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_백마강. 뚝!

소설_규암:기억을 엿보는 바위 이야기

by 설기

엄마와 모처럼 한일식품에 들른 나는 재준이와 어색한 조우를 했다.

나도 재준이도 본 둥 만 둥 지나쳐버렸다.


어른들 앞에선 서로 쳐다보고 웃기도 어려운 때였다. 가게 안쪽 노란 장판을 깔아놓은 평상은 내가 아는 한 동네 아줌마들 중에도 유지들만 앉을 수 있었다.


마루 끝에 앉아 사과 뼈를 베어 먹던 양지상회 아줌마가 우리를 보고 목소리를 띄웠다.


“오머나, 벌써 내외를 하네. 동네 깨복쟁이 친구끼리. 꽁미네가 요 앞에 살 때 둘이 친했지?” 아줌마의 말에 엄마가 뜻밖에 정색을 했다.

“깨복쟁이는 무슨. 여태 반도 다르고 자주 만날 일도 없었는데요.”


나는 엄마의 말에서 은근한 경계심이 묻어나오자 머쓱해졌지만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양지상회 아줌마의 목표는 원래부터 내가 아니었다.


“그런가. 재준이가 이제 총각이 다 됐구나. 우등상도 탔다면서. 저 키 큰 것 좀 봐. 제 아버지가 봤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다른 아줌마가 옆구리를 쿡 찌르자 “살아계시기만 하면 말여”하고 못을 쾅 박았다. 한일식품 사모님이 접시에 놓인 사과 조각을 아래턱으로 콱 부러뜨려 먹었다.




재준이는 안집 마루에 앉아 다리를 엇갈려 놀리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돈 통 옆에서 처음 봤을 때나, 교실에서 노란 슬리퍼로 맞을 때나 그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을 예전에 본 일이 있었다.


여섯 살 때 동네의 갓난아이가 열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에게 아줌마들은 뭐라도 갖다 주려고 집을 찾았다. 엄마도 그냥 말 수 없다며 돼지고기 반 근과 참기름이 든 소주병을 들고 그 집을 찾았다.


엄마를 따라 간 그 집은 강둑 제방과 잇대 집을 들인 무허가 셋방이었다. 마루에서 넘어지면 그대로 시멘트 제방에 코를 찧을 거리였다. 쓰러져서 마냥 울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아이 엄마는 마루에 앉아 건전지를 업은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갖고 간 것들을 마루에 올려놓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곤 시선을 원위치로 돌렸다. 슬프지도 않은가. 왜 울고 있지 않지. 내 맘을 아는지 엄마가 돌아오며 말했다.



“너무 아파서 그런 거야. 그럼 아예 안 보게 되지.”
“그럼 이제 안 슬픈 거야?”
“차라리 슬픈 게 낫지. 그래야 낫는다.”


엄마 말이 맞았을까. 그렇다면 그녀는 고통이 없는 게 아니라 고통과 자신을 분리하고 있었다. 너무 큰 슬픔은 옷가지나 그릇 같은 것에 정령으로 붙어 존재 밖에 머문다.


슬픔을 받아들인 후에야 오장육부와 심장이 쿵쿵 진동하며 고통의 진이 똑똑 채집돼 눈물이 되어 흘러 나간다. 그 전엔 우린 그저 슬픔을 기다리는 슬픔일 뿐이다.


나보다 겨우 한 살 많은 재준이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표정을 지었던 걸까. 나는 문턱을 성큼 넘어갔다.




“이재준. 너 요즘도 책 읽어?”

“아니, 별로.”

“선생님 방에 책 많지.” 그제 서야 얼굴이 환해졌다.

“응. 엄청 많어. 여기에 책 많어.” 우리 집이 아니라 여기라고 했다.

“그래? 그럼 나도 빌려주라. 재밌게 본 거 있어? 이재준?”

“그럼 플루타르크 영웅전 봤어?”

“플루 뭐? 영웅 이야기야? 그거 어른 책이지?”

“글씨가 작은 데 읽으면 재밌어. 내가 읽고 너 빌려줄게.”

“그래. 고맙다. 이재준.”

“왜 자꾸 이재준 이재준 하냐? 선생님처럼.”

문턱을 건너오며 그 애 이름이 내 입에 딱 붙어있다는 걸 알았다.


까맣게 잊고 있던 플루타르크 영웅전이 우리 집 마루에 놓인 건 일주일 후였다. 친구 집에 다녀온 사이 재준이가 놓고 갔다고 빨래를 삶던 엄마가 말해주었다. 이 추운 날에 여기까지 걸어왔단 말인가.


책에는 작은 쪽지가 들어있었다.
“안녕.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야기를 읽어봐. 네가 답장을 보낸다면 기쁘겠어.
P.S(추신임) : 겨울방학을 책과 함께 알차고 보람 있게 보내기를 빌며.“

남자 애에게 쪽지를 받아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바보. P.S가 추신이란 건 나도 알거든.’ 엄마 눈치를 보다 얼른 책꽂이에 꽂았다.


그날 밤 꿈에 나시찬이 나왔다.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던 재준이와 달리 그는 가운데에 떡 하니 올라앉아 있었다. 사모님이 양장 대신 몸뻬 바지를 입고 그에게 김이 펄펄 나는 소고기 국을 가져다주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걸 보아 다리는 멀쩡했다. 자세히 보니 군복이 아니라 재준이가 사과 궤짝을 나를 때 입던 군청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뺨이 축축해 졌다.


내가 우는 걸까. 눈을 뜨니 동생이 침이 가득 묻은 손으로 내 얼굴을 착착 두드리고 있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내 우려처럼 어른 책이었다. 게다가 등장인물의 이름이 어찌나 어려운지 몇 장 읽다 말아버렸다. 답장을 쓰려면 끝까지 읽어야 했으나 하루 이틀 미루다가 책꽂이에 꽂아놓은 채 나는 중학생이 되어버렸다.


내가 교복을 입는 마지막 학년이라고 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교복 사이즈를 재고 온 날, 드디어 내가 중학생이 된다는 걸 실감했다. 엄마는 틈만 나면 오빠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3년 전을 떠올렸다.


동네 입구에는 양 쪽으로 대문이 열리는 큰 집이 있었다. 사람들은 큰 대문집이라고 불렀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태수 오빠 네였다. 시장에 가던 엄마에게 그 집 아줌마가 대문간에 서 있다가 물었다.


“혁이 중학교는 가남?”


혁이는 우리 오빠였다. 엄마는 “그럼요.”라고 답한 후 그만 무참해져서 집으로 그냥 와버렸다. 걱정을 가장한 관심은 과시에 지나지 않으며 전혀 다른 결과는 낳는다. 상처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내가 교복을 입어보는 뒤에서 또 꺼냈다. 교복의 플레어스커트가 종아리 중간에 끊어져 발목을 더 두꺼워 보이게 했지만 신발까지 신으니 나는 제법 아가씨 티가 났다. 다시 여름이 다가왔다.


부여읍에 가는 버스를 타면 기다리는 순간이 있다. 사거리를 돌아 백제교로 꺾어지는 길은 직각에 가까워서 버스가 온 몸을 비틀며 휘청거렸다. 우리는 손잡이가 다 함께 직각으로 눕는 때를 기다려 몸을 과장해서 비틀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는데 버스가 도는 순간 일직선으로 내려다보이는 강물 때문이었다. 시퍼렇다 못해 진녹색에 가까운 강물은 쳐다만 봐도 빨려들 것 같았다.


오빠와 읍내에 다녀오던 그 일요일은 중학생이 되어 처음 맞는 8월의 첫 날이었다. 아우성치던 햇살은 힘을 잃고 버스 창문에 걸쳐 눈만 찔러대고 있었다. 다리를 거의 건널 무렵 다리 아래로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피서를 요란하게도 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다 다리 끝에서 버스가 오른 쪽으로 붙더니 우뚝 섰다.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고 오빠와 나도 따라 내렸다. 강둑 옆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본능 같은 것이었다.




어른들 틈을 헤치고 나아가자 신기한 형태가 어렴풋이 보였다. 어릴 때 자주 갔던 미인 양장점의 마네킹이 옷을 갈아입을 때 같았다.


팔과 다리가 제각기 벌어져 그대로 정지한 모습. 가까이 다가서자 마네킹의 다리에 군데군데 상처가 보였고 바지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누가 저런 마네킹을 강 옆에 놓아두었는지 궁금해 시선을 올리던 순간 내 무릎이 버스처럼 꺾이고 말았다.


내 입만큼이나 벌어져 있는 그 입은 사람의 것이었다.
그는 너무나 최선을 다해 죽어있었다. 살아있는 죽음 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다 보니 동네 아저씨들이 길 위에 모여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우릴 찾느라 옆집으로 전화를 몇 번이나 했다며 연신 손사래를 쳤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찬물로 달래고 앉아 있는 내 귀에 태수 오빠의 이름이 들려왔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닌다는 큰 대문 집 큰 아들. 엄마에게 아들 중학교에 가냐고 물었던 그 아줌마네 아들 말이다. 그는 전날 서울 친구와 집에 내려왔었다.


그들은 푸짐한 아침을 먹고는 농구공을 들고 수구를 하러 나갔다. 동네 사람들이 그들의 인사를 받았지만 어느새 강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럼 태수오빠가 그 마네킹이란 말인가. 어둠이 내린 동네는 고요했지만 모든 집은 불을 끄지 앉았다.


다리 아래서 만난 사람은 친구였고,

논산에서 온 잠수부가 밤을 새워 강어귀 수초에 걸려 있는 태수 오빠를 찾아냈다.


동네는 조용한 여름을 났다. 큰 대문집의 대문은 여름 내내 열리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 맞닥뜨린 가까운 죽음은 내게 많은 생각을 몰고 왔다.


나는 사람의 몸이 아직 있는데 죽는다는 건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날 내가 본 시체는 무엇으로 죽었다고 판정할 수 있을까. 책꽂이 앞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재준이의 플루타르크 영웅전이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에 이어 인도까지 정복하려고 나섰다. 그러나 한 무리의 인도 지도자들 때문에 난관에 부딪혔다. 그 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대에 저항해야 한다고 선동하며 다녔기 때문이다.


그 인도 지도자들을 잡아 온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문제를 낸다.

대답을 잘하면 살려주고 그렇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말한다.


“삶과 죽음 중에 무엇이 강한가.”
“삶이 강합니다.”
“어째서인가?”
“삶은 견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년 여가 흐른 어느 날 동네 어른들이 아빠의 여행사에서 단체관광을 떠났다. 강둑 옆 공터에서 시끌벅적 떠들며 버스에 오르는 동네 사람들 속에 빨간 관광 모자를 쓴 아줌마가 있었다.


나는 그제야 슬픔의 감옥 에서 그녀를 출소시켰다. 나는 슬픔 감옥 에서 간수장 노릇을 하고 있었나 보다.


관광버스에 환송을 나갔다가 공터 위 강둑에 오르니 어느 때보다 환한 햇살이 윤슬을 깔아놓고 있었다.


큰 대문집의 활짝 열린 대문을 보며 나는 다시 슬픔에 대해 생각했다. 슬픔이 오래되면 모든 감정에 스며들 뿐 떨어져 나갈 것도 없다.


발바닥 굳은살의 통각이 약한 것도 살인지 껍질인지 모를 신체가 그대로 굳어져 그런 것처럼 말이다. 슬픔이 오래되면 굳은살처럼 된다. 그 사람 자체가 된다.


그래서 웃으면서도 슬플 수 있고, 슬픈 채로도 웃을 수 있다.

강둑 밑 아기엄마도 지금쯤 빨간 관광 모자를 쓰고 있길 바랐다.


엄마는 오빠가 중학교에 갈 때 아줌마에게 들었던 서운했던 이야기를 다시 하지 않았다.

이해를 바탕으로 한 관심은 또 다른 결과는 낳는다. 포용과 연대, 두 개나 된다.


대신 강둑에서 내려오며 내가 한마디 했다.

“백마강.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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