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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백설기 Feb 10. 2023

냄새의 정체

나를 살리는 추억에세이 쓰기. #6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가면 세계자동차&피아노박물관이 있다. 자동차와 피아노가 함께 전시돼 있지만 원래는 자동차박물관이었다. 일로 들렀다가 나중에 아들과 제대로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보던 꿈의 자동차 100여대가 번쩍번쩍 광을 내며 의장대처럼 도열해있다. 존 웨인이 즐겨 탄 포드의 1957년산 머큐리 몬테레이부터 마릴린 먼로와 엘비스 프레슬리가 사랑하던 캐딜락 엘도라도도 있다.


캐딜락 엘도라도는 하늘을 나는 듯 우아하고 긴 컨버터블(오픈카)이라고 하면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우리나라 자동차를 전시하는 코너도 꽤 알차다. 지금 봐도 세련된 1960년대 신진자동차(대우자동차 전신)의 퍼블리카, 어릴 적 연탄배달에서 봤던 삼륜차 T-600을 만났다.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자동차인 녹색 시발택시를 살펴보다가 그 뒤의 벽으로 시선을 옮긴 나는 작은 반가움에 몸을 떨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기록해놓은 벽에는 자동차들이 신호등 앞처럼 꼬리를 물고 즐비했다. 3분의 1지점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두 주인공은 브리사와 코티나. 40년이 훌쩍 넘은 기억 속의 소중한 친구들, 우리 아빠의 차다.           


초등학교 2학년으로 기억한다. 같은 면에 사는 주혁이네는 엄마의 사촌오빠의 집이었다. 우리에겐 사촌 외당숙이 되는데  촌수보다는 또래의 형제들이 있어 자주 놀러갔다.      


엄마, 오빠와 함께 주혁이네서 저녁을 먹고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은 내렸고 아빠는 늦어지고 있었다. 하릴없이 대문간만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빵빵’ 경적이 울렸다. 산 밑의 집 앞은 온통 논이었고 대문 앞은 널찍한 공터였다. 차가 지나갈리 만무했다.     


다시 울리는 경적 소리에 모두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대문 앞 공터에는 낯선 하얀 차가 시동도 끄지 않은 채 서있었다. 아빠였다.    

  

사뿐한 하얀 자가용의 운전석에 아빠가 앉아있는 모습은 생소했지만 그 반가움과 자랑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우리 집에 자가용이 생겼다니, 당장 나는 부잣집 외동딸이 된 것 같았다.       


주차를 하려던 차 문을 열고 무조건 올라탄 나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특이하게도 어떤 냄새였다. 태어나서 제대로 맡아보는 첫 문명의 냄새였을까. 오래 맡을 수는 없지만 금세 코끝을 장악하는 약품인지 가스인지 모를 불명의 냄새였다.


그날의 설렘은 그렇게 냄새로 남았다.


시트는 올록볼록 하얀 누빔천으로 덮여있어 고급스러웠다. 가끔 차에 탈 때면 뒷자리에 앉아 하얀 누빔천을 손으로 훑어보기도 했다.       


그 차가 우리 집의 첫차 브리사다. 정식 명칭은 기아 브리사II K303. 지금의 기아자동차 K시리즈의 시초라고 한다. 직렬 4기통 1300cc 엔진에 최고출력 73마력의 아담하고 앙증맞은 차.      


아빠는 백마강을 넘는 백제교를 두어 번 왔다 갔다 해보곤 바로 브리사 운전을 했다고 하셨다. 무엇이든 습득이 빠른 아빠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처음엔 믿기가 어려웠다. 지금도 가끔 똑같은 워딩으로 이야기하시는 걸 보니 팩트는 확실한 것 같다.     


브리사와의 짧은 인연이 끝나고 두 번째로 만난 차가 검정색 코티나였다. 검정색 코티나는 얼핏 듣기로 부여에서 두 대밖에 없는 중형차라고 했다. 지금도 차번호를 외운다. 5652.


아빠가 조촐한 살림에 어떤 생각으로 차를 연달아 바꾸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차가 가져다준 내 어린 시절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적어도 다섯 개는 되는 것 같다.      


첫 번째는 아빠의 차에 동네 아이들이 포개 타고 군에 하나뿐인  금성극장에 ‘로봇태권V’를 보러 간 날이다. 원래 오빠와 나만 태우고 가던 길에 길가에 서있는 아이들을 하나둘 태우기 시작했다. 엉덩이가 옴짝달싹 못한 채 극장에 갔던 걸 생각하면 다섯 명은 족히 탄 것 같다. 아빠는 아이들의 영화표까지 다 사주셨다.      


두 번째는 어린이날에 근처 도시인 논산에 나가서 온 가족이 불고기를 먹고 온 일이다. 그때까지 불고기는 고기를 불에 넣어서 먹는 것인 줄 알았다. 식당 방 안에 네 명이 모여앉아 철판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불고기를 입에 넣었을 때의 모습은 행복의 완성형이었다. 오는 길에 오빠는 어린이날 선물로 장난감 칼도 받았다.      


세 번째는 외갓집에서 아빠를 기다리던 날, 동네 너머에서 우리를 부르던 아빠의 모습이다. 외갓집 마당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건너 보니 저멀리 언덕 위에서 아빠가 차를 세워두고 있었다.  엄마는 “아이고, 집으로 데리러와야지.”라며 할머니에게 미안해했지만 차 앞에서 근사하게 서있던 아빠의 전경이 좋았다.    

 

네 번째는 외갓집에서 우연히 막내 외삼촌의 일기를 보았을 때이다. 학생이던 삼촌은 일기 속에서 어떤 일로 짜증이 나있었는데 ‘큰 누나라도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매형의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반가워 나가보니 차바퀴가 근사했다’고 써놓았다.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다섯 번째는 아빠의 차 코티나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빠는 동네에게 가장 집이 큰 상용이 오빠네 앞에 주차해두곤 했는데 어느 날 등교하던 나를 차 앞에서 찍어주셨다. 사진으로만 보면 난 저택에 자가용도 있는 부잣집 딸이었다.


집안 살림이 어려워진 3학년 이후로 그 사진을 자주 들여다보다가 어느 날은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아빠의 마이카시대는 2년을 넘지 않았던 것 같다. 한동안은 차가 살림에 보탬이 되기도  했다. 일감이 마땅치 않았던  아빠는 이른 아침 동네사람을 어딘가에 실어다 주고 수고비를 받기도 했다. 그 일도 오래가지 않았고 어느 날 차는 사라졌다.      


아빠는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내 나이 스물세 살 때에야 다시 차를 가질 수 있었다.  중고 캐피탈이었다. 

  

우리 나이로 작년에 팔순을 맞은 아빠는 지금도 운전을 하신다. 그것도 수동 기어다. 몇 년 전 오빠가 사준 하얀 아반떼가 아빠의 친구이다. 아빠는 수동기어를 가진 아반떼를 앞으로도 바꿀 일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몇 년 전 아빠의 아반떼를 길게 탈 일이 있었다. 세종시 동생의 집에서 공주KTX역까지 40분을 아빠와 엄마와 달렸다. 아빠의 차를 오래 타는 일은 흔치 않았다. 고향에 가도 차를 갖고 내려가니 아빠의 차는 어쩌다 짧게 탈 뿐이었다.     


세종시에서 공주 시내를 거쳐 KTX역으로 들어가는 길은 생각보다 외졌다. 역은 공주시 이인면에 있었다. 과 나란한  2차선 도로를 달리며 내 마음은 부풀어 올랐다. 오십 나이에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탈 수 있는 나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었다.     


역에 다다라 엄마의 차 문을 열어주며 뜻하지 않게 익숙한 냄새와 조우했다. 브리사를 처음 탔던 그 날의 냄새였다. 그 정체는 별것 아니게도 수동 기어를 변속할 때 차가 뿜어내는 배기가스 냄새였다. 아빠는 기어를 빠르게 변속해 주차를 했다.


냄새와 함께 그 날의 느낌도 살아났다. 운전을 혼자 마스터한 아빠는 거칠게 기어를 변속해 주차를 했을 것이다.


부릉부릉 뿜어나오는 배기가스에서 나는 문명의 냄새와 함께 갑자기 나타난 행복의 향내를 맡은 것이 아닐까.


기억을 가장 정확히 소환하는 것이 냄새라고 한다. 그날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며  흥분에 겨운 내 안의 작은 소녀를 오랜만에 만났다.


이제 곧 봄이 올 것이다. 언제나 젊은 아빠는 리드미컬하게 기어를 변속하며 다시 백제교를 달려가리라. 혼자서  운전을 배우러 다리를 넘던 그 날처럼 말이다.


자동차가 내 인생에 선물한 하이라이트 중 가장 첫번째 장면이 이제야 나올 듯 하다.

기아 브리사 II K303 (출처:기아자동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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