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완결)_카페 피핑록

소설_규암:기억을 엿보는 바위 이야기

by 설기

별을 두고 스스로 도는 지구처럼 그는 잠시 멀어졌지만 저녁이 되자 나를 알아보고 모습을 드러냈다.


우린 헤어진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속의 점들이 자기 자리에 있으나 이미 하나의 우주이듯, 정림사지 5층 석탑이 각각의 몸으로 한 탑이 되어 살듯 우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서로의 곁에 있었다.


부재가 없었기에 이별도 없던 것이다.


나는 부재의 아픔에 울었던 생의 다른 고통들도 함께 놓아주리라 마음먹었다. 이젠 가능한 일이었다.




K의 말에 따르면 그는 결혼하지 않은 채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며 교육 사업에 열정을 바치고 있다. 1992년 LA 흑인 폭동에서 가난한 이민자 청년으로 한인들의 생업을 지키는 데 몸을 던졌다. 그렇게 시작된 교포와 한인 사회의 신뢰를 바탕으로 올해 초 신문사 이사회에서 대표 이사로 선출되었다.


그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나는 일찌감치 그의 어머니를 알고 있었다.

이제는 그의 어머니가 길을 걷다 껌을 밟고 발을 뒤집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아쉽고 애틋했다.


나는 내년 초 드디어 내 칼럼을 모아 책으로 낼 예정이다. K가 L에게 처음으로 부탁다운 부탁을 했고, 신이 난 L은 곧바로 출판사를 연결했다. K는 내년 여름 한국에 들를 예정이다.


L은 21년 만에 오는 동기는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고 떠들다가, 잠은 자기 집에서 재우겠다며 횡설수설했다.




재준이는 내게 메일로 연락해 왔다.
내 이름이 바뀌어 찾을 수 없었다는 말과
전화는 용기가 나지 않는 말을 함께 써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줄.


“P.S(추신임) : 한국에 가면 부암동의 환기미술관에 같이 가보면 어떨까. 얼마 전 혼자 갔는데 네 생각이 났다.” 우리는 3개월 후 카페 피핑록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신문사 사이트에 들어가 그가 나온 사진을 찾아보았다. 소매를 걷은 블랙 셔츠나 옅은 그레이 재킷, 또는 트랙 슈트 차림의 그가 보였다.


이름조차 달라진 우리였지만 나는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는 두 개의 속 쌍꺼풀을 말이다.

아침이 오면 남다른 그리움에 웃음부터 났다.


3개월이 느리게 흘렀다.




그와 약속한 12월 네 번째 수요일에 나는 백마강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 전날이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1985년 그 밤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나는 먼저 강둑 마을 입구로 갔다.


약속까지 1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마을 입구 느티나무는 역시 보이지 않았다.


처음 이 마을로 왔던 복숭아나무 집은 아스팔트 슁글 지붕을 얹은 깔끔한 주택으로 변했고, 재롱이가 놀던 자리에는 작은 컨테이너가 보였다.

동생이 태어난 바로 아래 자두나무 집은 2층 저택이 되어 청동 대문으로 굳게 닫혀있었다.

동생이 달려와 안기던 담장 아래와 막걸리 아저씨를 만났던 가게 아랫길도 반으로 잘린 듯 작기만 했다.


길 위엔 아무도 없었다. 촬영이 끝난 세트장에 들어선 듯 어색하고 황량했다.


마을을 걸어 나오며 내가 생각한 강둑 마을은 거기 없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공간은 결국 시간으로 변한다.
시간의 주인은 그걸 영원히 갖기에 강둑 마을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미루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대형 편의점이 생겼고 바로 앞에는 신호등도 있었다. 편의점 창에 내 모습이 보였다. 문득 열한 살 안경잡이가 되어 바라본 안경원의 유리창이 생각났다. 이전과 또 다른, 다시 새로워진 내가 서 있었다. 자식이 나이를 먹으면 제 부모 자리에 가서 선다.


느리고 무르고 자주 슬펐던 어린 날의 나 대신,


제힘으로 우뚝 서서 나를 지켜보는 새 보호자가 거기 있었다.


나는 나의 부모였다. 신호가 바뀌고 나는 한 걸음에 길을 건넜다.


카페 피핑록에 들어서자 정면에 글귀가 보였다.

“피핑록(Peeping Rock)은 엿보는 바위라는 뜻입니다. 엿바위 즉 여기 규암과 의미가 같습니다.”


피핑록은 지난 3개월간 카페 겸 복합 문화공간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었다.


주민들을 위한 북 토크와 그림 강좌, 공예 체험을 알리는 공지문이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그리고 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작은 전시관이 보였다.


유리 안에는 서안과 사방탁자, 붓, 벼루와 먹, 난 그림과 서책들, 그리고 곰 선생의 파이프가 있었다.


‘수암 이인웅(守巖 李仁熊, 1933~1990) 선생의 유품을
외아들 이재준이 기려 모으다.’


곰 선생은 엿바위를 지키는 어진 곰이었고, 재준이는 아들이 되어 먹을 갈고 있었다.


카페에서 나와 강둑에 올랐다. 나를 빼꼼히 엿보는 바위, 나의 피핑록이 똑같은 모습으로 인사를 건넸다.


이젠 그의 차례였다. 한 사람이 카페에 들어갔다 나왔다.


나무 장작을 광에 넣고 나온 여덟 살 재준이가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힘껏 소리쳤다.
“야. 이재준. 안 뛰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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