡이었다. 동그란 앉은뱅이 상 위에 소담하게 솟은 수수팥떡 무리와 하얀 실 꾸러미가 올랐다.
식구들이 모여 앉아 엄마의 품 안에 있는 동생을 쳐다보았다. 동생이 웃다가 입을 헤 벌리면 침 거품이 톡톡 터졌다. 다음 날 아침, 동네 아줌마들이 와서 남은 떡을 나눠 먹으며 동생의 머리를 소중하게 얼러 주었다.
포대기를 눌러가며 손을 호호 불고 걷던 나는.
마침내 나보다 어리고 작은 존재를 받아들였으리라.
그리고 세상에는 순백의 눈길처럼 존재 자체로 역할을 다한,
완벽히 무해한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도 알았으리라.
동생은 무럭무럭 자라며 갈수록 튼실해져 보행기에서 넣었다 빼내려면 두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밑에서 보행기를 잡으면 오빠가 위에서 동생을 빼냈다.
오빠와 내가 깔깔거리며 웃으면 자기도 간지럽고 멋쩍은지 함께 웃었다. 돌이 지나자 뒷짐을 지고 양말만 신은 채 동네를 돌아다녀 아줌마들을 웃겼다.
양 손이 닿지도 않은 채 뒷짐을 지고 돌아다니는 동생이 우스워 눈물이 날 뻔 했다.
발힘이 생기고 나서는 내가 멀찍이 앉아 “이리와.”하고 부르면 터질 듯이 웃으며 달려와 안겼다. 일부러 끌어안은 채로 쿵 엉덩방아를 찧으면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누군가 믿고 달려와 온 몸을 던지는 존재가 된 기꺼움,
나를 맡기는 게 아니라 내가 맡아주는 행복,
되기보다 되어주는 행복.
다섯 살, 내가 아빠의 등에 업혔을 때와는 또 다른 행복이었다.
나는 그렇게 언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