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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냥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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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횬 May 29. 2022

삐삐

오만한 착각



나의 좁은 시선으로, 나의 착각으로 바라보았던 모든 일들, 모든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았던 그날의 대화


“나는 삐삐 시절이 너무 너무 그립더라”


“야! 니 삐삐만 울렸겠지!”




나에게 삐삐는 고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남자 친구와 주고받은 애틋함이었다.

숫자에 의미를 담은 삐삐 알림이 올 때마다

마음이 두근두근,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숫자로 마음을 받는 건 참 특별했던 일이었다.


삐삐가 울리면 공중전화로 달려가 내 번호를 누르고

음성메시지 확인 번호를 누른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음성 녹음을 열면

카세트테이프를 재생시킨 음악이 나오거나,

친구의 음성이 담겨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공중전화는 긴 줄로 북새통이었고,

그 줄의 중간쯤 나도 서 있었다.

음성메시지를 확인하는 모든 순서들이

참 번거로운 일이지만 그 수고스러움이

방금 울린 삐삐의 음성메시지를

더 소중하게 만든다. 기다림이 설렘이었던

그 시절의 ‘삐삐’는 나의 추억 안에 큰 선물이다.


‘1126611’ 숫자의 가운데 가로선을 그으면

(1126611) ‘사랑해’라는 글이 보인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그 시절에 그 숫자가

어색했지만 마음이 꽉 찼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그 작은 감성 템은 소중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애틋한 추억 한 자락이다.


며칠 전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 그 시절로

다들 추억여행을 하며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내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그래, 나는 삐삐 시절이 너무 그립더라”

“삐삐 있을 때가 너무 좋았는데…”


한 친구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씩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야! 니 삐삐만 울렸겠지”


“앗…”


삐삐를 사용했던 모두가 예쁜 추억을 담은

삐삐를 그리워할 거라 생각했다.

나의 오만한 착각이었다.


‘그래, 모두에게 삐삐가 특별한 추억거리가 아니구나’


그동안 이렇게 나의 좁은 경험에만 의지하여 얼마나 많은 세상의 일들을 착각하며 지냈을까?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진다.


친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크게 배운 하루였다.


이미지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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