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백설기 Sep 15. 2023

과거를 글로 쓰면 벌어지는 일

왜 추억을 글로 쓰는가?

누구에게나 마음 속 어두컴컴한 골방이 있다.

     

오래된 대나무소쿠리의 퍼런 곰팡이처럼 세월의 더께를 뒤집어쓴 회한들이 눅눅하게 엉겨붙어있는 곳.


얼마 되지 않는 아름다운 기억들은 끈이 떨어진 구슬목걸이처럼 저 혼자 나뒹굴고 있는 곳.

     

슬픔과 기쁨이 한데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따로 공간을 차지한 채 따로 울고 따로 웃는 그 곳.   


실수로든, 내켜서든 골방이 열리는 날에는 초대하지 않은 그 곳에 스스로 들어가 슬픔과 아픔에 나를 유폐시킨다. 골방 문을 닫고 나올 때 다시는 열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기어코 또다시 열고 마는 나의 손.   

     

기억을 글로 쓰는 일은 그 골방 문을 활짝 여는 것이다.


영원의 습기에 잠겨있는 기억들을 말간 햇빛 아래 늘어놓고 물로 씻는 일이다. 하나하나 물기를 닦아 뽀송뽀송 말리고 나면 기억은 드디어 추억이라는 새 이름을 얻는다.

     

글이 그 일을 한다.

     

기억은 글로 쓰이면서 전혀 다른 옷을 입기 시작한다.


나를 단단히 지탱해 준 것들이 사실은 기쁨이 아닌 아픔이었음을,

원망에 겨운 마음이 내일의 내 삶을 바꾸고 싶은 가장 강한 이유임을,

가장 미운 사람이 실은 내가 가장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었음을.

     

글은 그렇게 반전을 목도시키며 내 삶의 진짜 스위치를 켠다.  

     

그리하여,

기억을 쓰는 일이란 과거를 다시 만나는 일이며, 과거를 다시 해석해서 제자리를 잡게 하는 일이다.

     

결국 과거를 바꾸는 일이다.

     

미래는 과거에 의해 바뀐다. 그리고 과거는 미래를 통해 바꿀 수 있다.


진심으로 바라는 미래를 기어코 이룩한다면, 내가 지나온 모든 과거는 그 날을 위한 찬란한 과정으로 다시 배열되어 새로운 명예를 입는다.  

     

굳이 오랜 기억을 하나하나 되살려 아픔을 무릅쓰고 글을 풀어내는 까닭은, 미래를 향한 삶의 뜨거운 열정임을 나는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냄새의 정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