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샘, 이게 뭐고?
나는 특성화고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사이다.
학교의 특성상 아이들의 진로를 두 가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기에 나에게 고3 담임은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고통 끝에는 그 모든 것을 녹아내는 보람이 있었다.
고3 담임, 뼈를 깎는 고통이란 말은 아이들을 사회로 혹은 상급학교로 제대로 보내야 하기에 그 책임감의 무게이다. 그 무게는 3월부터 서서히 묵직해지다가 여름방학이 지나면 폭풍처럼 무거워져 부족한 시간 탓을 열심히 하게 된다.
여름이 지나면 아이들의 진로가 완전하게 결정이 되고그게 뭐든 잘 만들어진 화살을 잘 조준하여 과녁에 맞혀야 할 때,
그것을 위해 우리는 12년 동안 책가방을 매고 다니지 않았던가?
특성화고등학교는 특정 분야 인재 및 전문 직업인 양성을 위한 특성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이다 보통 직업교육으로 생각하는 생각하는 기계 계열, 전기 계열, 자동차 계열, 건축 계열 등의 학과 이외에도 많고 다양한 분야의 특성화고가 설립, 운영 중이며 각 학급당 25명을 내외를 정원으로 하여 각 분야에 재능과 소질이 있는 학생들에게 그에 맞는 전문적 직업교육을 실시한다. (네이버 나무 위키 발췌)
특성화고는 일반고와는 성격이 다르다. 특성화고에서 마지막에 중요한 것은 “취업률”이다. 3학년 전체 학생 중 몇 프로가 취업에 성공했느냐가 학교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학교의 평가는 예산지원 문제와 연결된다.
전문직업인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으로 운영이 되니, 아이들의 끝에는 취업이 있어야 함이 바른 것이기는 하나, 아이들이 나가게 될 바깥 현실은 전혀 교육의 방향에 맞춰져 있지 않다. 그 의미에 맞는 취업형태는 손에 꼽힐 정도다. 아니 어쩌면 취업률을 위한 취업지도일지도 모른다. 정말 속이 터질 만큼 답답한 상황들을 수차례 봐오며, 이대로 괜찮을까? 란 생각을 수없이 해왔다.
언젠가부터 고졸 공채가 축소되었다.
2000년 후반까지 대기업 제조직으로 학급의 반 이상이 수훨하게 취업하였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하늘의 별따기다.
정말 뛰어난 아이들은 각자의 전공을 잘 살려 공기업이나, 공무원 혹은 대기업 디자인실로도 취업을 한다.
그중 또 뜻이 있는 아이들은 선취업 후진학의 형태로 재직자 특별 전형으로 꽤 명성이 있는 대학에 진학을 하기도 한다. 그 아이들을 보면 흐뭇하다.
하지만 지역 내 영세업체에 취업하거나, 사회적 기업을 가장한 악덕업체에 잘못 발을 디딘 아이들은 상처를 안은채 다시 학교로 돌아오기도 했고, 형편이 어려워 취업을 희망하는 아이들이 마땅한 취업처가 없어 힘들어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교육계와 산업계의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며 현실을 직시한 교육의 방향이 필요하다.
나의 진로 교육 철학은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게 하고 그곳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길을 안내하는 것!
“특성화고는 취업을 하기 위한 곳입니다. 진학지도는 하지 마세요”
학교의 분위기는 이러했다. 진학이라는 말에 왠지 예민한 학교의 관리자들, 선생님들조차도 진학지도란 말은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그리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분위기였다.
‘아니, 고 3 담임은 취업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진로 지도를 하는 사람이지 않았던가?!!’
울분이 차다가,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나는 내 신념을 믿었다.
그 당시, 우리 반 아이들의 진로 희망은 30%가 취업을 희망하였고, 70%는 진학을 희망했다. 아이들의 희망을 가장 우선시 생각했고, 학부모와 전화상담을 하여 최종적으로 진로계획을 선명하게 세웠다. 그리고 우선 취업을 희망하는 아이들 상담부터 하였다. 희망분야와 가능지역,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으며 함께 목표를 세우고 준비할 것들을 체킹 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위한 졸업생 선배 특강을 준비하였고, 조금은 미래를 선명하게 그려 목표를 높이 세울 수 있도록 도왔다. 물론 그쯤에서도 갈팡 질팡하는 아
이들이 더러 있었다.
진학을 희망하는 아이들에게는 여름방학을 하기 전, 표를 한 장씩 나누어주었다. 희망대학, 희망 학과, 전년도 전형의 내용, 전년도 커트라인을 작성하도록 만든 표였다. 전년도 입시요강을 스스로 훑어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수시요강이 뜬 날, 나는 학교 프린트기로 100건의 수시모집요강을 용감하게 프린트하였다.
프린트를 마치고 클립으로 요강들을 묶어 책상 위에 쭉 쌓으니 엄청난 양이였다.
하필 그때, 교감선생님께서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심 샘, 이게 뭐고?”
“….. 네! 교감선생님, 취업도 잘 보내고, 대학도 잘 보내보겠습니다!!”
“흠!”
아무말씀없이 문을 닫고 나가신다.
무슨 용기였는지, 대뜸 둘 다 잘 보내겠다고 큰소리를 치며 분위기를 마무리지었다.
그해 당차고 씩씩했던 내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아이들과 더 많이 만나 상담하고, 입시요강들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아이들과 함께 보았다.
그리고 학교로 의뢰가 들어오는 취업처에 의지하지 않고 사람인, 잡코리아 등의 사이트에서 취업처를 함께 찾고 대표와 전화통화를 시도하여 아이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해, 나의 진로 지도 성과는 결과만을 보았을 때, 가장 우수했다. 그 결과들은 다음 해 신입생 모집의 성공으로도 연결되었다.
그 아이들의 현재 상황을 다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각자가 쏜 화살이 과녁에 잘 맞아 어디가 되었든 자기의 몫을 다하고 있으리라 믿어본다.
이제 우리는 현재 우리의 사회구조와 정책들의 상황에서는 맞지 않는, 취업률을 학교를 평가하는 잣대로 삼는 일을 멈추어야 하고,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양방향의 진학지도를 해야 한다.
적어도 내가 만난 아이들은 취업률이라는 숫자놀음에 희생될 아무것도 아닌 아이들이 아니었다.
작은 꿈을 가지고 학교에 입학해 꿈을 키워나갔고, 큰 꿈을 위해 달릴 용기가 있는 아이들이었다.