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글로 쓰면 벌어지는 일

왜 추억을 글로 쓰는가?

by 설기

누구에게나 마음 속 어두컴컴한 골방이 있다.

오래된 대나무소쿠리의 퍼런 곰팡이처럼 세월의 더께를 뒤집어쓴 회한들이 눅눅하게 엉겨붙어있는 곳.


얼마 되지 않는 아름다운 기억들은 끈이 떨어진 구슬목걸이처럼 저 혼자 나뒹굴고 있는 곳.

슬픔과 기쁨이 한데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따로 공간을 차지한 채 따로 울고 따로 웃는 그 곳.


실수로든, 내켜서든 골방이 열리는 날에는 초대하지 않은 그 곳에 스스로 들어가 슬픔과 아픔에 나를 유폐시킨다. 골방 문을 닫고 나올 때 다시는 열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기어코 또다시 열고 마는 나의 손.

기억을 글로 쓰는 일은 그 골방 문을 활짝 여는 것이다.


영원의 습기에 잠겨있는 기억들을 말간 햇빛 아래 늘어놓고 물로 씻는 일이다. 하나하나 물기를 닦아 뽀송뽀송 말리고 나면 기억은 드디어 추억이라는 새 이름을 얻는다.

글이 그 일을 한다.

기억은 글로 쓰이면서 전혀 다른 옷을 입기 시작한다.


나를 단단히 지탱해 준 것들이 사실은 기쁨이 아닌 아픔이었음을,

원망에 겨운 마음이 내일의 내 삶을 바꾸고 싶은 가장 강한 이유임을,

가장 미운 사람이 실은 내가 가장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었음을.

글은 그렇게 반전을 목도시키며 내 삶의 진짜 스위치를 켠다.

그리하여,

기억을 쓰는 일이란 과거를 다시 만나는 일이며, 과거를 다시 해석해서 제자리를 잡게 하는 일이다.

결국 과거를 바꾸는 일이다.

미래는 과거에 의해 바뀐다. 그리고 과거는 미래를 통해 바꿀 수 있다.


진심으로 바라는 미래를 기어코 이룩한다면, 내가 지나온 모든 과거는 그 날을 위한 찬란한 과정으로 다시 배열되어 새로운 명예를 입는다.

굳이 오랜 기억을 하나하나 되살려 아픔을 무릅쓰고 글을 풀어내는 까닭은, 미래를 향한 삶의 뜨거운 열정임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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