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_하드보일드 눈썹의 복수

소설_규암:기억을 엿보는 바위 이야기

by 설기

소운동회 사고로 왼쪽 눈썹 가를 장장 열다섯 바늘이나 꿰멘 나는 하루 종일 거울만 봤다.

마루 대들보에 붙은 달걀 모양 거울은 조금 물러서야 얼굴이 다 보였다.


“흉 안 져. 눈썹 따라서 그린 듯이 꿰맸대. 걱정하지 마”


엄마는 내가 거울만 보고 있자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내가 거울을 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 사흘 제대로 먹지 못해선지 볼이 옴폭한 게 제법 예뻐 보였기 때문이다.

내 얼굴을 그렇게 자세히 본 일이 없었다. 눈썹이 찢어진 일이 거꾸로 외모에 대한 관심을 불러온 것이다.


그 날도 거울을 보느라 엉덩이를 쭉 빼고 있는데 집 앞에 몇 명이 서성이고 있는 게 보였다. 담임과 서너 명의 선생님들이었다. 그들은 시멘트 봉투에 사과 몇 알을 사서 위문을 온 참이었다.




마루에 엉거주춤 걸터앉아 말을 꺼낸 사람은 담임이 아니었다.

6학년 부장이라는, 금이빨이 있는 중늙은이 선생이었다. 며칠 만에 만난 우리 담임은 허공만 보고 있었다.


“어머님이 많이 놀라셨지요. 우리도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키가 좀만 더 컸으면 눈을 다칠 뻔 했어요.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법이죠.”


담임은 가만있는데 혼자 수선을 떠는 부장 선생이 미덥지 않은지 엄마가 대답을 아꼈다.

사과 봉지를 슬쩍 밀어놓으며 그가 말을 이었다.


“그게 아이들끼리 장난치다가 저렇게 다친 거잖습니까.

지들끼리 모여 있다가요. 그러니까 우리 문 선생은 잘못이 없고요.”


“어? 연습한다고 모이라고 했는데……. 선생님이요.”

내가 콩 하고 나섰다. 부장 선생은 내 말을 아예 못 들은 척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머님은 누가 물어보면 애가 장난치다 그랬다고 한 마디만 해주세요.

모레 장학사가 오는데 안전사고라서 물어볼 수도 있어서요. 치료비도 학교에서 냈으니까 그 정도는. 험험.”


내 발로 달려가다가 다친 건 맞지만 우리끼리 모여서 놀았다니, 억울함에 목이 콱 잠겼다.


엄마는 ‘예’가 아니라 ‘이에’라고 모기만큼 작게 대답했고 그들은 금세 자리를 털고 가버렸다.

나는 병풍처럼 서 있다가 가버린 담임이 얄미워 인사도 건성으로 해버렸다.



장학사가 왔다 갔지만 엄마는 불려가지 않았다. 나는 실밥을 뽑고 작은 반창고만 붙인 채 다시 학교에 갔다.

아이들은 열다섯 바늘이란 말만 듣고도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교실 밖을 나서면 길을 터주는 아이들까지 있었다.


나는 누가 건드리면 발차기라도 할 기세로 주위를 경계하며 학교 안을 느릿느릿 걸어 다녔다.


열두 살의 하드보일드 시대가 열린 것이다.



큼지막한 금테 안경을 쓴 교장 선생님은 2학기 중에 전근을 왔다. 학년 초나 2학기 초도 아니고, 그것도 교장 선생님이 학기 중에 오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육성회장인 미숙이에 따르면 대전 한 복판에 있는 교장 선생님 학교에서 큰 불이 났고, 그 책임을 지고 시골로 밀려왔다고 했다.

깔끔한 감색 양복에 단정히 넥타이를 매고 아이들이 인사하면 일일이 ‘그래’ ‘오냐’ 대답을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미숙이는 공부는 꼴찌인데 해마다 교육감 표창을 받는 아이였다.

미숙이 아빠는 읍에 하나뿐인 극장 사장님이었다.

육성회가 열리는 날엔 미숙이 아빠가 까만 자가용을 타고 왔다.


부장 선생과 교감이 교무실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육성회 부회장인 떡집 미양이 엄마도 낮도깨비처럼 하얗게 분을 칠하고 학교에 왔다.


교장이 글짓기 주제를 직접 정했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 학기에 두 번 교내 글짓기 대회가 열렸고, 반에서는 한 명씩 뽑아 상을 줬다.

주제는 식목일, 현충일, 국군의 날, 개천절, 한글날 같이 국경일이나 기념일이 그대로 주제가 됐고 우리는 적당히 원고지를 채워서 냈다.


어차피 상을 받는 아이들은 따로 있었다.


교장 선생님이 정했다는 주제는 ‘우리 학교’였다. 처음 보는 주제다. 아이들은 저마다 운동장 옆 미루나무나 팬지꽃이 핀 화단, 독서하는 소녀상이나 이승복 동상에 대해 쓸 게 분명했다.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보이지 않는 걸 써야 했다.

집에 와서 상처를 덮고 있던 밴드를 떼 내자 엄지손톱 두 배 만 한 철길이 나 있었다.


눈썹을 밀어낸 자리가 텅 비어 눈을 가늘게 뜨면 제법 고약한 인상이 비쳤다.


나는 분연히 일어나 원고지와 샤프를 찾아 책상 앞에 앉았다.

감옥 독방에 앉아 조직을 비밀리에 재건하는 암호투성이의 편지를 쓰는 두목의 뒷모습, 그게 내 등짝이었다.




며칠 후 조회에 들어온 담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글짓기 대회에서 상 받을 아이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잠시 후 주전자를 들고 물을 뜨러 갔던 주번이 헐레벌떡 교실로 들어섰다.


“야. 야. 교장 선생님이 우리 반에 오고 있어. 담임도 와. 조용조용.”


교장이 앞문으로 들어섰다. 담임이 뒤따라 들어와 교단 밑에 섰다.

손에 든 원고지 뭉치를 들고 교장이 말했다.


“이거 쓴 사람 만나러 왔다. 어디 있지?”


아이들이 머리를 기웃거리자 담임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오른 손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하자 심장이 요동을 쳤다.


“그래. 앞으로 나와서 네가 쓴 걸 읽어봐라.”

원고지를 받아 든 나는 교단 밑에 엉거주춤 섰으나 교장은 올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교장과 나란히 서서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제목 ‘빽’.

우리 학교는 백제 왕도의 정기를 이어받은 부여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교라고 한다. 역사가 오래됐고 큰 나무도 많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나 내가 보는 학교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부모가 돈이 많으면 공부를 못해도 상을 받고, 집이 가난하면 잘못한 게 없어도 선생님들에게 무시를 당한다. 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심하게 때리는 선생님도 있다.

만약 돈이 많은 집 아이라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빽 준다’는 말이 있다. 핸드백이 아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몇몇 아이들만 예뻐하는 걸 우리는 ‘빽 준다’고 말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가. 빽을 받기 위해서인가.

우리 부모님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내가 학교에서 무시당하는 걸 안다면 그 눈물은 백마강을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내 진짜 빽은 우리 부모님이다.”


숨소리 하나 없는 완벽한 정적이 흘렀다.

교장은 윗부분만 뿔테가 있는 금테 안경을 손가락으로 치키며 ‘흠’ 목을 가다듬었다.


“이런 일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에. 그러나 내가 우리 학교에 온 이상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쓴 친구를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건 아주 훌륭한 일입니다.

그 얘기를 하려고 왔습니다. 이상.”


담임은 교장을 뒤따라 나갔다가 교실로 들어왔다. 어떻게 첫 수업이 지나갔는지 모르게 정신이 혼미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가. 한 시간 내내 담임의 표정만 살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동네 친구 경미가 3교시가 끝나고 나를 불렀다.


“너 왜 그랬어. 너 네 담임 살모사 잖어. 너 이제 완전 죽었어.”
경미가 눈을 뒤집어 깠다.


담임의 별명은 살모사 맞았다. 길게 쭉 짼 눈매와 앙 다문 입을 가졌고, 거기에 성냥개비까지 질겅질겅 씹고 나타나면 오금이 살짝 주저앉았다.


수업 시간에 답을 못하면 번개 같이 교단에서 내려와 늘 들고 다니는 긴 막대로 손등을 때렸다.


출석부와 막대를 가슴팍에 안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복도에 들어서면 칙칙 감전되는 소리가 났다.


아이들은 그런 살모사를 부르르 떨며 싫어했지만, 어쩐지 출석부 모서리로 아이들 머리를 콩 때릴 때면 힘을 뺀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서 마냥 저주할 사람은 아니었다.


비가 내리면 다리가 불편한 기범이를 자전거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그런 살모사가 우리 집에 와서 말 한마디 없이 가버리자 나는 그를 진짜 살모사로 몰아갔다.

수업 시간만 되면 내 눈이 쭉 째지고 입이 앙 다물어졌다.

나는 그에게 글짓기로 피의 복수를 한 셈 이었다.




집에 돌아와 밥을 하는 엄마 대신 오빠와 함께 동생과 놀고 있었다.

밖에서 끽 자전거 바퀴가 멈추는 소리가 나더니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계십니까.”

저 익숙한 그 목소리는, 살모사?


자전거를 끌고 마당에 들어선 그는 나를 보자 멀뚱하게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부엌에서 나온 엄마가 인사를 하자 살모사가 정중하게 말했다.

“저 어머님, 제가 둘이 조용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습니다.”


살모사의 자전거를 따라 마을 입구 느티나무 앞에 섰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핸들을 잡은 채로 로 그가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선생님한테 실망 많이 했지?”

“……아니에요.”

“네가 쓴 글말이다. 진심이냐? 진짜 그렇게 생각해?”

“…….”


“사람은 자기가 쓴 글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거든. 선생님한테 화가 나서 쓴 건지,

아니면 진짜 네 생각을 쓴 건지 말이야.”


“진짜 제 생각이요……. 애들도 같은 생각일 거예요.”


“네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선생님은 이해할 수 있다.

교장 선생님 말씀처럼 사람은 잘못된 걸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거든.”

“죄송해요.”


“너는 커서 기자가 되어라.”


“기자요?”

“그래. 오늘 이 얘기 하려고 왔다. 선생님이 그 생각을 했었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기자가 뭐하는 건지도 몰랐다.


자전거를 출발시킨 살모사는 오른쪽 페달에 발을 올리고는 번개같이 올라타고 쭉 달려 나갔다.

선 채로 가랑이를 벌려 자전거에 올라타는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다음 날 아침, 우리 반 글짓기 입상자가 발표됐다.

살모사가 건네준 상장을 책상 앞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았다.


부장 선생은 다음 해 보령 원산도의 섬 학교로 갔다.

살모사는 점점 물뱀처럼 독기가 빠져선,

아주 오랜 후에 무사히 교장으로 정년 퇴임했다.


눈썹 위에 새 살이 돋아나자 나도 다시 순해져버렸고, 복수할 일들은 점점 줄어갔다.

원래 홍콩영화에서도 복수는 한번 하고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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